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민의 크루즈 이야기 –코로나 사태 중 만난 한국인 승객(2)
상태바
임수민의 크루즈 이야기 –코로나 사태 중 만난 한국인 승객(2)
  • 임수민(영국 큐나드 선사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승무원)
  • 승인 2020.04.22 0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퀸 엘리자베스호
퀸 엘리자베스호

그런데 그분들은 선사가 제시한 조건에 만족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중 50대 여성분이 매우 불만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그게 다냐?'는 식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70대 여성분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흔들며 울면서 더 많은 배상을 해달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바지를 걷어 올리면서 "나 다리 수술도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왜냐하면 퀸 엘리자베스는 나의 드림 크루즈이니까,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는데 이게 뭐냐!" 라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셨다.

고대해 왔던 꿈의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여행을 목전에 두고, 탑승 직전 상상하지도 못한 코로나 사태로 승선이 좌절됐으니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매니저는 앞의 조건과 더불어, 원하신다면 시드니타운에서 모두 함께 관광하실 수 있도록 여섯 분 모두에게 5성급 호텔을 최대 3박 4일(식사 포함)까지 제공해드릴 수 있다고 거듭 제안했다. 그러자 50대 여성분이 “크루즈로 갈 예정이었던 태즈메이니아 관광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비행기로라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분들의 실망감은 백 번 천 번 이해되는 바이나 안타깝게도 선사 입장에서는 들어줄 수 있는 요구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선사에서 제공하는 조건은 다른 선사보다도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어떤 선사는 전액 환불은 커녕 일부 환불도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결국 그분들은 우리 측이 제안한 조건에 동의한 후 시드니 담당직원의 안내를 받아 호텔로 이동했다.

컴플레인 응대는 크루즈 승무원의 숙명

조금 다른 얘기지만, 실질적으로 외국인 승객들로부터 자주 듣는 소리인데, 수술을 했거나 지병이 있어 거동이 불편하니 뭔가를 더 달라거나 도와 달라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상식 밖의 막말 및 컴플레인, 요구사항에 응대하는 것이 승무원들의 업무이다. 선사특성상 승객의 연령층이 높다보니 거동이 불편한 승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특정 국가에서는 비싼 요양원에서 혼자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장기간 크루즈를 하는 것이 비용적으로도 부담이 덜한데다가 승객으로서 대접까지 받을 수 있어 그런 이유로 정기적으로 크루징하는 승객이 있을 정도다. 그런 승객이 막무가내의 요구를 하거나,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환자인데 너희는 관심도 없고 신경도 안 쓴다’며 울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자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항구까지 잘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수술을 해서 혼자 걸을 수가 없으니 객실에서 레스토랑이든 어디든 갈 때마다 어시스트 해달라는 요구 같은 것이다.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하다면 가족이든 누구든 동행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것은 승무원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한 몸을 빌미로 공짜로 비싼 객실로 업그레이드 해달라는 요구도 있다.

크루즈는 비영리단체도 아니며 더군다나 그런 이유라면 선사 측에서는 공짜로 무언가를 제공해야 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 지속적인 비합리적 요구와 컴플레인 끝에 승무원을 주먹으로 밀친 60대 승객이 있는데, 캡틴의 결단 하에 강제 하선과 함께 추후 큐나드 이용 금지 조치를 취한 일도 있다.

단골 컴플레인 중 하나는, 결혼기념 크루즈인데 선사에서 아무 것도 안 해준다는 것이다. 승무원은 승객 모두의 기념일을 알 방도도 없으며, 안다고 해도 모든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승무원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다. 가장 황당했던 컴플레인 중 하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3개의 빈 페트병을 버렸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했던 승객인데, 샤워할 때 쓰려고 자택에서 일부러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경우이다.

이렇듯 더한 외국인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동방예의지국인 한국 사람에게서 보다 더 너그럽고 품위 있는, 세련된 모습을 기대했던 나에게 그날의 안타까움과 속상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