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도 최석의 머리 속은 온통 정임 생각뿐임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최석은 꿈 속에서 사슴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에 흰 옷을 입은 정임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것 같더니 그를 잠깐 보고는 미끄러지듯 그에게서 멀어져간다. 정임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녀는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최석은 미칠 듯이 정임을 찾고 부르다가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이렇게 창밖으로 본 바이칼 호수의 정경을 N에게 전한다.
꿈을 깨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얼음과 눈에 덮인 바이칼 호 위에는 새벽의 겨울 달이 비치어 있었소. 저 멀리 검푸르게 보이는 것이 채 얼어붙지 아니한 물이겠지요. 오늘밤에 바람이 없고 기온이 내리면 그것마저 얼어붙을는지 모르지요. 벌써 살얼음이 잡혔는지도 모르지요. 아아. 그 속은 얼마나 깊을까. 나는 바이칼의 물속이 관심이 되어서 못 견디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