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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걸림돌을 징검다리로 만들어라!":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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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걸림돌을 징검다리로 만들어라!"

[세종경제신문 연재⓸ ]조창완편집장의 '칭기즈칸을 통해 읽는 노마디즘'칭기즈칸 키워드, 인내와 극복

조창완(차이나리뷰 편집장) | 기사입력 2016/12/26 [17:13]

칭기즈칸,"걸림돌을 징검다리로 만들어라!"

[세종경제신문 연재⓸ ]조창완편집장의 '칭기즈칸을 통해 읽는 노마디즘'칭기즈칸 키워드, 인내와 극복

조창완(차이나리뷰 편집장) | 입력 : 2016/12/26 [17:13]
몽골의 푸른 보석 흡스굴 호수 (몽골=이호기자)/세종경제신문

 ‘헬조선(지옥과 한국을 합성한 신조어)’이나 ‘흙수저(부모의 능력이나 형편이 넉넉지 못한 어려운 상황에 경제적인 도움을 전혀 못 받고 있는 자녀를 지칭하는 신조어)’ 같은 부정적인 신조어가 난무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사회적 신분 상승의 기회도 잃어버린 것이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윗세대들은 말한다.

 “윗세대 때는 좋았는지 알았냐. 80,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의 누나들은 구로공단에서 저가의 노동으로 일했고, 70년대 선배들은 월남전에서, 60년대 선배는 파독 광부나 간호사 … 한국전쟁, 일본의 병합 ….”

어린 칭기즈칸과의 조우

 맞는 말이다. 다만 억울한 것도 있다. 정작 피와 땀을 흘린 이들은 민중들인데, 정작 지금도 부를 가진 이들은 항상 권력만 추구하던 조선 시대 노론 귀족층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주의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총 경제성장의 70%가 상위 10%의 몫이 됐고, 또 그 대부분이 상위 1%의 품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얼마 전 작고한 신영복 선생은 저서 『담론』에서 “1623년 인조반정 이후로 노론 세력들은 지금까지 지배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군사정권에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보수 구조를 완성해 놓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그 상황을 보여준다.

그럼 이 상황에 주저앉을 것인가. 이럴 때 우리는 어린 칭기즈칸을 만날 필요가 있다. 칭기즈칸은 몽골의 왕족인 황금씨족의 일원으로, 훌륭한 아버지인 예수게이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죽으면서 큰 위기를 맞는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는 이복형제와 싸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육촌의 배신 속에서 두려워했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일이었다.”

 “너무 막막하다고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아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그의 이 세 격언은 그가 겪은 곤란을 상징하는 말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1년 만에 같은 황금씨족이던 타이치우드는 칭기즈칸 가족을 버리고 떠나 버린다. 말과 양도 턱없이 부족해 이 가족은 들쥐인 타르박이나 물고기로 연명했다. 자신을 지켜 줄 사람들이 떠난 상태에서 후엘룬은 가족이 뭉치면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가족을 지킨다. 그런데 이때 또 다른 이복형제인 벡테르가 힘을 믿고 가족들에게 오만하게 군림한 것이다. 칭기즈칸으로서는 큰 판단을 해야 한다. 결국 동생 카사르와 같이 벡테르를 화살로 쏘아 죽인다.

칭기즈칸의 인생 최대 위기

후엘룬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한다. 초원에도 소식이 퍼져 칭기즈칸에 대한 나쁜 소문도 돈다. 칭기즈칸 역시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후회하고, 남은 이복동생 벨구테이와는 평생을 우애롭게 지낸다. 이런 사건이 있고 나서 칭기즈칸 가족은 조금씩 안정을 찾는다. 그런데 그의 성장을 두려워한 타이치우드족의 지도자 타리후타이는 그를 죽이려 한다. 칭기즈칸에게 인생 최대 위기가 찾아온다.

그를 죽이려는 타이치우드족을 피해 숲에 숨었지만 결국에는 잡혀 칼을 찬 포로가 된다. 칭기즈칸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쳐 물속에 숨는다. 그런데 수색 중이던 소르칸 시라가 그를 발견한다. 칭기즈칸의 눈을 본 소르칸 시라는 그를 붙잡지 않고, 다시 도망갈 틈을 마련해 준다. 하지만 그가 찬 칼 등으론 도망갈 방법이 없다.

칭기즈칸은 그에게 호의적인 소르칸 시라의 집을 찾아서 수색을 피한다. 이후 소르칸 시라의 기지로 목숨을 건져 다시 마을로 돌아와 숨을 수 있게 된다. 몽골의 부족들은 경쟁이 되는 이들은 애당초에 싹을 자르는 문화가 있었다. 칭기즈칸 스스로도 이복형 벡테르를 죽였고 타타르를 정벌했을 때는 수레바퀴보다 큰 사람은 모조리 죽이는 잔혹함을 보였다. 때문에 타이치우드에게 잡힌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참고 견뎌내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걸림돌을 징검다리로 만들어라.”

