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두 번 죽다 (13), 눈 내리는 이르티시 강변에서
지금은 하나의 구경거리요 기념물로 남아있지만, 당시 죄수들 입장에서 보면 강변 위의 토볼스크 문이야말로 ‘지옥문’으로 보였을 것이다.
토볼스크 문을 지나 언덕 끝으로 가니 강변의 모래사장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었다. 눈은 더 거세졌다. 10월초여서 아직 땅이 얼지 않아서인지 모래위로 내리는 눈은 쌓이지 않고 녹아버렸고, 인근의 나지막한 풀밭에 떨어진 눈은 파란 풀잎 위에 하얀 꽃처럼 조금씩 쌓이고 있다.
강폭은 넓지 않았다. 강 저편에 배가 한척 지나가고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급의 선박이다. 강변에는 낚시대를 던지는 낚시꾼들도 있었고, 갈매기도 몇 마리씩 날아 다녔다.
토볼스크의 문이 왜 옴스크에 있나?
옴스크에 있는데 왜 토볼스크 문이라고 하는지 잠시 설명을 해야겠다. 러시아는 땅이 커서인지 우리가 이해 못하는 일들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에서 제일 큰 기차역은 서울역이다. 그런데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역이 없다. 역이 몇 군데 있는데 행선지별로 레닌그라드역, 벨로루시역, 야로슬라블역 등 도착지의 이름을 붙인다. 러시아 같이 영토가 큰 나라에서는 때로는 그것이 더 편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옴스크에 토볼스크의 문이 있는 것도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옴스크에 사는 사람은 토볼스크 문으로 가면 토볼스크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동 시베리아의 중심도시 이르쿠츠크에는 앙가라 강변에 모스크바 문이 우뚝 서있다. 이 역시 모스크바 쪽으로 가는 문이라는 의미다. 모스크바 쪽에서 오는 사람도 강을 건너와 이 문을 통해 이르쿠츠크로 들어왔다.
지금은 도로와 기차, 비행기가 발달하여 육지에서는 배를 이동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적지만, 과거 19세기 말까지는 육로보다는 뱃길이 더 빨랐다.
토볼스크의 문에서 수용소가 있는 요새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수용소를 어떤 책에서는 감방으로도 번역을 하고 있는데, 당시 시베리아 유형수들이 있던 곳은 감방이라고 하기 보다는 수용소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도스토옙스키의 기록이나 당시 사진 들을 보면 그곳은 방이 따로 있는 감방이 아니라 군대의 막사 같이 나무로 만든 수용시설이기 때문이다. 밤이면 밖에서 문이 잠겨 아침이 될 때까지 악취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잠시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