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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한마디] 저주는 막 시작됐다

‘팬덤의 문제’와 ‘이낙연의 위선’

세종경제신문 편집부 | 기사입력 2020/02/16 [14:57]

[진중권 한마디] 저주는 막 시작됐다

‘팬덤의 문제’와 ‘이낙연의 위선’

세종경제신문 편집부 | 입력 : 2020/02/16 [14:57]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5일 ‘팬덤의 문제’와 ‘이낙연의 위선’이란 두가지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이므로 한데 묶어 전문을 아래에 옮긴다. (편집자)

팬덤의 문제

정치적 지지자들을 '팬덤'으로 조직하는 것이 권력자들에게는 편하겠지요. 'fan'이라는 말은 원래 'fanatic'(광신적)에서 유래하죠. BTS를 선택하는 것은 진위나 선악을 따지는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미추나 호오에 따르는 감성적 판단의 영역에 속합니다. 하지만 정당이나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이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게임이죠. 그런데 자기들의 정략적 이해를 위해 전자를 무차별적으로 후자에 옮겨놓다 보니 사달이 나는 겁니다.

호오의 감정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잘못했을 때에도 무조건 옹호부터 하려고 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정당이 거짓을 말하거나 나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죠. 그 때문에 자꾸 거짓을 참으로 바꿔놓고, 악을 선으로 바꿔놓는 가치전도를 수행하려 하는 겁니다. 그 결과는 진실의 기준과 윤리의 기준이 무너지는 총체적 아노미 상태죠. 그걸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거죠.

권경애 변호사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공당이라면 자기 지지자들이 그런 상태에 빠져들지 않게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장 선거에 동원하기 편하기에, 그리고 자기들이 뭔 짓을 해도 지지를 해주기에 그 동안 그런 상태를 방치, 나아가 조장해 왔던 것입니다. 그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유시민이나 나꼼수가 '입진보'로 몰아 입을 닫아버리게 만들고, 최근에는 기자들 전체를 '기레기'로 몰아 팬덤을 아예 사실의 세계에서 유폐시키려 했죠.

물론 30년대의 독일과 등치할 수는 없겠지만, 별자리는 당시와 매우 유사합니다. 나치 이데올로기의 특징 중위 하나가 반지성주의, 반지식인주의입니다. 그들은 지식인을 '국가의 단합을 해치는 반국가분자들'로 규정하고 탄압했죠. 그때 많은 지식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외국으로 망명을 갔습니다. 남은 것은 3류 어용지식인들. 이들은 나치의 프로퍼갠더 머신의 역할을 톡톡히 했죠. 그 결과 나라가 총통의 "무학의 통찰"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다들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한 마디 했다가는 저 팬덤의 공격에 봉변을 당하거든요. 일부 지식인들은 그들과 적당히 타협했고, 또 다른 일부는 권력과 협력해 동료 지식인들을 공격하는 대가로 그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상태가 됐죠. 사회에서 견제하는 목소리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겁니다. 그러니 당이 그릇된 길을 가더라도 그것을 바로 잡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겁니다. 피드백 시스템이 망가진 거죠.

식당발언 문제로 돌아가 보죠. 사실 정세균 대표는 사건 후 비교적 적절히 처신했습니다. 해명하고 사과했죠. 문제는 민주당 논평이에요. 그런 논평은 팬덤은 만족시킬지 모르나, 그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뜨악한' 느낌을 줍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이 간극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자기들이 프로그래밍한 세계에 자기들이 갇혀서, 완전히 현실감을 잃어버린 거죠. 선동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이렇게 자기들에게 선동 당한 그 사람들과 똑같은 의식상태에 빠져버리는 겁니다.

팬덤이 그들에게는 저주가 될 겁니다. 신문칼럼 고발도 그렇고, 식당발언 논평도 그렇고, 이 뜨악한 사태는 민주당 지도부의 의식이 이 팬덤 문화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죠.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그 팬덤 때문에 오류가 수정이 안 됩니다. 사태는 수습이 안 되고, 외려 확산됩니다. 팬덤은 자기가 좋아하는 당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결과 빨리 털고 넘어가는 게 유리한 사안임에도 정서적으로 납득을 못해 사안에 집착함으로써 사태를 외려 악화시키게 되죠.

