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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영철버거를 맛보시기 전에: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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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영철버거를 맛보시기 전에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 | 기사입력 2020/07/30 [07:53]

【에세이】영철버거를 맛보시기 전에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 | 입력 : 2020/07/30 [07:53]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 영철버거 대표.

지난 2005년 1월 초 저희 가족에게는 집이 생겼습니다. 저는 기약 없던 처가살이를 끝내고 전셋집이나마 집이란 것을 처음 갖게 됐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공부방도 내줄 수 있었고 이만 하면 장난꾸러기 아들 녀석에게도 비좁지 않은 공간이었을테니까요.

무엇보다 사랑하는 집사람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고, 저희는 고생 끝에 찾아온 행복에 한없이 감격했습니다.

2001년만 해도 제게는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아내는 늘 통장에 100만 원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건 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들어줄 수 없었던 꿈이었습니다. 제게 달랑 남았던 건 공사판 막노동 생활로 망가진 몸뚱이와 단돈 2만 2천 원이 전부였지요.

절박한 상황에서 전 우연히 제 이름을 붙인 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큰 욕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하루 입에 풀칠이나 했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토록 커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하루하루 늘어나는 매상이 그저 고마웠습니다. 그러다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자 아내가 일을 도왔습니다. 그대로 안 되자 직원도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엿한 점포도 가지고 있고, 직원들도 있습니다.

일등공신은 물론 고려대학교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제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제가 만든 버거를 주변 친구들에게 알여주었으며, 저를 그들의 일원으로까지 받아주었습니다.

학교 신문사(고대신문)에서 취재하러 나오고 학생들이 만드는 잡지에도 저의 기사를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보니 전 어느덧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을 알아주는 고대생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거둔 이익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뭔가 보답한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했지요.

그런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갑자기 신문사에서 찾아오고 방송국에서도 출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저를 주인공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습니다. 얼떨결에 제 모습은 신문기사로 나가기도 하고 TV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좋았습니다. 매스컴을 타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재미가 있었지요. 열심히 일한 덕분에 학생들에게 인정받고, 스스럼없는 친구가 되고, 사랑을 받고, 지역 명물(고려대 명물)로 알려진 게 대단히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국 각지에서 방송을 보고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다짜고짜 도와달라며 매달라는 사람도 있었지요.

자기도 영철버거를 하고 싶다며 가맹점을 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저는 사실 가맹점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습니다.

상상조차 안 해보았으니까요. 그래서 모두 말려서 돌려보냈습니다. 제가 겪은 피눈물 나는 고생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복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털어놓으며 울고 매달라는 사람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대하고 나자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그래서 조리법을 가르쳐 준 다음, 몇 가지 공산품을 공급하는 것 외에 일절 관리해 줄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아 가맹점을 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내주기 시작한 가맹점이 2년이 지난 후에는 전국적으로 40개까지 늘어났지요. 그러자 당시에 매스컴에서도 저를 단지 지역 명물 정도가 아닌 크게 성공한 사람, ‘신용불량자’라는 신분에서 체임점을 거느린 사장으로 변신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것이 큰 부담이었습니다. 당시 일부 가맹점에는 개점 1년도 채 안 되어 매출이 안 오른다고 불평하거나, 장사는 안 돼 점포를 내놓았다고 말하거나, 심지어는 공공연히 속았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가맹점을 내준 저는 몹시 속상하고 인간적으로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분명 나보다 훨씬 능력도 있고, 더 좋은 조건에서 시작했는데 왜 나보다 더 잘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때 출판사에서 편집자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 이야기를 책으로 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저를 찾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40개의 가맹점을 거느린 ‘성공한 이영철’이 아닌 실패와 좌절 속에서 방황했던 ‘인간 이영철’의 진솔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다면 한번쯤 용기를 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어려움을 겼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세종경제신문 연재를 통해서 저는 지나간 과거를 낱낱이 들려주려 합니다. 어쩌면 저의 치부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단순히 영철버거로 성공한 사람이 아닌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삶과 치열하게 싸워왔던 인간 이영철의 모습을 보아주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지금 이 순간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좌절의 늪에 빠져 있거나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회의 밑바닥을 헤맸던 저 같은 사람도 결코 놓지 않았던 희망과 기회의 작은 끈을 다시 한 번 부여잡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제가 준비한 영철버기 다섯 개를 맛보시겠습니다! 부디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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