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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은 불가능했다.":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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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은 불가능했다."

세종경제신문 연재⑦ ]조창완편집장 '칭기즈칸을 통해 읽는 노마디즘 '칭기즈칸 키워드,인재와 협력'

조창완 편집장(차이나 리뷰) | 기사입력 2017/01/05 [01:09]

"협업이 없었다면 칭기즈칸의 세계 정복은 불가능했다."

세종경제신문 연재⑦ ]조창완편집장 '칭기즈칸을 통해 읽는 노마디즘 '칭기즈칸 키워드,인재와 협력'

조창완 편집장(차이나 리뷰) | 입력 : 2017/01/05 [01:09]

 

몽골인들의 생활터전  사진=몽골 이호기자/세종경제신문

“나는 일단 현명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얻어 그들을 내 옆에 두었다. 멀리 가게 하지 않았다.”

 “지혜로운 친구가 없는 것보다는 악독한 적이 없는 게 나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얼마나 되는가를 곰곰이 묻게 된다. 적적할 때 부르면 만나서 소주 한잔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 자신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때 작은 도움을 주면서 뒤를 생각하지 않는 친구 등등. 안타깝게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포기 가운데는 ‘친구(인간관계)’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친구를 만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는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친구는 긴 시간 동안 진정한 인간적 유대를 통해 만들어진다. 물론 한 번 만들어진 우정이 영원히 지속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인생의 큰 공부다. 친구의 확장은 인재를 만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고립무원의 초원에서 졸지에 가장이 된 칭기즈칸은 친구의 가치를 깨달았다. 나중에 적이 되긴 하지만 자무카를 만나면서 경쟁이라는 단어를 익힌다. 그는 정복전쟁마다 유능하게 보이는 이들을 만나면 데려와 어머니 후엘룬에게 맡겨 형제나 자식으로 키웠다. 메르키트족 공격 시 데려와 몽골제국 건설에 큰 공헌을 한 쿠추나 타이치우드족의 코코추, 타타르 출신의 쿠두쿠 등이 그렇다. 거대한 몽골제국이 150년을 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인재 때문이다.

전쟁의 가장 큰 인재인 장수에서 발굴된 인재가 많다.

우선 ‘화살’이라 불리는 제베 등 수많은 전사가 있다. 적이었어도 마음에 들면 그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또 그의 사람이 되면 신뢰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칭기즈칸이 말을 찾는 것을 도와준 보르추도 어릴 적에 만난 친구인데, 보르추는 참모로 끝까지 함께했다. 칭기즈칸은 나이만을 공격할 때 잡은 포로 타타통가에게 문자를 만들게 해 몽골어가 탄생했다.

칭기즈칸의 인문적 친구로 대표되는 인물은 야율아해(耶律阿海)와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다. 거란족 출신으로 금나라 귀족이던 야율아해는 옹칸에게 사신으로 갔다가 칭기즈칸을 보고 감화해 그의 부하가 됐다. 그는 중원의 발전된 행정, 법률, 전략을 칭기즈칸군에 심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 반면에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이 중도를 함락할 때 포로 중에 발탁되어 호라즘 정벌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00만 명의 몽골족으로 거대한 제국을 지배한 데는 칭기즈칸의 이런 인재경영이 주효했다. 민족, 인종, 종교가 달라도 항복하고 복종을 서약하면 몽골제국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포로나 노예도 신분 상승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테무진은 어릴 적 찾아온 대장장이 자르치우다이를 귀하게 대접해 무기 분야를 누구보다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천민 출신의 대장군 모칼리도 몽골족이 아니었지만 ‘좌(左) 모칼리, 우(右) 보오르초’라고 불릴 만큼 칭기즈칸의 양대 측근으로 큰 신임을 얻었다. 칭기즈칸은 서역 원정을 떠날 때 모칼리에게 금나라의 통치를 맡길 정도로 그를 아꼈다.

 “한 대의 화살이 약하다면 합쳐야 하며, 다른 화살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설령 장사라 해도 적을 무너뜨리지 못할 상황에 빠져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형제지간에 서로 도와야 하며, 서로 지원하면 강대한 적이라도 너희들이 전승할 수 있다.”

 “개는 새끼를 많이 낳는다. 매번 네다섯을 낳는다. 하지만 서로 머리를 물어뜯어 무리를 이루지 못한다. 양은 비록 한둘을 낳지만 서로 화목해 천만의 무리를 이룰 수 있다.”

