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Undefined index: HTTP_ACCEPT_ENCODING in /home/inswave/ins_news-UTF8-PHP7/sub_read_amp.html on line 3 사형수가 된 소설가 - 도스토옙스키 ④ 그가 사형수가 된 이유:세종경제신문
사형수가 된 소설가 - 도스토옙스키 ④ 그가 사형수가 된 이유
2020-03-26 이정식 대기자
푸시킨(1799-1837)보다 10년 아래였던 고골은 한때 푸시킨과 자신이 러시아 문학을 이끌어간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다. 1837년 푸시킨이 권총 결투로 사망한 후에는 러시아 문단의 주역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런데 30대 후반부터 작품이 잘 풀리지 않았다. 건강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1847년 『친구들과의 서신교환 선(발췌문)』을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그의 정치적, 종교적 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전까지 그를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작가로 알았던 지식인들은 책으로 묶여 나온 그의 이 편지 모음집을 보고 충격과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당대 러시아의 커다란 문제로 생각했던 차르체제와 러시아 정교회, 그리고 농노제를 옹호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가령 군주체제와 관련해 고골은 당시 문단의 대선배인 주콥스키(시인, 1783-1852)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나라 시인들은 군주란 궁극적으로 그 전 존재가 하나의 ‘사랑’이 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기 때문에 민족 전체가 본능적으로 인정하듯 누구나 군주란 곧 하느님의 다른 모습임을 분명히 알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파함으로써 군주의 숭엄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친구와의 서신교환선』, 니콜라이 고골, 석영중 옮김, 나남, 2007)
‘군주란 곧 하느님의 다른 모습’이라고까지 아첨한 이 책이 발간되자 러시아의 문단과 독자들은 고골이 기대를 배신했다며 맹렬히 비난을 퍼부었다.
마침내 벨린스키는 고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공개서한인 <고골에게 쓴 편지>를 발표한다. 벨린스키는 고골의 그 책은 “진리와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라며 “(그의 책에서는) 진실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죽음과 악마와 지옥의 병적인 공포의 냄새가 난다.”고 비난했다. 벨린스키는 이 편지를 쓴 다음 해인 1848년 37세로 사망한다. 그리고 이듬해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이 발생했다.
고골의 책은 차르나 정교회, 귀족과 지주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문단에서 고골의 입지는 위축될 대로 위축되었다. 고골은 그 후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정신적으로도 이상 상태가 되어 1852년 단식으로 생을 마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