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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과 <이별의 노래> (2):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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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과 <이별의 노래> (2)

이정식 | 기사입력 2014/12/09 [05:43]

박목월과 <이별의 노래> (2)

이정식 | 입력 : 2014/12/09 [05:43]
▲ 한양대 교정에 있는 목월의 <산도화> 시비

그런데 그 다음이 더 극적이다. 편저자는 사건 이후 20년쯤 흐른 후 여류시인 K씨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면서 이렇게 옮겨놓았다.

그 제주 생활이 넉 달째 접어들어 겨울 날씨가 희끗 희끗 눈발을 뿌리던 어느날 부인 유익순이 제주에 나타났다. 목월과 H양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 그녀는 두 사람 앞에 보퉁이 하나와 봉투 하나를 내 놓았다. 보퉁이에는 목월과 H양이 입고 겨울을 지낼 수 있는 한복 한 벌씩이, 그리고 봉투에는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돈이 들어 있었다. 남편은 물론 H양에 대해서도 그녀는 전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고달픈 객지 생활을 위로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녀 앞에서 H양은,

“사모님!”

하고 울었다. 목월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결국 목월은 가정으로 돌아왔다. 제주생활 넉 달을 치르면서 유익순 앞에서 울었던 H양은 목월을 단념하게 된 것이다. 널리 애창되고 있는 목월 작사의 <이별의 노래> 가사는 H양과의 이별의 심정을 읊은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별의 노래의 주인공은 평전이 그럴듯하게 그려 놓은 것처럼 1954년 박목월 시인을 제주도에까지 찾아가 몇 달간 함께 지냈던 H양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목월이 털어놓은 <이별의 노래>의 주인공

<이별의 노래>가 여대생 H양과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란 소문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모양이다.

목월도 그러한 소문에 대해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책 <구름에 달 가듯이> (1973년, 1979년 삼중당)에 <이별의 노래>를 짓게 된 동기를 써 놓았는데 다소 추상적이다. 그렇더라도 이 글을 통해 보건대, 이것이 완전한 픽션이 아니라면 노래의 주인공이 H양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이며, 전쟁 중에 우연히 재회해 그 후 다시 만나기 시작했고, 병실에서 하룻밤을 간호하며 지낸 적도 있으며, 결국 세상을 떠났다’ 고 요약할 수 있다. <구름에 달 가듯이>의 몇 대목을 인용하면;

“물론 오래 전 일이다. --- 다만 내가 젊은 청년 시대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어느 날 오월 오후다. 나의 사무실로 한 여인이 찾아왔다. 내 생애에 결정적인 운명의 발길이 이처럼 우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연한 하늘빛 갑사치마 저고리를 입은 그녀와의 대면(對面)을 나는 극히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와의 재회(再會)는 더욱 극적이었다. 화약 냄새가 감도는 거리의 모퉁이에서 나는 우연히 그녀를 발견한 것이다. 눈발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놀라움과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갸름한 얼굴에 흰 이빨이 곱게 웃고 있었다.

“살아 계셨군요. 무척 염려했어요.”

그녀의 인사였다.

----- 전세(戰勢)는 우리에게 반드시 유리할 것만 같지 않았다. ----- 조그만 사건이 생겼다. 그녀가 중하게 앓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거처를 알 길이 없었다. 이듬해 봄이 되었다.“

----- 햇빛이 범람하는 아스팔트의 저편에서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하얗게 소복한 여인은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불꽃에 싸여 있었다. 그녀였다. 세 번째의 우연한 해후(邂逅). 운명은 끝내 우리에게 그 신비스러운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무척 수척해 보였다.

-----“박 선생님 하룻밤만 제 병실을 지켜 주시지 않겠어요.” -----그녀의 병실에는 개나리가 꽂혀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불꽃처럼 명랑하고 생기가 타올랐다.

----- 나는 그녀의 머리맡에서 밤을 밝혔다. 고르고 편안한 그녀의 숨결을 조용히 지키며 밤을 새운 것이다. 새벽은 찬란했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새벽에 일어나 통곡할 줄은 깨닫지 못했다.”

나의 목마른 인생 역정의 이 쓰라린 경험은 나의 인생관을 변하게 하고, <나>라는 사람을 변하게 하였다. 그것은 홀로 울고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하얗게 재가 되어 삭아내리게 되었으며, 사실 나의 슬픔은 이별이 끝난 뒤부터 시작되었다.

---(후략)----

<구름에 달 가듯이> (1979년 판에서 발췌)

(계속)

▲ 목월이 다녔던 경주의 건천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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