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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가 된 소설가 - 도스토옙스키(8),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시베리아로: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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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가 된 소설가 - 도스토옙스키(8),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시베리아로

이정식 작가 | 기사입력 2020/03/26 [20:36]

사형수가 된 소설가 - 도스토옙스키(8),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시베리아로

이정식 작가 | 입력 : 2020/03/26 [20:36]
시베리아 풍경
시베리아 풍경

한달만에 시베리아 유형지에 도착하다

도스토옙스키는 사형에서 강제노동 4년, 군 복무 4년으로 감형(실제로는 시베리아에서 5년 반 가량 군에 있었다)되어 즉각 페테르부르크에서 옴스크로 이송되었다. 유형수들은 족쇄가 채워진 채 뚜껑 없는 썰매에 실렸다. 1849년 12월 24일 자정 무렵 8개월간 갇혀있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감옥을 출발했다. 집집마다 촛불을 밝히고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살을 에는 추위와 어둠을 뚫고 그들은 말로만 들었던 유형지 옴스크를 향해 떠났다. 이튿날 아침 슐류셀부르크에 도착 한 후 덮개있는 썰매로 갈아탔다.

죄수 이송은 출발 후 중간 경유지 토볼스크에 도착하기까지 17일간 쉼 없이 계속됐다. 심장까지 얼어붙는 듯한 혹한의 계절에 무거운 족쇄를 찬 채 시베리아 유형지를 향해 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옴스크에서의 4년 형기를 마친 직후인 1854년 2월 형 미하일에게 쓴 편지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 페테르부르크, 노브고로드, 야로슬라블, 기타 여러 지방의 황량한 토지를 지나왔어요, 눈에 들어 온 것은 드문 드문 떨어진 이름 모를 외진 마을 뿐입니다. 그러나 휴일(*성탄 휴일 기간의 의미로 보인다)이었던 덕분에 어디를 가더라도 먹고 마실 것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옷을 많이 입고 있었지만, 굉장한 추위였어요.

썰매 위에서 열 시간이상 움직이지 않고 하루에 대여섯 개 역참을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형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겁니다. 추위로 제 심장까지 얼어붙어서 따뜻한 방에 들어 갔는데도 몸이 훈훈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페름은 영하 40도나 됐던 밤도 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추천할 만한 것이 못 되네요. 유쾌한 일이 아니에요.

우랄 산맥을 넘어 갈 때는 참혹한 상황이었습니다. 눈보라로 말도 썰매도 눈에 파묻혔습니다. 한밤중이었는데 우리는 썰매에서 내려 눈 속에서 누군가 우리를 끌어내 주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럽 국경에 서서, 주위는 눈과 폭풍, 앞길은 시베리아와 우리들 미래의 미스터리, 뒤는 우리들 과거 일체. 정말 슬펐어요. 저는 울었습니다.

여행기간 내내 어디를 가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구경했습니다. 역참마다 족쇄를 차고 있는데도 세 배나 비싼 돈을 지불했어요. 그러나, 쿠즈마 프로코히예비치가 우리들 비용의 절반을 부담했습니다. 굳이 지불하겠다면서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저희는 각자 15루블밖에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1850년 1월 11일 토볼스크에 도착했습니다. 담당자에게 인계되고 신체검사를 받고, 갖고 있던 돈은 남김없이 뺏겼습니다. 저와 두로프 그리고 야스트르젬브스키는 별관 방으로 들어갔으나, 스베슈네프라는 동지는 다른 방으로 갔기 때문에 거의 얼굴을 볼 기회도 없었어요.

토볼스크에서 보낸 6일 간의 일들, 제가 받았던 인상을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만 두겠습니다. 동정과 연민에 휩싸여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이렇게는 확실히 말해 두겠습니다. 기존의 유형자들(유형자들이라고 해도 특히 그들의 부인들이였습니만)은 마치 육친처럼 저희를 보살펴 주었어요. 모두 25년간의 불행을 가만히 참아 온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시가 심하기 때문에, 정말 잠시 만날 수 있었을 뿐입니다. 음식과 옷을 받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격려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침 필요한 옷조차 없이 왔기 때문에, 부인들의 정성어린 옷을 굉장히 기쁘게 받았습니다. 드디어 출발하게 되었어요. 3일 후 옴스크에 도착했습니다. (『도스토엡스키의 생활』, 고바야시 히데오, 이은선 번역)

도스토옙스키가 여기서 언급한 ‘기존의 유형자들’이란 당시 시베리아에 유배돼 있던 데카브리스트(*1825년 12월 전제체제 타도와 농노제 폐지를 기치로 혁명을 일으켰다 실패한 일단의 귀족과 청년장교들. 데카브리스트는 러시아어로 12월을 데카브리라고 하는데서 비롯된 것. 12월혁명당원이라고도 한다.)의 부인들이다. 토볼스크에서 만난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에 관해서는 뒤에서 더 설명하기로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떠난지 약 한달 만인 1850년 1월 23일 유형수 수용소가 있는 시베리아의 옴스크 요새에 도착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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