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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부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경우

이정식 작가 | 기사입력 2023/01/30 [21:35]

[칼럼] 부부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경우

이정식 작가 | 입력 : 2023/01/30 [21:35]

▲ 톨스토이 부부의 마지막 사진(1910)

톨스토이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평생 부자로 살았고, 소설가, 사상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으며 당시로서는 장수했지만 그가 행복한 인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1082세로 사망한 톨스토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들어와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에서 차르보다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20세기 초인 1901년 프랑스의 한 잡지는 러시아에는 두 황제가 있는데, 한 사람은 톨스토이 백작이고 한 사람은 현 황제인 차르 니콜라이 2세라며 톨스토이는 거대하게 니콜라이 2세는 왜소하게 그린 풍자화를 실었다. 그만큼 톨스토이는 러시아 국내외에서 대단한 존재였다. 노년에 든 톨스토이는 제정러시아의 전제체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였지만, 그의 사회적 영향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차르도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톨스토이 숭배자였던 우리나라 현대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인 춘원 이광수는 톨스토이를 가리켜 지구가 산출한 가장 큰 사람 중 하나이며 예수 이후의 첫 사람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광수는 그의 예술관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톨스토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부인 소피야와의 오랜 갈등으로 82세에 가출을 했고, 가출 열흘만에 객사했다. 톨스토이는 소피야와 48년을 같이 살았다. 두 사람은 1862년 결혼했는데, 당시 톨스토이는 34, 소피야는 18세였다. 16살이나 나이 차이가 있었다.

 

워낙 나이 차이가 커서 그랬는지, 당시의 관습에 따라 체념했는지 모르지만, 소피야는 톨스토이에게 결혼 전에 생긴 사생아 남아가 하나 있어 마음에 큰 불편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녀는 매일매일 남편의 원고를 열심히 정서하는 등 톨스토이의 글 쓰는 일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소설 전쟁과 평화는 일곱 번이나 정서를 했다고 한다. 출산도 열세 번이나 했다. 그중 어른이 될 때까지 성장한 자녀는 여덟 명이었다.

 

소피야도 만만한 여성은 아니었던 것 같다. 결혼한지 5년 후인 1867년 서른아홉 살에 톨스토이가 소피야에게 쓴 편지를 보면, 소피야가 젊은 시절부터 곧잘 화를 냈던 모양이다. 그래도 편지의 내용은 그 때는 부부사이가 비교적 원만했다는 것은 말해주고 있다. 그무렵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쓰기 위해 자료 수집과 현장 답사 차 모스크바나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자주 다녔다. 그럴 때면 소피야가 집안 일은 물론 영지 일도 도맡아 처리해야 했다. 톨스토이는 소피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는 친구에서 1천 루블을 빌려서 풍족한 상태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털모자와 장화 그리고 당신이 이야기한 모든 것을 사려고 하오. 당신은 내가 돈을 빌려 쓴 것에 대해 화를 낼 것이 틀림없소. 하지만 화를 내지 마시오. 나는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고 그리고 초겨울 동안 돈 문제로 고통 받지 않으려고 빌린 것이오. 그리고 최대한 돈을 아껴 쓸 생각이오. 그러니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리라 믿소.”

 

톨스토이가 이처럼 돈을 빌려 쓴 것을 아내 소피야에게 알리고 화내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그때부터도 가정의 경제권은 소피야에게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 전쟁과 평화가 대성공을 거둔 후부터 톨스토이의 주 수입원은 영지 수입에서 저작권 수입으로 점차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 수입의 비중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톨스토이 나이 50세를 전후한 시기에 그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 이어 40대에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쓰는 동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커다란 회의를 갖게 된다.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다.