 “넘어졌을 때 멀리보고 크게 보라.”

 청년들에게 자신에게 다가온 위기를 발전의 디딤돌로 삼으라는 말을 하면 그저 뻔한 충고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위대한 업적을 이룬 대부분의 선인들 가운데 위기 없이 순탄하게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기득권층 역시 고인 물은 썩는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흡스굴 호수가의 Toilgt캠프  몽골=이호기자/세종경제신문

때문에 자식 교훈부터 가풍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이런 안전장치가 모두 유효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3대를 넘기는 부자나 권력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것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먼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다.

어린 시절부터 칭기즈칸과 안다(의형제)를 맺은 자무카는 그의 가장 큰 조력자였다. 하지만 ‘십삼익전투’에서 칭기즈칸은 자무카가 끌어모은 3만 대군에게 크게 참패한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덕으로 주변을 이끌어 세력을 넓혔고 이후 자무카를 물리친다.

 “내 역량이 아직 부족할 때는 나는 오로지 참았으며, 본의 아니게 양보할 때도 있었다.”

 “밝은 대낮에는 세심한 늑대처럼 세심하게 살피고, 어두운 밤에는 까마귀처럼 굳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칭기즈칸의 가장 큰 위기 가운데 하나는 그가 신혼 1년 만에 메르키트족의 습격을 받아 아내인 부르테가 납치당한 것이다. 메르키트족은 칭기즈칸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아내 후엘룬을 납치할 때 피해를 본 부족으로 부르테 납치는 복수에 가까운 행동이다

. 일반적인 감정이라면 바로 메르키트족을 공격할 수 있지만 칭기즈칸은 토릴칸(후에 옹칸)과 자무카의 연합군을 얻은 후에야 복수전을 벌여 아내 부르테를 찾아온다. 이후 돌아온 아내가 낳은 아이가 주치인데, 주치는 아버지가 칭기즈칸인지 아닌지 확신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주치를 크게 차별하지 않았다. 칭기즈칸을 만든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어머니 후엘룬과 아내 부르테라는 것을 부인할 이들은 많지 않다. 실제로 위대한 인물에게는 위대한 여성의 힘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칭기즈칸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면 그는 더 이상 발전과 업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칭기즈칸은 이후에도 부르테를 왕후로 끝까지 같이했다. 다만 부르테의 납치는 여성에 대한 집착을 불러오기도 했다.

 “실수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용기 있는 사람은 운명의 길을 개척한다.”

 “다른 사람이 너를 보호하기를 바라지 마라. 너의 길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을 구걸하지 마라. 단지 배움을 통한 자기의 역량으로 죽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지 초원만 있다면 몽골인은 생존할 수 있다.”

 칭기즈칸 삶의 가장 큰 교훈 가운데 하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는 것이었다. 몽골이 다스린 영역이 몽골에서 직선거리로 4000km가 넘는 카스피해, 더 멀리는 헝가리 동부에 이르렀으니 그 영역이 얼마나 큰지 감안하기 어렵다.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전체 인구 100만 명, 군대 20만 명의 몽골이 이 거대한 제국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어버린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에 비하면 이 시대 우리 젊은이들이 가진 꿈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취업 등이다. 칭기즈칸에게 있어 이런 직업은 ‘너의 길을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것을 구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율적인 역량보다는 안전하다는 이유로 그 시스템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수동적인 자세로 이 세상을 대처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노마드가 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참고 견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몽골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땅은 아니다. 때로는 가진 가죽 전부를 얼려 죽이는 강력한 한파와 사막 토지 등으로 인해 농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이런 땅이 역으로 그를 유목민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초원만 있으면 자신들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구원이 이미 우리 손 안에 있고 힘들여 찾지 않아도 된다면 거의 모든 인간은 구원을 등한시 할 것이다. 훌륭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렵기도 한 것이다.”(스피노자 명언 중에서)

 

필자: 조창완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미디어오늘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9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글, 방송, 저술 등으로 중국을 전했으며, 2004년에는 중국 전문 여행과 방송코디네이션회사인 알자여행(www.aljatour.com)을 창업, 운영하고 있다. 2008년 귀국 후 한신대 외래교수, 인민일보 특임기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0년 중국 전문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5년을 일했다. 현재는 알자여행 대표로 일하며, 중국 전문 잡지 ‘차이나리뷰’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그밖에도 중국 전문 컨설턴트로 중국 투자 유치, 관광객 유치, 방송 등 콘텐츠 교류를 하며 전문 강사 등으로 뛰고 있다.

 대표작: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 『중국도시기행』, 『차이나 소프트』, 『베이징을 알면 중국어가 보인다』, 『오감만족 상하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달콤한 중국』 등 13권

페이스북: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changwa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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