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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재벌에게 보내는 편지: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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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재벌에게 보내는 편지

송장길 / 수필가,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4/12/29 [15:19]

대중이 재벌에게 보내는 편지

송장길 / 수필가, 칼럼니스트 | 입력 : 2014/12/29 [15:19]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에 대한 국민들의 질책은 질풍노도 같았다. 항공법 위반이나 과잉조치, 은폐의혹 등에 대한 단순비난 수준을 훨씬 넘는 일종의 ‘분노의 포도’였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분별없고 미숙한 행태만을 꾸짖는 정도가 아니었고, 갑질에 당하는 을에 대한 연민만도 아니었다. 다분히 쌓이고 쌓였던 이 나라의 재벌에 대한 대중의 서운함과 원망, 부러움, 울화 등이 응고된 사회심리의 표출이었다.

조 전 부사장의 철부지 행위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현대경영의 기본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인격의 존중이나 기업의 사회성에 대한 인식은 커녕, 사회생활의 기초적인 수양도 갖추지 못한 수준이었다. 사주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넘치는 권한을 휘두르고 다녔는데, 그런 모양새가 어디 대한항공뿐이겠는가. 대기업의 소유권과 경영이 미분화된 현실에서 다른 재벌회사에서도 종업원의 사병화현상과 함께 능력과 관계없이 친족의 특별고속승진도 당연한 듯 여겨져 왔다. 민주사회의 토양인 공평성에 어긋나는 현상이다.

재벌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그뿐이 아니다. 분식회계로 그 많은 재산을 더 늘이려다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나, 자식들에게 꼼수로 상속하려다가 법의 심판을 받지 않나, 폭력을 휘두르다가 법정에 서지 않나,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하청업체들에 대한 갑질, 사치와 괴리감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쓰리게 하지 않나, 서민들의 눈높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을 수없이 저질러 왔다. 삼성가는 최근 제일모직의 주식 상장 하나로 3자녀가 각 각 2조여 원의 거액을 챙겼고, 그들의 어머니는 병상의 이건희 회장 재산을 71%나 상속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사실 외에는 그 많은 재산이 추호의 사회적 공감대 없이 그들 차지가 되는 이유를 대중은 알지 못한다.

세상 밖으로 보이는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부정과 부패, 부조리는 늘 어둠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은 재판과정에서 각 각 4천억여 원씩을 재벌들로부터 받았음이 밝혀졌고, 삼성은 정,관계와 법조계까지 관리해온 것으로 내부고발자에 의해 폭로됐음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재벌과 권력 간의 유착이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이유들은 그 밖에도 셀수없이 많다.

한국의 재벌은 1960년대 개발경제시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 규모가 크고 현대적인 조직을 갖춘 대기업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려는 정책적 결과물이었다. 제3공화국 실세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당시 KBS-TV의 [총리와의 대화]에 나와 “경제는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을 통해 발전시킬 수 밖에 없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그 발전의 모델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명치유신 후 국가의 큰 사업을 대기업에 맡기고 일본은행을 세워서 전폭 지원하므로써 부국을 꾀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재벌들을 통해서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정부의 성장전략과 재벌들의 기업운은 절묘한 조합을 이루어서 서방 선진국들이 2~3세기에 걸친 발전을 반세기 만에 따라잡는 압축성장의 주역을 연출했다. 정부는 각종 프로젝트의 기회를 재벌회사에 제공했고, 지불보증과 그 좁은 금융의 문도 넓게 열어 주는 등 갖은 혜택을 주었다. 물론 창업주들의 판단과 노력, 그리고 대기업으로 몰려간 우수 인력들의 헌신도 높이 사야겠지만 정부의 강한 의지와 계획, 시책, 그리고 묵묵히 따른 국민들의 참여와 이해, 희생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과실이다. 따라서 재벌기업들은 일정부분 국가와 국민의 정성이 모아져 낳았다고 할 수 있으며, 넓은 의미로 보면 민간기업의 차원을 너머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재벌을 해체하라든지, 위축시키려는 일부 시각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국의 경제구조상 나라살림의 대들보를 건드리면 파국적인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 만큼 재벌들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따라서 파괴적인 급진적인 진보는 한국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재벌은 태생적인 공공적인 성분과 요즈음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을 깊이 음미해서 치열한 자기성찰과 몸가짐 조절이 더욱 필요한 계절이다.

재벌은 재물에 게걸스런 기계이기보다 대중과 호홉을 함께하는 신뢰의 생명체가 돼야 한다. 기업의 목표인 수익은 동력이 이미 붙은 기술과 개척으로 승부하면 된다. 국민의 작은 광이나 살림이 어려운 중소기업, 헌신적인 종업원들의 호주머니를 노려서는 대중의 외면이 뻔하다. 이윤이 전부가 아닌 최소한 반은 이윤, 반은 사회성에 방향타를 조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철저한 준법과 투명경영, 따듯한 서비스는 기업정신의 기본이다.

해가 저무는 연말에 대중이 재벌에게 쓰는 편지의 말미에 다짐하는 하나의 언어는 “존중”이란 단어이다. 국가와 국민, 사회와 대중, 중소기업과 종업원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한다면 신뢰는 돌아와 쌓일 것이며, 밝은 내일도 열릴 것이다. 온 나라의 행복지수도 많이 높아질 것이다.

▲ 송장길,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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