지난달 25일 치러진 10대 서울시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출 선거가 부정 선거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목이 쏠리고 있다. 2년간 서울시의회를 이끌어갈 의장과 부의장 2명을 선출하는 선거였는데 기표소 안에 붙여놓은 의원 명단이 논란이 됐다.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24일 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표소 안에 붙어있던 의원 명단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110명의 의원 배치도 가운데 단 한 명의 이름만 음영 처리되었다. 권 의원은 의장과 부의장 2명 등 세 차례 진행된 투표 때마다, 유독 한 명의 이름이 이렇게 강조된 의원 명단이 기표소 안 정면에 부착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의장 선출 때는 의장 후보 한 명의 이름이, 부의장을 뽑을 때도 각각 부의장 후보 이름이 강조된 명단이 부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강조된 이름들은 모두 선거 이틀 전 의원총회를 통해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의장단 후보였다. ■ “대한민국 그 어디에 기표소 안에 당당하게 ‘누구를 찍어라’ 표시하고 선거를 하나요?” 문제는 시의회 의장단 선출 선거는 모든 시의원이 후보자라는 것이다.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이 없고, 의원 개개인이 가장 적합한 의원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어내 최고 득표자가 의장단에 선출되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교황 선출식’ 방식이다. 권 의원은 “새로운 의회 구성에 대한 기대와 책임감을 갖고 기표소 안에 들어간 순간, 명단을 보고 분노와 수치심을 이겨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110명의 후보자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정한 단 한 명의 이름만이 기표소 안에 강조된 데 대해, 권 의원은 “다른 정당과 함께 의회를 구성하는 의회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지 묻고 싶다”고 일갈했다. 권 의원은 또, 이날 본회의장 안에서 “투표를 위해 명패와 투표용지를 수령하고 투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민주당 후보들이 자신의 이름을 앞쪽에 걸고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이런 의장단 선거가 “독점 권력을 가진 정당의 오만과 폭력을 넘어 명백한 부정 선거이고 의회 민주주의 훼손”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 시의회 사무처 “교섭단체 후보자를 표시한 관례일 뿐…민주당 요청 아냐” 이에 대해 시의회 사무처는 교섭단체 의장단 후보 이름에 음영처리를 해서 의원 명단을 기표소 안에 게시한 것은 그동안의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무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진행되는 점에서 후보자 검증을 위해 후보자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이었다”면서 민주당이 명단 부착을 요청한 게 아니라고 덧붙였다. 의장단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만을 강조한 명단을 부착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건, 권 의원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2년 전 10대 전반기 원구성을 할 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의장단이 선출됐다는 것이다. 다만 초선이었던 권 의원은 투표 이후 문제제기를 했고, 민주당 의원단에 개선 약속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례라는 이름으로 국민들 눈높이와 상식,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가 반복됐다고 권 의원은 강조했다. ■ 소수 야당의 문제제기가 ‘내부고발’이 된 이유…93%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처는 교섭단체에서 선출한 의장단 후보를 음영처리한 건 ‘편의를 위한 관행’이었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오래된 관행이 이제야 문제가 된 건 10대 의회의 구성도 한몫했다. 10대 의회에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유일했다. 소속 시의원이 10명을 넘겨야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데, 조건을 충족한 정당이 민주당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앞선 8대, 9대는 복수 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의장단 선거에서 복수의 정당이 각각 후보를 냈고, 기표소 안 의원 명단에도 2명의 후보자가 강조 표시됐다. 정의당의 1명뿐인 서울시의원인 권 의원은 기자회견에 앞서 “이 자리에 정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이어 “지금 현재 단체장이 유고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시민들께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해야 할 의회마저도 실망을 드리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라고 이유를 말했다. 오늘 기자회견을 ‘내부고발’이라고도 했다. 선거가 치러진 지 한 달 만에 문제를 제기한 것도 그만큼 고민이 깊어서였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렇게 의회 다수인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했을 경우, 과연 남은 의정생활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에게 문제해결을 기대하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회가 더 적어질까봐 두려움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기본이 망가지는 것들이 계속되면, 권력이 오래되고 독점이 더 오래될수록 더 많은 목소리가 죽어갈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권 의원은 다음주 법원에 의장단 선거 무효소송과 함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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