앞으로도 계속 그 극성스러운 지지자들이 당을 망칠 겁니다. 정봉주가 금태섭을 "제거"하겠다고 한 거, 기억하시죠? 국회의원은 원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인데, 이 팬덤정치에 민주당 130명 의원들이 개성을 잃고 거수기로 전락했잖아요. 그나마 남은 한 사람마저 "내부 총질러"라 부르며 "제거"하겠다고 달려들죠? 친문실세들의 그 팬덤정치 때문에 리버럴 정당이 졸지에 전체주의 정당 비슷해진 거죠. 이는 저주의 끝이 아닙니다. 저주는 막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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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의 위선

얼마 전에 제가 이렇게 썼죠?

“문빠들이 임미리 교수 신상 털고 민주당 대신에 자기들이 고발하는 운동을 벌이는 모양입니다. 민주당에선 손 씻는 척 하는 사이에 밑의 애들에게 지저분한 일의 처리를 맡긴 격인데 저들은 이제까지 이런 수법으로 사람들의 입을 막아왔죠."

아니나 다를까. 지금 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쏟아지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 일에서 손을 떼는 척합니다. 민주당 선거운동을 지휘하는 이낙연씨, 보세요. 아주 우아하게 손을 씻으시죠?

"오늘을 힘겨워하고 내일을 걱정하는 국민이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한 국민들의 고통과 염려에 대해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공감하고 응답해야 하는 것이 저희의 기본적인 자세다. 사람들이 일하다 보면 긴장이 느슨해지거나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은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손 씻고 예수는 대제사장들의 손에 넘겨준 본디오 빌라도랄까? 결국 임미리 교수를 처리하는 일은 조국 백서에 참여했다는 인물이 넘겨 받았습니다. 임미리 교수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아무 차이가 없게 된 거죠. 위축효과는 남고, 민주당의 책임은 사라지고.

그 동안 민주당에서는 자기들이 처리하기에 남세스러운 일은 이렇게 아웃소싱 해 왔습니다. 오랜 세뇌의 후유증으로, 굳이 시키지 않아도 맘에 안 드는 사람 야산에 대신 묻어 줄 사람들은 차고 넘치거든요. 그들의 모토, 들어 보셨을 겁니다.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몇 주 전에 그냥 넘어갔던 칼럼인데, 민주당에서 좌표를 찍어준 셈이죠. 민주당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임미리 교수가 고발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 자민당과 야쿠자의 관계랄까? 일본의 우익들도 이런 방식으로 일본 특유의 우아한 공포정치를 해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아무 관계 없지만, 실제로는 보스와 행동대원의 관계를 맺는. 리버럴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일본 자민당을 따라가려는 모양입니다. 토착왜군가?

이낙연 후보의 발언, 다시 읽어 보세요. 민주당이 잘못 했다는 말, 안 들어 있습니다. 임미리 교수에게 사과한다는 말도 안 들어 있습니다. 그냥 상황을 우아하게 모면하기 위한 텅빈 수사만 있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위선적이라고 봅니다. 아무 내용도 없는 저 빈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일단 민주당에서 임미리 교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즉 (1) 그를 고발한 것과 (2) 그를 안철수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매도한 것에 대해서 깨끗이 사죄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지지자들에게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게 민주당이 표방하는 가치이며, 임미리 교수를 고발한 문빠들의 행위는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위협하는 행위니,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천명해야 합니다. 이런 구체적 행동과 함께 발화되지 않는 한, 이낙연 후보의 저 발언은 역겨운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낙연 후보가 지지자들의 임미리 교수 고발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 보죠.

하여튼, 이 분이 이런 점잖은 표현법에 워낙 능숙합니다. 국회 대정부질의 때 보셨을 겁니다. 멍청한 자한당 의원들 말로 다 바보 만들었죠. 그런데 이번엔 상대가 자한당 의원들이 아니라 국민입니다. 그리고 수사학은 오직 진실을 바탕으로 할 때만 아름다운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일을 보니, 왠지 앞으로 남은 2년 반 동안 계속 이 분의 능란한 수사학과 싸워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뭔 얘긴지 아실 겁니다. 수사학보다 강한 것이 있죠. 바로 정직과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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