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 충격속의 크루즈(3) -3개월 만에 먹은 초콜렛에 감동하기도

– 퀸 엘리자베스호 한국인 여승무원의 기록

2020-09-01     임수민(영국 큐나드 선사 크루즈 ‘’퀸 엘리자베스‘호
퀸 엘리자베스호
퀸 엘리자베스호승무원 송환작업은 수시로 바뀌는 해당 국가의 국경 봉쇄 및 방역지침, 항공편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매일같이 진행됐다. 퀸 엘리자베스호는 마닐라만 정박 103일 만인 지난 6월 26일 드디어 이 배의 Home port(모항)인 영국 사우샘프턴으로 향할 수 있었다. 975명이었던 승무원은 당시 최소운영 인원만을 남긴 153명뿐이었다.사우샘프턴으로 향하던 중, 남중국해를 지나면서 거제 조선소에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제1호로 명명됐던 HMM(구 현대상선)의 알헤시라스호를 만나기도 했다. 싱가포르에 정박하여 물류 공급을 받았는데, 배에서 공급하는 식단 외에는 그 어떤 음식이나 군것질거리를 구경조차 할 수도 없었던 우리에게 초콜릿이 공급되었고, 3달여 만에 먹는 초콜릿 때문에 감동한 날도 있었다.HRA(High Risk Area, 해적위험지역)인 아라비아해의 아덴만을 지나는 것을 대비해 훈련을 받고, 무사히 해적위험지역을 빠져나와 모세의 기적을 상징하는 홍해를 지나기도 했다. 이후에는 1869년 완공되기까지 12만 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1956년 이집트가 국유화하기까지 소유권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해양사 뿐 아니고 인류의 역사에 큰 의미를 지닌 세계 최대의 운하인 수에즈 운하를 지나기도 했다. 이후 지중해를 지나 7월 24일, 퀸 엘리자베스호는 사우샘프턴에 도착했다. 132일의 해상 격리를 마치고, 7월 25일 나는 드디어 육지를 밟을 수 있었다.퀸 엘리자베스호에서 본 수에즈 운하

그런데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나의 귀국 항공편이 취소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하선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 후 귀국 항공평은 해결이 되었지만, 혹시라도 바이러스에 노출될까 얼굴 가리개와 마스크, 장갑을 낀 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기까지 약 18시간을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이후 격리시설로 지정된 호텔에서 14일 격리를 마친 후, 집 떠난 지 312일 만인 지난 8월 9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약 10개월의 이번 승선 기간 중 첫 5개월은 BC(Before Corona/Covid-19), 즉 코로나 전(前)의 크루즈였다. 승객에게는 바다 위를 떠다니는 리조트에서 최상의 서비스를 즐기며 전 세계의 기항지를 만끽하는 크루즈였다. 승무원에게는 끊임없는 단골 승객을 접객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며 짬짬이 기항지를 즐기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다문화 업무환경의 일터이자 제2의 집이었다.

BC 이후의 5개월은 DC(During Corona/Covid-19), 즉 코로나 중(中)의 크루즈였다. 대다수의 승객에게는 다시 탈 수 있는 날이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그리운 크루즈이지만, 소수의 승객에게는 타고 싶지 않은 위험천만한 세균배양판 같은 크루즈가 되어버렸다. 승무원에게는 생계 및 꿈을 빼앗긴 채 제2의 집에서 진짜 집에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만 했고, 그리웠던 진짜 집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하루하루 버티며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그날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