칭기즈칸이 인재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가 협업(collaboration)이다.

몽골인들이 나담축제때 즐기는 몽골식 씨름경기다. 사진=몽골 이호기자/세종경제신문

몽골의 대표적인 신화는 ‘알랑고아의 화살 서약’이다. 몽골족의 할머니라 할 수 있는 알랑고아는 죽기 전에 막내아들 보돈차르에게 화살 다섯 개를 가져오게 한 다음 줄로 묶고 화살을 부러뜨려 보라고 첫째 아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아들 중 누구도 다섯 개 묶음의 화살을 부러뜨리지 못한다. 그러자 알랑고아가 아들에게 화살을 한 개씩 나눠주고 부러뜨려 보라고 하자 쉽게 부러뜨린다. 알랑고아는 이것을 보고 유언한다.

 “너희 오 형제는 함께 묶인 다섯 개의 화살처럼 합심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씨족이 번창하고 부락이 강대해질 수 있다. 오늘 내가 한 말을 절대 잊으면 안된다.”

 알랑고아의 화살 서약은 ‘화살 하나하나는 부러뜨리기 쉽지만, 뭉친 화살은 부러뜨리기 어렵다’는 로스차일드가의 창립자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다섯 아들에게 남긴 유언과 유사하다.

 칭기즈칸도 이 유언에 충실하여 무기를 합쳐야만 강대한 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각자의 능력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협업을 하기는 쉽지 않다. 공무원 조직에 있으면서 각 국 간은 물론이고, 각 과, 혹은 각 계간도 협업이 이뤄지는 사례를 만나기 극히 어려웠다. 이는 우리 공무원 조직의 구조나 평가체계에 협업에 관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공무원 사이에도 이 협업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노마드에게 협업의 마인드가 없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세계적인 IT 기업인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도 한 사람의 절대적인 선구자가 이룬 것은 없다. 래리 페이지나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같은 걸출한 영웅이 있었지만, 그들이 팀을 이루어 전문가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기업이 가능했다.

동양고사에는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재미있는 고사가 있다. 이 고사는 전국시대 말기 정치가인 맹상군(孟嘗君)이 가신들과 어떻게 협업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많은 식객을 거느린 맹상군을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죽이려 하자 자신의 식객 가운데 도둑이 황실에서 여우 목도리를 훔치고 닭소리를 내어 성문을 열게 해 맹상군을 빠져나가게 해줬다는 고사가 있다. 노마드는 맹상군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재주를 가진 특성있는 인물들이다.

 “적을 이겼을 때 재물을 탐하지 말고, 어떤 재물도 공동분배하라.”

 “만부장, 천부장, 백부장은 매 한 사람도 자기의 군대를 보유해 질서정연하게 하라. 수시로 좋은 작전을 준비하라. 일단 소집령이 내리면 밤낮을 가리지 말고 하달한 시점에 출정해야 한다.”

 칭기즈칸은 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욕심을 부렸다면 여자에 관해서일 것이다. 젊은 날 부인인 부르테가 다른 부족에 납치된 것이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그는 정복지의 여자를 취하고, 법령인 대자사크에 모든 딸을 지도자가 가질 수 있게 해놓았다. 실제로 칭기즈칸이 적게는 44명, 많게는 500명에 달하는 처첩을 거느렸다는 말이 있다. 이 가운데는 나이만의 황후 구루베수를 비롯해 쿠란 황후 등 현명한 이들이 많아서 큰 화가 되지 않았다.

반면에 전장에서 얻는 모든 것은 부하들과 공평하게 나누었다.

타타르를 공격한 후 당숙인 알탄과 숙부 다리타이 등이 이 규율을 어기자 처음에는 처형하려 했다. 주위의 만류로 처형은 하지 않지만 재물을 돌려받아 부하들과 나누면서 공평함에 관한 믿음은 더 확실해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칭기즈칸은 기존의 족장 일인체제의 국가에서 체계를 가진 국가로 탈바꿈시킨다. 이런 흐름은 지금도 살아있다고 칭기즈칸 전문 연구가 김종래 작가는 말한다.

