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에서의 작별 편지

소설 <유정>의 무대 바이칼 (6)

2013-12-14     이정식 / 언론인

 꿈 이야기와 작별 인사

시베리아에서도 최석의 머리 속은 온통 정임 생각뿐임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최석은 꿈 속에서 사슴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에 흰 옷을 입은 정임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것 같더니 그를 잠깐 보고는 미끄러지듯 그에게서 멀어져간다. 정임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녀는 시베리아의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최석은 미칠 듯이 정임을 찾고 부르다가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이렇게 창밖으로 본 바이칼 호수의 정경을 N에게 전한다.

꿈을 깨어서 창밖을 바라보니 얼음과 눈에 덮인 바이칼 호 위에는 새벽의 겨울 달이 비치어 있었소. 저 멀리 검푸르게 보이는 것이 채 얼어붙지 아니한 물이겠지요. 오늘밤에 바람이 없고 기온이 내리면 그것마저 얼어붙을는지 모르지요. 벌써 살얼음이 잡혔는지도 모르지요.
아아. 그 속은 얼마나 깊을까. 나는 바이칼의 물속이 관심이 되어서 못 견디겠소.

▲ 알혼섬(바이칼 호수 안의 섬)에서 본 바이칼 호수그리고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하면서 편지를 마친다.인제 바이칼의 석양이 비치었소. 눈을 인 나지막한 산들이 지는 햇빛에 자줏빛을 발하고 있소. 극히 깨끗하고 싸늘한 광경이요. 아듀!이 편지를 우편에 부치고는 나는 최후의 방랑의 길을 떠나오. 찾을 수도 없고, 편지 받을 수도 없는 곳으로...부디 평안히 계시오. 일 많이 하시오. 부인께 문안 드리오.내 가족과 정임의 일을 맡기오, 아듀!이것으로 최석 군의 편지는 끝났다.나는 이 편지를 받고 울었다.한편, N에게 보내온 편지를 보고 진실을 알게 된 남정임과 최석의 딸 순임은 가족들과 N에게도 말하지 않고 최석을 찾아 시베리아로 떠난다. 한겨울이다. 열차가 흥안령을 지날 때 플랫폼의 온도계는 영하 23도를 가리키고 있다. 흥안령을 지나면서 순임은 N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오늘 새벽에 흥안령을 지났습니다. 플랫폼의 한란계는 영하 이십삼 도를 가리켰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솜털에 성에가 슬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얗게 분을 바른 것 같습니다. 유리에 비친 내 얼굴도 그와 같이 흰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숨을 들이쉴 때에는 코털이 얼어서 숨이 끊기고 바람결이 지나가면 눈물이 얼어서 눈썹이 마주 붙습니다. 사람들은 털과 가죽에 싸여서 곰같이 보입니다.……아라사 계집애들이 우유병들을 품에 품고 서서 손님이 사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도 두 병을 사서 정임이와 나누어 먹었습니다.우유는 따뜻합니다. 그것을 식히지 아니할 양으로 품에 품고 섰던 것입니다." (순임의 편지) (7편에 계속)▲ 시베리아 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