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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자유③ ‘대심문관’ 편의 자유에 대하여: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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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자유③ ‘대심문관’ 편의 자유에 대하여

이정식 대기자 | 기사입력 2020/03/21 [16:12]

[이정식의 작가노트] 도스토옙스키의 자유③ ‘대심문관’ 편의 자유에 대하여

이정식 대기자 | 입력 : 2020/03/21 [16:12]
러시아 스타라야루사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소설 박물관' [이정식 대기자]
러시아 스타라야루사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 소설 박물관' [이정식 대기자]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백미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것이 ‘대심문관’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심문관은 16세기 스페인의 가톨릭 추기경을 말한다.  

무신론자인 둘째 아들 이반이 수도사인 동생 알료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길게 진행된다. 이반은 이를 자기가 지은 서사시라고 했다. 무신론자의 이야기니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겠지만, 기독교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속에 오히려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있다. 이는 도스토옙스키의 반어적 수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배경은 16세기 스페인의 세비야다. 이 도시에서 백여명의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한 바로 다음날, 무더운 광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그가 그리스도임을 알아보며 그의 주위에 모여든다. 그리스도가 지나가면서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장님의 눈을 뜨게하고 죽은 소녀를 살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때 추기경인 대심문관이 그 옆을 지나다 모든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리스도를 잡아가두라고 명령한다. 대심문관은 아흔살에 가까운 나이다.

그날 밤 대심문관은 그리스도에게 찾아가 <모든 것을 당신 스스로 교황에게 인계했으니, 이제는 모든 것이 교황의 소유이며, 이제는 제발 이곳에 찾아오지도 말며, 적어도 때가 오기 전까지는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단지 듣기만 하며 대심문관은 자문자답하는 식으로 그리스도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는다.

그리스도에게 일장 훈계하는 대심문관

“(···)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도 없는 것이오. 그런데 당신은 인간의 양심을 영원히 평안하게 할 튼튼한 토대를 마련해 주지는 않고 특별하고 수수께끼 같고 불확정한 것만을 가져왔고 인간에게 힘겨운 것만 건네주었으니, 결국 인간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 꼴이 되었소. 그가 누구요? 바로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지러 왔다던 사람 아니오! 당신은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기는 커녕 그 자유를 배가시켜 인간의 정신적 왕국에 영원히 고통을 안겨 주지 않았소. 당신은 당신에게 현혹되어 포로가 된 인간이 자유 의지로 당신을 따르는 자유로운 사랑을 기대했던 거요.

(···)

무기력한 반란자들의 행복을 위하여 세 가지 힘이, 그들의 양심을 영원히 지배하고 사로잡을 강력한 세 가지 힘이 지상에는 존재하오. 그 힘은 다름 아닌 기적과 신비와 교권이요. 당신은 첫 번째 것도, 두 번째 것도 그리고 세 번째 것도 거부했으며 스스로 그 모범이 되었소. 무섭고 지혜로운 악마가 당신을 성전 꼭대기에 세워 놓고 이렇게 말했지요. <네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알기를 원한다면 밑으로 뛰어 내려라. 성서에 천사들이 그리스도를 받쳐 주어 땅에 떨어져도 다치지 않으리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네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며, 네 아버지에 대한 너의 믿음이 어떠한지도 입증되지 않겠느냐.> 그러나 당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 제안을 거절했으며 굴복하지도 않고 또 뛰어내리지도 않았소.

(···)

인간은 기적이 없는 한 무력한 존재이므로 수없이 반역자, 이교도, 무신론자가 되면서까지도 자신들만의 새로운 기적을 창조해 내고, 또 심지어는 마법적인 기적, 황당무계한 기적에 매료되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네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겠다>고 소리 지르며 조롱하고 놀려대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소. 당신이 거기서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며, 기적에 의한 신앙이 아닌 자유로운 신앙을 열망했기 때문이오. 당신은 단번에 인간을 영원히 공포에 떨게 할 권세 앞에서 드러나는 예속적인 노예들의 환희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랑을 열망했던 거요.

(···)

우리들은 그들이 우리들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복종할 때에만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설득할 것이오.”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매우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을 마친다.

“다시 말해 두지만, 내일이면 당신은 순종하는 양떼들을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은 내 손짓 하나로 당신이 우리들을 방해하러 온 것을 이유로 당신을 불태울 화형대 속에 불타는 장작을 던져 넣을 것이오. 우리들의 화형대를 써먹을 데가 있다면 그건 누구보다도 당신한테일 것이오. 나는 내일 당신을 화형에 처하겠소. 이것으로 할 말은 다 했소.”

듣기만 하던 죄수(그리스도)는 대심문관의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대심문관은 놀라서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문 쪽으로 다가가 <어서 나가시오. 그리고 다시는 찾아오지 마시오······. 앞으론 절대 찾아와선 안 되오······. 절대, 절대로.>

이렇게 노인은 그를 <어둠이 깔린 도시의 광장>으로 내보낸다는 것이 대심문관 편의 대체적인 줄거리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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