 “원대한 비전 제시와 개인별 약탈금지로 칭기스칸의 병사들은 성취욕에 불탔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기여한 만큼 반드시 돌아온다는 믿음도 갖게 됐다. … 지금도 이 전통이 남아있다. … 몽골 나담축제의 꽃은 말타기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경주에서 우승하면 기수보다 말 조련사에게 더 많은 포상이 돌아간다.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의 공을 아는 탓이다.”(김종래,『CEO 칭기스칸』 중에서)

 칭기즈칸은 백 명을 다스리는 백부장, 천 명을 다스리는 천부장, 만 명을 다스리는 만부장 등 공과 직위에 따라 통치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칭기즈칸을 존경했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몽골 대군의 유럽 침략을 오합지졸의 맹목적인 이동이라 여기지 마라. 이들 유목민족에게는 엄격한 군사규율과 심사숙고하는 지휘관이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적수보다 휠씬 영리하고 노련했다”고 나폴레옹은 말했다. 1800년 이후 유럽 전쟁사에서 걸출한 발자국을 남긴 나폴레옹 역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이 군사규율과 지휘관들의 능력이었다.

이 부분에서 칭기즈칸은 독보적인 능력을 보여줬다. 물론 칭기즈칸에게도 실수가 있었다.

칭기즈칸이 사냥을 갔다가 목이 말라 바위 아래에서 물을 모아서 마시려 했다. 그런데 자신이 아끼던 매가 그 물을 엎질렀다. 두 번을 참은 후 세 번째엔 매를 칼로 베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에 물이 나오는 곳의 위를 봤는데, 맹독사가 배가 터진 채 죽어 있었다. 칭기즈칸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와 그 매의 형상을 금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쪽 날개에는 ‘분개하여 판단하면 반드시 패하리라’를 다른 한쪽에는 ‘조금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벗은 벗이다’는 글을 써넣어서 그 미안함을 달랬다. 그리고 이후에는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순간의 감정으로 판단하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지도자의 덕을 갖추게 됐다.

초원과 사막에서는 결국 협업하지 않으면 죽는다. 협력은 필수적이다. 사진=몽골 이호기자/세종경제

노마드는 결국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수많은 판단을 하기 마련이다. 이때지나치게 성급하게 판단하면 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필자가 처음 중국을 만난 것은 1998년 10월 1일 전후 창장(長江, 양쯔 강) 대홍수를 이겨가는 르포기사를 쓰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처음 만나는 중국은 쉽지 않았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인산인해, 더럽고 불편한 중국 기차, 특히 불편한 화장실 등. 그런데 나는 귀국해 『사회평론 길』(1998년 11월호)에 원고를 쓰면서 마지막을 이렇게 썼다.

 “변방 민족들의 끊임없는 침입을 자신들에게 동화시킬 힘은 중국인들의 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물론 급격한 자본주의의 도입으로 본연의 인정을 잃어가는 중국인들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원의 힘이 아니다. 중원의 힘은 창장의 대홍수를 너끈하게 이겨내고 이방인을 품어 안는 창장 강변의 그 민초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 길에 만난 중국을 다양한 불친절과 나쁜 기억으로만 생각했다면 다음 해 나는 중국으로 향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판단이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나쁜 결과를 만들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방편을 통해 우리나라와 중국을 이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는 자부할 수 있다.

그런 내 경험이 있어서라도 나는 노마드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 「그 꽃」)

 ★“도요타가 갖가지 난관에도 번영을 누리는 것은 “사람만이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을 이루어 낼 수 있다”라는 핵심 철학 덕분이다. 그들은 사람을 사업 확장과 경쟁력 강화의 열쇠로 본다. 그들은 사람이 성공의 열쇠라고 굳게 믿을 뿐 아니라 그러한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사람을 지원할 지원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제프리 라이커, 데이비드 마이어 공저, 『도요타 인재 경영』 중에서)

필자: 조창완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미디어오늘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9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글, 방송, 저술 등으로 중국을 전했으며, 2004년에는 중국 전문 여행과 방송코디네이션회사인 알자여행(www.aljatour.com)을 창업, 운영하고 있다. 2008년 귀국 후 한신대 외래교수, 인민일보 특임기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0년 중국 전문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5년을 일했다. 현재는 알자여행 대표로 일하며, 중국 전문 잡지 ‘차이나리뷰’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그밖에도 중국 전문 컨설턴트로 중국 투자 유치, 관광객 유치, 방송 등 콘텐츠 교류를 하며 전문 강사 등으로 뛰고 있다.

 대표작: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 『중국도시기행』, 『차이나 소프트』, 『베이징을 알면 중국어가 보인다』, 『오감만족 상하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달콤한 중국』 등 13권

페이스북: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changwa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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