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는 길의 끝이 아니라 길의 시작이다˝
[오롯이 걷는 제주 기독교 순례길 2편]
# 순례, 길에서 던진 질문
그들은 왜 산티아고까지 걸을까? 수많은 대답들을 아우르는 한 문장은 이것이다.
길에서 묻고자 떠난다.
그러므로 순례는 길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 <더 웨이(The Way)>는 명문 대학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어느 날 학업을 포기하고 순례자가 되어 떠난 뒤 폭풍을 만나 순례 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펼쳐진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화장한 뒤 아들의 유골을 담은 함을 들고, 아들이 남긴 순례길 배낭을 멘 채 아들이 걸은 산티아고 길로 떠난다.
아버지의 질문은 간단하다.
왜 떠났을까?
아들은 왜 이 길로 떠나야 했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를 통해 비로소 그 대답에 이른다. 사람들은 그렇게 수많은 질문을 가진 채 그곳으로 모여든다. 질문이란 그곳으로 오기까지 그들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의 결과이다. 그들이 태어나 겪었을 파란만장한 일들, 그렇게 살아온 그들의 시간, 그것이 곧 순례길을 찾아온 이들의 질문이다.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오는 깨달음이란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진리이다. 그들은 비로소 인생의 여정에서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온 사실을 깨닫는다.
순례길에서는 무엇보다 그 짐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음이란 곧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염려로부터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더욱 신비한 것은 그렇게 내려놓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일에 주목하게 된다.
‘톤즈의 꽃’ 이태석 신부는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적을 약속해 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천국을 위해 일할 때 먹고 입는 것을 책임져주신다는 것이다. 토리노에서 돈 보스코 신부가 수천 명의 아이들을 볼보고 있을 때였다. 돈 보스코는 빵 값을 갚지 못하여 여러 차례 외상값이 밀렸다. 빵집 주인은 화가 나서 더 이상 빵을 공급해줄 수 없다고 압박했다. 아이들은 이제 굶주릴 처지였는데, 바로 그날 어떤 사람이 돈 보스코에게 기도를 청하며 돈이 든 봉투를 건넸는데 그 돈의 액수가 꼭 밀린 빵값과 같았다고 한다. 돈 보스코가 그렇게 손님과 만날 때 아이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하는데 이런 기적은 우리에게 일상이 될 것이라는 게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순례자는 먹고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다.
내려놓음이 주는 자유로움은 순례자가 누려야 할 처음의 마음가짐이고 특권이다. 새가 창공을 날고 들의 꽃이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된 까닭을 발견하는 일이다.
꽃처럼 짧은 잠깐의 시간을 살아가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가.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고 새보다 귀하다 하신 주님의 마음에 다가설 수 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제일 처음 배운 건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죽음을 적이 아닌 친구로 대하는 법을 배웠다. 나의 죽음도 바로 옆에 있었는데 금발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키스하겠다고 한다. 그럼 나는 오늘은 됐으니 기다리라 한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항상 의식하고 산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파울로 코엘료는 죽음에 대해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다. 죽음은 오히려 우리가 오늘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 순례자의 길에서 누리는 선물은 이처럼 우리 신앙의 깊은 데를 터치함으로써 가던 길을 멈추고 질문하게 만든다. 죽음을 생각할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은 삶에 대한 갈망이다. 질문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질문은 결론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질문은 삶을 더 치열하게 살아가기 위해, 더 사랑하고 진심으로 열정을 바치기 위해 추구하는 과정이다. 치열한 삶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삶이다.
순례는 그런 의미에서 길의 끝이 아니라 길의 시작이다. 산티아고를 걸은 사람은 인생의 산티아고에서 다시 순례의 삶을 시작한다. 그것은 그저 물리적인 길이 아니다. 순례자들은 순례의 길에서 결국 자기 자신과 싸우고, 그 싸움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기쁨에 이른다. 순례는 안식으로 나아가는 투쟁의 길인 셈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