 

이 때부터 그는 저작권 수입을 포기하겠다느니 토지의 소유는 죄악이므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민중에게 토지를 돌려준다는 토지사유제 폐지사상은 미국의 재야 경제학자 헨지 조지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톨스토이가 노년에 10년 만에 완성한 소설 부활에도 비중있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소피야는 톨스토이의 주장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피야는 우리 것을 전부 남에게 주면 남은 처자식과 손주들은 무얼 먹고 사느냐?”고 따졌다. 부부 사이는 점점 나빠졌다.

 

톨스토이의 추종자 중에 톨스토이의 그같은 생각에 찬동하며 톨스토이가 그러한 의지를 실천에 옮겨 이른바 성인의 반열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톨스토이의 추종자로 최측근인 체르트코프 같은 사람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소피야는 그런 체르트코프를 원수같이 생각했다.

 

톨스토이 부부는 서로에 대해 불륜도 의심했다. 소피야는 평생 톨스토이의 사생아를 보고 살아야 했고, 그후에도 톨스토이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중년의 소피야가 유명 피아니스트에게 레슨을 받는 등 가깝게 지내는 것을 질투하여 집을 나가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결혼 생활 48년 중, 부부가 갈등과 다툼의 관계를 지속한 기간은 절반이 넘는다.

 

톨스토이는 몇 차례 가출을 기도했다가 결국 82세 때인 191010월 어느날 새벽, 마침내 주치의만을 대동하고 집을 나가지만, 결국 나흘 째 날 폐렴에 걸려 가출 열흘 만에 시골 간이역인 아스타포보 역 앞의 역장관사에서 세상을 떠난다. 사람들은 톨스토이 부부가 오랫동안 불편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자녀들은 아버지 편과 어머니 편으로 나뉘어졌는데, 막내 딸 사샤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편이었다.

 

톨스토이가 폐렴으로 아스타포보 역장 관사에 누웠을 때 소피야가 급히 찾아갔으나 막내 딸과 톨스토이의 측근들이 접근을 막았다. 소피야가 나타나면 톨스토이가 흥분해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소피야는 톨스토이 임종 직전에야 톨스토이를 볼 수 있었으나 톨스토이는 이미 혼수상태여서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48년 함께 산 부부의 마지막 치고는 너무나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톨스토이 부부는 그처럼 허망하게 작별을 했다. 톨스토이는 살아 생전에 드높은 명성을 누렸으나 날로 멀어진 부부관계를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불행한 최후를 마쳤다고 아니할 수 없다. 부부를 서로 반려자라고 하는 것은 결혼이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상대가 행복과 기쁨의 원천이며 짝이 되는 동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사랑의 기초다. 그러나 사는 동안 부부관계가 늘 순탄할 수는 없다. 성격적 차이, 의견충돌은 흔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갈등과 충돌이 오래 묵으면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문제가 생기면 속히 복원되도록 서로 노력하여 원만한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 힌다. 그러나 부부가 끝내 갈등을 계속 해소하지 못한다면 헤어지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톨스토이의 경우, 저작권 포기나 토지 무상 분배에 대한 생각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가 크게 성공한 후 인생에 회의를 느끼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의 성공에는 소피야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톨스토이의 생각에 반대한 소피야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너무 비범한 남편 때문에 아내로서 어려운 지경에 처했으면서도 달리 탈출구를 찾지 못했던 소피야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 때문에 소피야는 신경쇠약이 되었다톨스토이는 젊은 시절 행복한 인생을 꿈꿨지만, 너무 오래 쌓인 부부간의 불화로 그 꿈은 차츰차츰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톨스토이의 가출을 보면 구약성경 잠언의 이런 구절들이 생각난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다투며 성내는 아내와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잠언 219절과 19절에 잇달아 나온다. 이 말씀은 모두, 다투며 사느니 혼자 살라는 이야기다. 이 대목은 사실 너무 남성 위주의 표현이긴 하다. 남녀 모두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야스나야 폴랴나의 거대한 영지를 떠나 소박한 농촌에서 마지막 인생을 살려고 가출을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82세는 가출하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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