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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꿈> (1):세종경제신문

황진이의 <꿈> (1)

2015-10-07     이정식 / 언론인
▲ 개성의 박연폭포

중국의 설도, 한국의 황진이

널리 사랑받고 있는 우리 가곡 <동심초>의 원작자인 중국 당나라 때의 여류 시인 설도(薛濤, 768?~832)에 관해서는 이미 본 란에서 설명한 바 있거니와 설도에 비견할 만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여성이 있다면 단연 황진이(黃眞伊, 1500년대 초반, 생몰년 미상)가 아닐까 한다.

그 이유는 약 7백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시(詩)적 재능이 뛰어난 기녀였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고 황진이 역시 아름다운 우리 가곡 <꿈>의 원작자라는 점에서도 설도와 견주어 이야기 할 만 하다.

가곡 <꿈> 역시 한시를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로 만든 것인데, 가사의 애절함이나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동심초>에 못지않다. 번역자와 작곡자가 같아서일까?

두 시 모두 일제 때 김억(1896~1950?) 시인이 번역하여 발표하면서 일반에 알려졌으며, 두 곡 모두 김성태(1910~2012) 작곡가에 의해 노래가 되었다.

 

님 만날 길은 꿈길 뿐

김억은 김소월의 스승으로서 수많은 시와 번역시를 남긴 초기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으며 김성태 역시 당대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꿈>은 <동심초>와 마찬가지로 김억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번역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김성태는 해방 다음해인 1946년 <동심초>를 작곡한데 이어 1950년 <꿈>에 곡을 붙였다..

 

 

황진이 원작, 김억 역시, 김성태 작곡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따라 그 임을 만나러 가니

길 떠났네 그 임은 나를 찾으려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양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이 시를 찬찬히 읽어보라. 또 눈을 감고 아름다운 선율의 이 노래를 들어보라.

 

그리운 님 만날 길은 꿈속 뿐인데, 행여 꿈속에서는 볼 수 있을 건가. (내가) 꿈길 따라 떠났을 때 님도 나를 찾아 나섰을텐데. 꿈속에서도 서로 어긋나니 만날 길이 없구나. 소원컨대 꿈속에서라도 같은 시(時)에 같은 길로 떠나 도중에 서로 마주쳤으면...(필자의 풀이)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속의 황진이와 역자 김억이 이 시간 당신과 교감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원시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번역시

 

김억이 이 시를 번역할 당시(1944년)에는 여기에 훗날 곡이 붙여져 널리 불려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억은 그의 여러 글에서 번역시와 관련해 “역시(譯詩)는 역자 그 사람의 창작품”이라며, ‘원시(原詩)의 뜻을 따다가 소위 김안서 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밝힌 바 있는데, <꿈>도 원시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번역시란 평을 받는다.

<꿈>은 1944년에 나온 그의 ‘한국여류한시번역시집’ <꽃다발>에 처음 등장한다. 첫 번역시의 내용은 이렇다. (원본 형식에 따름)

 

꿈길 밖에 길 없는 우리의 신세

님 찾으니 그님은 날 찾앗고야.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떠나 노중(路中)에서 만나를 지고.

 

相思相見只憑夢 (상사상견지빙몽)

儂訪歡時歡訪儂 (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 (원사요요타야몽)

一時同作路中逢 (일시동작로중봉)

黃眞伊(황진이)

 

님찾아 꿈길가니 그님은 나를 찾아

밤마다 오가는길 언제나 어긋나네

이后(후)란 같이떠나서 路中逢(노중봉)을 하과저.

<꽃다발> (1944년)

 

시집에는 황진이의 한시 원문을 가운데 두고 4행 번역시와 우리 시조형식의 번역시를 앞뒤로 붙여 놓았다. 여기에 <꿈>이라고 제목을 붙여 놓았으나 원시(原詩)엔 제목이 없다.

<꽃다발> 출간 5년 후인 1949년에 나온 김억의 번역시집 <옥잠화>에서는 원시 앞뒤의 번역이 이렇게 바뀐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님은 나를찾아 길떠나셨네.

이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떠나 노중(路中)에서 만나를지고.

 

이렇게 앞의 1, 2행이 다소 개작되었듯이 시조풍의 번역에도 조금 손질이 가해졌다.

 

꿈길로 님찾으니 그님은 날 찾았네

밤마다 오가는길 언제나 어긋날시

이후(后)란 같이떠나서 路中逢(노중봉)을 하과저.

<옥잠화> (1949년)

 

앞서 <꽃다발>에 실렸던 첫 번역은 기생이었던 황진이의 신분을 의식하였던 것 같다. ‘꿈 밖에 길 없는 우리의 신세’가 그렇다. 그러나 ‘신세’란 말이 처량했던지, <옥잠화>에서 김억은 이 대목을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로 바꾼다. 더불어 몇 군데를 더 다듬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