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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오지, 사가다-바나우에 답사기 (1):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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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오지, 사가다-바나우에 답사기 (1)

아슬아슬했던 사가다의 루미앙 동굴 탐사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4/03/03 [23:13]

필리핀의 오지, 사가다-바나우에 답사기 (1)

아슬아슬했던 사가다의 루미앙 동굴 탐사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4/03/03 [23:13]

 (이 글은 필자가 2009년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필리핀 루손섬 중부의 오지인 ‘사가다’와 ‘바나우에’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답사기이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루손섬 아래쪽에 있으며 사가다와 바나우에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버스로 10시간 이상 가야하는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사가다는 굴속으로 물이 흐르는 루미앙 동굴로 유명하며, 바나우에에는 세계 8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역사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라이스 테라스 즉 계단식 논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필리핀의 가장 큰 화페인 1천 페소짜리 지폐에도 라이스 테라스가 나와 있다. 필자는 젊은 필리핀 영어선생 앨런을 동무삼아 함께 시외버스와 지프니를 타고 여행했다. 3박 4일이었지만, 셋째날은 바나우에에서 마닐라까지 밤새 버스를 탔으므로 실제로는 2박 4일이었다. 새벽에 마닐라에 도착해 다시 버스를 타고 필자의 숙소가 있던 클락으로 돌아왔다. 답사기를 세 편으로 나눠 싣는다.)

▲ 사가다의 루미앙 동굴, 등불을 든 이는 현지의 동굴 가이드.

사가다까지의 머언 길

2009년 8월 29일(토).
아침 일찍 클락에서 출발, 딸락에서 앨런선생과 만나 오전 11시 30분 바기오 행 버스를 타고 4시간 만인 오후 3시 30분 바기오에 도착했다.
바기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유명한 고지대 휴양도시로서 해발 1천 5백 미터에 위치해 연중 평균기온이 20도라고 한다. 최고 기온도 26도 이상은 안 올라가 연중 우리나라의 봄, 가을 날씨 같은 곳이다. 마닐라에서 버스로 6시간 가량 걸린다. 버스는 마닐라에서 클락, 딸락 등을 거쳐 바기오로 가는데 마닐라에서 클락까지 한 시간, 클락에서 딸락까지 1시간 가량 걸린다.
바기오에서 예약해 둔 호텔에 체크 인을 한 후 시내를 둘러보러 나갔는데, 어학 연수차 이곳에 온 한국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시간 넘게 이곳 저곳을 돌아 본 후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른 아침 사가다행 버스를 타야했으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버스는 30일 오전 6시 15분에 바기오에서 출발하여 사가다에 점심때인 12시 15분에 도착하였다. 정확하게 6시간 걸렸다. 당초엔 7시간 걸린다고 했는데, 중간에 쉬는 시간을 줄인 듯 했다. 마닐라에서 바기오까지 가는 버스에는 대부분 에어컨이 장착되어 있으나 바기오에서 사가다로 가는 버스엔 에어컨 없었다. 가는 길이 전부 고지대여서 선선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필요없을 것 같기도 했다. 지역 전체가 거의 산이어서인지 주(州) 이름도 마운틴 프로빈스(Mountain Province)다.

 가는 길은 대부분 산등성이 아니면 8-9부 능선에 있다. 도로는 80% 이상 포장되어 있다고 했다. 도중에 포장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차가 구르면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다. 내려다보는 풍경이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 볼 때와 비슷하니 비행기탄 기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멀리 골짜기 아래 흐르는 계곡 물이 하얀 실처럼 보였다. 도로의 높이는 평균 해발 1천5백 미터라고 했다. 계단식 밭에서는 고냉지 채소를 주로 재배한다.
칼라릴리 (Calalily)라고 불리는 튜립 같은 모양의 아름다운 흰 백합꽃이 마치 우리나라 가을철의 코스모스처럼 길가에 많이 피어 있었다.

