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돈을 다 잃고 도박장에서 돌아온 후 안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도 했지만 도박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나는 남편이 도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도박장이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안나는 도박장이 곁에 있는 바덴바덴을 하루 빨리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제네바로 거처를 옮겼지만 남편은 여전히 도박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안나, 남편에게 도박장에 가서 운을 시험해 보라고 권하기도
안나는 남편의 도박벽은 ‘일종의 병’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도박과 관련해서는 한번도 말다툼을 벌이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가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며 괴로워할 때면 오히려 그의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도박장에 가서 운을 시험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러시아로 돌아가기 석달 전인 1871년 4월 드레스덴에서 살 때의 일이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도스토옙스키)는 걸핏하면 자신의 재능이 ‘죽은’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면서, 점점 늘어나는 소중한 가족을 어떻게 부양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괴로워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이따금 절망에 빠지곤 했다. 그의 걱정스런 마음을 달래주고 그의 집필을 방해하는 암울한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나는 언제나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 시름을 잊게 하는 방법을 썼다. 룰렛 도박에 관한 말을 꺼낸 것이다. 마침 약간의 돈(300탈러 정도)이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운을 시험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냐, 돈을 딸 때도 되었다. 이번에는 성공하리라고 왜 기대하지 못하겠냐 등등의 말을 했다.
물론 나는 한 순간도 돈을 따는 것을 기대한 적은 없다. 희생해야만 할 100탈러가 너무 아까웠지만, 나는 이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새로이 격렬한 감정을 체험하고 도박과 모험을 향한 자기 마음을 충족시키고 나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안정된 마음으로 돌아올 것이고, 돈을 따겠다는 희망이 얼마나 공허한지 확신하면서 새로운 힘을 창작에 매진하고 2~3주 안에 잃은 돈을 모두 되찾을 것이라는 사실을.”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
도박장에서 마음이 풀릴만큼 도박을 하고 돌아와 2~3주 동안 다시 글을 쓰면 도박으로 잃은 만큼의 돈은 다시 벌어드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결혼 후 가정살림은 안나의 몫이었다. 자연히 경제권도 안나가 갖게 되었다. 과연 바가지 긁는 대신 돈을 주면서 ‘도박장에 가서 기분 좀 풀고 오라’고 한 안나의 작전(?)은 성공을 거둘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