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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가'를 통해 본 비운의 양귀비 (4):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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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가'를 통해 본 비운의 양귀비 (4)

현종, 양귀비를 들인 후 정치에 대한 흥미를 잃다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4/05/13 [10:22]

'장한가'를 통해 본 비운의 양귀비 (4)

현종, 양귀비를 들인 후 정치에 대한 흥미를 잃다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4/05/13 [10:22]
▲ 흰색 양귀비

딴사람처럼 변한 황제

옥환이 태진궁에 들어온 후부터 황제는 정치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마치 딴 사람처럼 바뀌었다. 옥환은 황제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현종은 양귀비와 노니느라 밤낮이 바뀌는 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 다음은 ‘장한가’의 한 대목,

春宵苦短日高起  從此君王不早朝
(춘소고단일고기) (종차군왕부조조)
承歡侍宴無閒暇  春從春遊夜專夜
(승환시연무한가) (춘종춘유야전야)

봄밤은 고단해라 황제께서는 해가 높이 뜬 뒤에야 일어나셨으니
그때부터 황제께선 아침 정사(政事)를 못 보셨네
황제의 총애입고 연회 참석 한가할 틈 없고
봄 따라 봄에 놀고 밤마다 밤마다로다

현종, 양귀비 일족에 특별한 배려

현종은 양귀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양씨 일족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였다. 6촌 오빠인 양쇠(楊釗)는 현종의 신임을 받아 국충(國忠)이란 이름을 받았을 뿐 아니라 승승장구하여 후세에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는 꿀 배에는 검’ 즉 입으로는 꿀같은 말을 하고 속으로는 칼을 품은 자라는 뜻)의 간신으로 일컬어지는 재상 이임보(李林甫, ?~752)가 죽은 후에는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녀의 양아버지 양현염의 아들 양섬도 출세가도를 달렸고, 세딸도 양귀비의 언니라는 행운을 만나 모두 여자로서 최고의 영예 위계인 국(國)부인(한국부인, 귁국부인, 진국부인)이라는 높은 칭호를 받아 궁중을 무시로 드나들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기록에 의하면 양귀비는 질투심이 원인이 되어 현종으로부터 두차례나 오빠 양섬의 집으로 폐출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다시 현종의 부름을 받았다. 나중에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어 현종이 양귀비의 비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현종은 양귀비가 좋아하는 모양이 딸기 비슷한 열대과일인 ‘여지’를 산지인 광동(양귀비의 고향인 사천산이라고도 함)으로부터 공급하기 위해 50리 간격으로 감시 초소를 두고 1백리 간격으로 숙소를 두어 7일낮 7일밤 말을 달려 싱싱한 여지를 공급토록 했다고 한다.
또한 현종이 양귀비에게 선물한 보물 가운데는 백제로부터 약탈해간 홍속옥(紅粟玉)이 있었다. 이 홍속옥은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 연합군에게 백제가 멸망할 때 의자왕을 측천무후가 있던 낙양으로 끌고 가면서 약탈해 간 백제의 보물이었다. 보물은 측천무후에게 바쳐진 후 예종에서 현종으로 대물림 되었다가 현종으로부터 양귀비에게로 갔다. 양귀비는 이를 나중에 자신과 가까웠던 무희(舞姬)에게 주었으며 이 무희가 양귀비가 죽은 후 이 홍속옥을 현종에게 다시 바쳐 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고사도 전해진다.

▲ 양귀비 꽃밭

안록산의 난

안록산은 현종이 무척 신임한 변방의 장수였다. 그는 호인(胡人) 즉 오랑캐출신이다. 홍모벽안(紅毛碧眼, 붉은 머리 푸른눈)의 터키족 출신이었다고 한다. 당나라는 그 땅이 넓었으므로 이민족을 회유하기 위하여 오랑캐들도 무관으로 썼다. 그의 첫 이름은 아뢰산 또는 알뢰산이었다고 하며 알렉산더라는 주장도 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안연언(安延偃)이란 사람에게 재가한 후 의부의 성인 안가로 행세했다. 그는 머리가 좋았다. 여섯나라 말에 능했다는 기록도 있다.
재능이 윗사람들의 눈에 띄어 평로절도사(平虜節度使)가 되었다가 현종을 알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현종은 인재라고 생각하여 그를 아꼈다. 자주 무공을 세워 현종의 신임을 더했으며 후에는 양귀비의 환심까지 사서 세지방의 절도사가 되는 등 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체중이 약 200킬로 정도 되는 거구로서 그의 뚱뚱한 배는 무릎을 덮을 정도였다고 한다. 말을 타면 출렁이는 큰 배를 받치는 별도의 안장이 더 필요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현종은 안록산이 장안에 들어올 때면 연일 큰 연회를 베풀어 주었다.
또한 돌아갈 때는 선물을 가득 실어 주었다.
안록산은 언변이 좋았고, 임기응변에 능했다.
어느날 현종이 안록산의 배를 가리키면서,
“그 뱃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안록산은,
“오직 폐하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가득할 뿐입니다”라고 재치있게 대답했다.
그가 하는 말과 하는 짓을 현종과 양귀비는 늘 좋게 보아주었다.
어느날 안록산은 양귀비에게 양아들을 삼아달라고 요청했고 양귀비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나이도 양귀비보다 10여세 위였으나 안록산은 태연히 양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이임보가 죽고 양귀비덕에 벼락출세를 한 양국충이 재상이 된 후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졌다. 양국충은 평소 품행과 인덕이 재상의 재목이 못되는 인물이었으나 양귀비의 후광에다 비교적 민첩한 행동으로 현종의 신임을 받아 일약 재상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다. 그는 재상이 된 후 자기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는 안록산을 괘씸하게 생각했다. 양국충은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여러 차례 상주했다. 두사람은 앙숙지간이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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