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html on line 3
[칼럼] 9.11 열세돌-미국은 왜 중동에 목을 맬까?:세종경제신문
로고

[칼럼] 9.11 열세돌-미국은 왜 중동에 목을 맬까?

김형배 주간 | 기사입력 2014/09/12 [15:26]

[칼럼] 9.11 열세돌-미국은 왜 중동에 목을 맬까?

김형배 주간 | 입력 : 2014/09/12 [15:26]

2001년 9월11일 우연히 CNN을 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처음에는 경비행기가 조종미숙으로 뉴욕 맨하탄 쌍둥이빌딩에 부딪친 줄로만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잠시 후 또 다른 항공기가 반대편 방향에서 날아와 다시 이 고층빌딩을 정면으로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이 시각이 정확히 오전 8시45분, 9시3분이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내가(필자는 당시 한 신문사의 국제부장을 맡고 있었다) 퇴근을 중단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긴급하게 상황 파악에 나선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이어진 속보는 엄청난 내용으로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모두 4대의 민간 항공기가 아랍인 테러리스트에 공중 납치돼 그중 2대는 맨하탄 쌍둥이 빌딩에, 1대는 각각 워싱턴DC의 펜타곤(국방부)에 충돌시켜 파괴했고 나머지 한 대도 백악관을 향하려다 미수에 그쳐 인근에 추락했다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세기의 대참사였다. 이 사태로 뉴욕이 세계에 자랑하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의 두 빌딩이 무너져 내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펜타곤은 크게 부서진 채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고 건물은 화염에 휩싸였다.

미국은 이 참화로 사망,실종자만 5,000여명(4개 민항기 승객과 승무원 266명 포함), 부상자 6,000여명의 대형 인명피해를 냈다. 동시에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전면 금지됐고 전국 주요 건물의 폐쇄에 이어 뉴욕과 워싱턴 DC 일대의 모든 통신 및 교통수단 운행이 전면 차단됐다.

그러나 전세계 우방국 정상들의 전화와 이메일까지 도, 감청해온 미국 정보기관들조차 이 대담한 동시 테러 음모를 사전에 눈치채지 못했다. 사태의 배후에 사우디의 갑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가 있었음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알아낸 것은 일정한 시일이 지난 후였다.

당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CIA의 보고서를 근거로 같은해 아프가니스탄과 2003년 이라크에 대한 전면전을 잇따라 시작했다.

9․11테러 이후 13년이 지난 11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공습을 경고해 이라크에서 발원한 중동 사태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임을 실감케 한다.

이라크와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확전 선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한 미국인 인질 2명의 참수가 직접 원인으로 꼽힌다.

오바마는 실제 "IS는 이슬람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니 그들을 분쇄하고 궁극적으로는 파괴할 것"이라면서 ▲IS에 대한 체계적 공습 ▲이라크와 시리아 내부세력 지원 ▲실질적인 테러방지능력 강화 ▲인도적 구호노력 강화 등 4대 원칙을 제시해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비롯한 군사개입을 분명히 했다.

이라크 전세의 심각한 역전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전쟁의 참화가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매우 우려스런 국면을 맞은 것이다.

이역만리나 떨어져 있는 미국은 왜 이처럼 중동 개입에 목을 매는 것일까?

우선,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큰 국익이 걸려 있다.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 없이 1945년 이스라엘의 건국은 오늘의 중동 정세에 근본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2차 대전 당시 막대한 군자금을 댄 유태인에 대한 서방의 보답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아랍인들의 강제 축출로 나타났다. 거기에 대전기간 연합국으로서 전략적 동맹 관계를 유지했던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냉전에 돌입했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생존에 목을 맨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수에즈 운하를 자신들의 해상교통로로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더 나아가 중동에서 소련의 남하를 포위 봉쇄하고(지금은 중국도 봉쇄 대상임) 그곳 유전에 대한 서방의 기득권을 지켜내는 한편 중동의 분할 지배를 위해서는 이스라엘 축의 활용이 아주 유용한 수단이었다.

전쟁 군자금 대가로 금융자본을 쥐락펴락 하던 유태인들에게 정착지는 ‘축복’이었으나 그 대가는 자신의 땅에서 유배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대재앙’이었다. 2,000년간 정착해 살던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쫓겨난 것이 중동 사태 불안의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간의 분열과 갈등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음도 지적할 수 있다.

사지로 내몰린 팔레스타인의 광복을 위해 중동 형제 국가들(아랍인은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같은 언어를 쓰고 유일신 알라를 믿는 같은 종교문화권이다)이 힘을 보태기는커녕 집권 세력이 앞장서서 서방의 이익이나 챙기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외면 하고 있는 현실이 국내외적 갈등 요인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1952년 아랍 민족주의를 내건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등장도 알고 보면 단일국가를 향한 아랍인들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었다. 2010년 ‘아랍의 봄’은 최근 민중적 소망의 추세를 잘 반영한다. 그러나 아직도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강권으로 왕정을 꾸려가고 이집트가 주변 형제 국가들의 눈총에도 친미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향후 정세에 큰 불안 요인이 될 전망이다.

1980년대 8년간의 치열했던 이란-이라크 전쟁과 1년여를 끌었던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직원 인질사건을 살펴보면 그 배후에 하나같이 미국의 대 중동 전략이 작용했음은 알 수 있다.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친미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의 행보를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의 적대 노선이 급기야 이란 민중의 반미 감정에 불을 붙이면서 빚어진 사태였기 때문이다. 대사관 직원 66명은 1년후 풀려났으나 이들의 구출 작전을 명령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작전 실패로 재선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 전략이 중동 평화에 가장 큰 변수이다.

미국은 1990년 친미 국가인 쿠웨이트 침공을 빌미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전복을 위해 집요하게 움직였다. 아이러니인 것은 혁명국가 이란과의 전쟁 때 미국의 형제로 영웅 대접받던 이라크의 후세인이 어느날 갑자기 미국의 ‘공적 1호’가 됐다는 사실이다.

서방의 이익에 반한다는 판정을 받은 이라크 정권과, 정유산업의 국유화 정책 추진으로 서방의 눈에 난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몰락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문제였다.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설은 개전의 최대 명분이었으나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조작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훨씬 전에 후세인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서방의 대 중동 지배전략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이번 예로 돌아와 보자. 문제의 IS는 원래 미국이 주적으로 규정한 알카에다의 한 지부에 불과했다. 알카에다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막으려고 미국이 키웠던 군사세력임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다. 특이한 점은 알카에다와 그 지부인 IS 모두가 지금은 미국의 적으로 재분류됐다는 사실이다. 3년 전 오사마 빈 라덴 피살 이후 알카에다의 대체 세력으로 급성장해 현재의 친미 이라크 정권을 위협하는 ‘미국판 중동질서의 훼방꾼’이 되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이다.

중동의 어떠한 집권세력도 앞으로도 자신들의 안전이 영원히 미국의 보호 아래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미국 또한 이들 가운데 어떤 세력이 언젠가 자신들을 배신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늘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팬암기 인질 사건의 주범을 미국 법정에 세우도록 협조해 ‘성격 이상자’에서 일약 ‘세계적 평화지도자’로까지 추앙받았던 리비아 카다피의 전격 피살이 남긴 ‘죽음의 암시’라는 파일은 아랍인들의 DNA에 이미 깊이 각인돼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포토/영상
이동
메인사진
무제2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