▲ 바기오에서 사가다로 가는 산길에서 내려다 본 풍경. 골짜기에 구름이 잔뜩 들어차 있다. 도로의 평균 해발은 1500 미터.
▲ 도로 주변 곳곳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칼라릴리.
▲ 짐을 진 마운틴 포르빈스 여인의 모습

사가다 종점은 한산했다. 흔히 시골 정류장 같은데서 보는 노점상도 눈에 띄지 않았다. 먼저 루미앙 동굴에 가보기로 했다. 동굴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관광사무소에 접수하고 가이드를 반드시 대동해야 한다고 하였다.
두 시간짜리와 네 시간짜리 코스가 있다고 하여 기왕 온 김에 많이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4시간 코스를 택했다. 동굴 구경은 국내외에서 여러번 했던 터라 여태까지 보아 온 다른 동굴들과 비슷하려니 생각하였다. 미리 얘기지만 그게 착각이었다. 선진국 같으면 안으로 들여보내지도 않을 그런 험난한 동굴임을 들어가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으니 그 때는 이미 돌이킬 수 가 없었다.

루미앙 동굴

▲ 동굴 입구에 있는 오래된 통나무 관

가이드를 따라 도착한 루미앙 동굴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동굴입구에 통나무를 파서 만든 관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었다. 사자(死者)의 희망에 따라 통나무에 넣어 동굴 입구에 쌓아 놓거나, 아니면 관을 절벽에 매달아 놓는(Hanging Coffin)것이 이 지방의 풍습이란다. 관의 크기는 사람 키보다 작았다. 배에서 나올 때의 모양으로 팔다리를 구부려 넣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조금 들어가니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입구가 나왔다. 이때도 나는 좁다란 이 입구를 지나면 평평한 땅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험한 등산할 때 때로 바위 사잇길로 비집고 내려가듯 그렇게 계속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진흙이 많아서 매우 미끄러웠다. 미끄러져서 잘못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엉덩이로 기어 게걸음( Crab walk)으로 내려가야 했다. 가이드가 계속 ‘Crab Walk!’ 를 외쳤다. 옷이 진흙에 엉망이 되어갔다.
드디어 지하강(Underground River)이라고 부르는 동굴 속 계곡이 나왔다. 지상의 계곡처럼 물이 콸콸 흘렀다. 우기이기 때문에 수량이 보통 때보다 많다고 했다. 어떤 계곡에서는 상륙작전 때의 해병대원처럼 가슴 위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건너야 했는데, 짧은 바지를 입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옷을 입은 채 그대로 들어가거나 바지를 벗거나 선택해야 했다. 필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체면과 현실을 고려해서 적절한 선택을 했다는 것만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먼저 들어간 젊은 필리핀 여선생들(바기오 한국인 운영 영어학원의 영어선생들이었다.)은 청바지 차림으로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다. 우리는 물에 젖어서는 안되는 소지품은 비닐로 싸서 작은 가방에 넣어 가이드에게 주었다. 가이드는 가방과 랜턴을 머리에 이고 먼저 계곡 물을 건넜다.
길이는 7-8미터 가량인데, 물이 가슴 위를 넘어 거의 목까지 찰랑찰랑했다. 1976년 봄 육군 소위 시절 광주 상무대에서 화순 동북 유격장으로 훈련 갈 때 밤중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적벽강을 건널 때의 생각이 났다. 우리는 칼빈 총을 두 손으로 어깨에 메고 마치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한 장면처럼 비장한 모습으로 강을 건넜다. 33년 전 얘기다.
온몸을 모두 적신 여선생들은 낮은 물에서는 아예 텀벙 주저앉아 놀았다. 필자가 ‘용감한 당신들을 한국의 특수부대에 추천하겠다’고 말했더니 깔깔들 웃었다. 가이드들은 랜턴을 들고 3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데 필리핀 여선생들은 우리팀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 군데 군데 미끄러운 곳이 많았던 동굴 내부
▲ 아예 동굴 물속에 들어가 앉은 필리핀 여선생들

진퇴양난(進退兩難)

이런 경우를 진퇴양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이 들어찬 계곡을 잘 건너왔나 했더니 이후로는 미끄러운 진흙이 덮인 바위 위를 계속 지나야 했다. 바위 위를 살금 살금 오르내리며 옆을 쳐다보니 시커멓다. 위험 천만. 미끄러져 떨어지면 사망이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다치지 않고 살아서 여기를 빠져 나가는 것’이 목표다.
필리핀 사람들처럼 슬리퍼를 신고 들어갔는데 바닥이 일정치 않아 신었다 벗었다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하이킹용 슬리퍼를 싣는데, 이 슬리퍼는 바닥이 덜 미끄러지는 재질로 되어있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동굴 아랫부분의 대리석 색깔의 바위들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데도 불구하고 맨발을 갖다 대도 발바닥이 바위에 착 달라 붙어 전혀 미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위의 진흙 덮힌 바위 위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웠다.(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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