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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학동 (1):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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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학동 (1)

하얼빈의 안중근 (12)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4/04/27 [22:00]

하얼빈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서학동 (1)

하얼빈의 안중근 (12)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4/04/27 [22:00]
▲ 서학동 부국장

나는 지난 4월 초(4.1) 이태진 서울대명예교수로부터 하얼빈 안중근 기념관 건립에 하얼빈 시의 조선족 출신 간부인 서학동(徐鶴東) 부국장의 역할과 노력이 컸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서학동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서 서학동씨에 대해 궁금해 하던 중, 4월 24일 저녁 하얼빈의 한 식당에서 서씨를 만나게 되었다. 서씨는 우리 ‘안중근의사 중국 사적지 답사팀’이 저녁을 마칠 무렵 식당에 나타났다. 그는 보통 체격에 조금 큰 키였고 머리는 약간 벗겨졌으며 동그스름한 얼굴에 콧수염을 짧게 기르고 있었다. 나는 서씨가 그 식당에 나타나리라는 사실을 몰랐다.
동행했던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측 이혜균 사무차장의 설명을 들으니 당초 서씨도 우리와 식사를 함께할 예정이었는데 우리 일행의 일정상 식당 도착이 늦어져서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한 후 이 자리에 온 것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두개의 커다란 라운드 테이블에 나뉘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서씨는 이혜균 차장의 소개 후 가운데 서서 인사말을 하였다. 서씨의 현 직함은 하얼빈시 문화신문출판국 부국장. (이후 서 부국장으로 호칭함)

나는 서 부국장이 인사말을 시작할 때 카메라와 필기도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사진도 찍어두고 몇가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 하얼빈역 1903년 모습

첫째, 하얼빈역에 만들어진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외관이 100년 전 최초의 하얼빈역의 모습과 똑같다는데 매우 놀랬다.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혹시 서 부국장이 아니신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

나는 하얼빈에 오기 전부터 올해 1월 19일 개관한 안중근의사기념관 외관 사진을 보면서 디자인이 조금 독특하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의문을 식당에 오기 불과 두어시간 전에 방문한 하얼빈 시내 성 소피아 성당에 갔을 때 풀 수 있었다.
성 소피아 성당은 1907년, 당시 러시아조차지였던 하얼빈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을 위해 지어진 러시아정교회의 교회당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성 소피아 러시아 정교회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대부분의 안내 책자에 성 소피아 성당이라고 적혀있다. 건축양식이 성당과 같아서일 것이다.
이 러시아 정교회 건물은 지금 하얼빈 건축박물관으로 쓰인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지난 100년간 하얼빈 건축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많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 흑백사진이다.
함께 갔던 수원대 사학과 박환교수가 이 사진들 중에 옛날 하얼빈역 사진이 있다면서 전에 왔을 때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사진을 천천히 둘러보며 한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많이 보아 익숙한 듯한 사진 한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미 눈에 익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외양과 닮은 건축물, 바로 초기의 하얼빈역이었다.
이 사진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은 후에 보니 그 뒤에도 옛날 하얼빈역 사진들이 여러 장 걸려있었다. 물론 흑백사진으로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곽은 뚜렷이 알 수 있었고 역앞 광장의 자동차와 마차들도 사진 속에 나와 있었다.
나는 이 초기 하얼빈역 형태를 안의사기념관 외관으로 차용한 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아이디어가 매우 풍부하고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던 중 서학동 부국장을 처음 봤을 때 매우 명석하고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서학동 국장에게 그러한 첫 질문을 던지면서 혹시 서 부국장 본인이 그런 아이디어를 낸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서 부국장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혔다. 하얼빈역은 그동안 세차례나 고쳐 지어서 과거의 흔적이 전혀 없으므로 100년전 하얼빈역에서의 의거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당시 역사의 모형을 따서 외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옛 역사 모형 위의 시계를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결행한 9시반에 맞춰놓는 문제로 다소의 논란이 있었다고 했다. 시간을 9시반으로 고정시켜 놓을 경우 열차 승객들이 현재의 시간으로 혼동할 우려가 있다며 처음에는 철도역측에서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잘 설득이 되어 시계를 의거 시간으로 고정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질문을 또 하나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해 6월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는 표지석을 세워달라고 요청했는데, 중국이 우리가 예상치도 못했던 기념관을 만들어주었다. 중앙정부로부터 처음에 지시가 어떻게 왔는가? 기념관으로 지어지게 된 경위를 말해줄 수 있는가?”

서 부국장은, “처음부터 기념관으로 지으라는 지시가 중앙정부로부터 왔다”고 밝혔다. 외교부로부터 처음 그런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그런데 명칭을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결정하는 과정에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초의 지시가 ‘사건발생지기념관’으로 지으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힘든 과정을 통해 결국은 ‘안중근의사기념관’으로 현판을 달게 되었다며 개관 때까지 비밀을 유지하느라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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