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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세종경제신문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3.1 만세운동 100주년 기념, 유라시아 한민족 오토랠리 2019 동행기(2)

2019-10-18     박정곤 전 러시아 고리키문학대학 교수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묘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묘국경의 밤 국경의 밤에 정적이 흐른다. 줄지은 트레일러 차량과 흙먼지를 덮어쓴 채 보따리를 가득 멘 상인들, 구겨진 여권을 국경수비대 코끝에 들이밀고 실랑이를 벌이던 국적 불명의 촌로, 아이 손을 꼭 잡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던 카자흐 아낙의 모습, 그리고 기다림에 지친 군중의 아우성. 낮 동안 분주했던 국경의 광경은 해가 지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 속 풀벌레 소리만 철조망을 따라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든다. 자정에 가까웠을까,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총총일 뿐, 가로등 불빛마저 이제는 가마득하다. 굳게 닫힌 국경의 철문 탓에 오가는 이들이 없다 보니 국경 수비대도 초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얼굴을 감추어 버렸고, 국경의 밤엔 우리를 제외한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국경(國境).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말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위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을 사이로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보니 딱히 국경을 경험해보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그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일 것이다. 이런 저런 오지 연구 덕분에 필자는 국경을 넘는 경험을 과거 수차례 한적 있지만 그럼에도 육상으로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매번 쉽지가 않다. 서유럽처럼 경계가 모호하거나 굳이 경계를 따지지 않는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사이의 국경은 생각 이상으로 삼엄하다. 특히 옷가지와 비상식량 등 다양한 짐이 실린 일련의 랠리 차량들을 통과시켜야 하는 우리로서는 단 한 대에만 문제가 생겨도 그날 일정 전체를 접어야 하는 변수를 감내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원 모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차량 서류와 개인 서류, 또 반입물품들을 일일이 체크하고 또 확인해 본다.천을 파는 우즈베키스탄의 여인 멀고도 험한 길 무심하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에 국경에 도착해 순서를 기다렸던 우리는 정오가 되어서야 통과 심사를 받을 수 있었고 문이 닫히기 불과 몇 십분 전 마지막 차량이 통과하는 고된 과정을 경험해야만 했다. 여기에 그칠세라, 국경을 넘어서자마자 길은 180도 변했다. 러시아 쪽에서는 그나마 포장도로가 있어 속도를 어느 정도 낼 수 있었는데 카자흐스탄을 넘어서는 순간 길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아니, 차라리 길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나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국경에서 우리가 가야하는 아티라우(Atirau)까지는 300킬로미터가 조금 넘지만 국경 인근의 도로는 거의 5-10미터 간격으로 깊은 구덩이들이 패여 있어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결국 한 차량에 문제가 생겨 랠리단은 모두 시동을 끄고 고장 난 차가 수리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수리 시간이 점차 길어지자 누군가는 쌀쌀해진 날씨에 따뜻한 차를 끓여마셨고 다른 누군가는 과거 랠리에서의 경험들을 영웅담 삼아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겨우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차를 고친 후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 우리는 해가 뜨고 나서야 아트라우에 도착하였다. 밤새 우리를 기다렸던 현지 동포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만나자 마자 따뜻한 수프를 대접해 주었고, 다만 몇 시간이나마 몸을 뉘이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비록 오전 일정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단원들은 현지 동포들의 배려 덕에 꿀맛 같은 단잠을 청할 수 있었다.정오가 넘어서야 눈을 뜬 우리는 악몽 같던 어제의 기억을 뒤로하고 한낮의 카자흐스탄과 대면하였다. 이곳은 러시아의 지방 도시와 외견상 큰 차이가 없어보였지만 이제껏 봐오던 러시아 정교의 십자가 대신 곳곳에 자리한 모스크의 높은 석주와 둥근 지붕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국교가 이슬람인 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보다 27배나 큰 영토를 가진 영토 대국이다.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이기도 한 이곳은 그 크기에 비해 인구가 2천만 명도 되지 않을 만큼 적어 수도인 누르술탄이나 알마티와 같은 도시들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인적을 찾아보기가 드물다.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오토랠리 단원들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바쁜 마음으로 재정비를 마치고 랠리단은 서둘러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부하라(Bukhara)로 이동하였다. 부하라는 정확한 도시 기원이 언제부터였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학자들에 따라 기원 전 4세기부터 고대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다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며 5, 6세기에 들어와 돌궐제국이 세워지며 투르크인과 스키타이의 유목민인 소그드인이 들어와 살았다는 설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부하라라는 도시 명칭도 산스크리트어로는 부처의 도시, 또 소그드어로는 행복의 땅으로 번역되기에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 뜻이야 어떻든 당시 이곳은 유목민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자 무엇보다 물을 찾을 수 있는 오아시스였음이 분명하다.

13세기에 들어 몽골의 침략을 받게 된 이곳은 끝까지 항전하며 스스로를 수호하려 하였지만 결국 칭기즈칸의 무릎을 꿇게 되고 도시의 대부분은 파괴되고 만다. 14세기 티무르 제국이 자리하고 그때부터 다시 이슬람 문명이 꽃피우게 되는데, 오늘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유적지는 이때 당시부터 재건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된 부하라에는 3백여 채에 달하는 모스크와 100여 채의 이슬람 학교가 있다고 한다.

고도에서 잠시간의 여유를 가진 우리는 사마르칸트를 지나 수도 타슈켄트로 향하였다. 지나는 곳곳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명소들이 이어졌지만 랠리 본연의 뜻을 이어가야 하기에 깊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타슈켄트 입성을 서둘렀다. 그간의 여독으로 쌓인 피로와 더위에 지친 몸은 하루가 달리 무거워졌지만 마음씨 좋은 동포 주인장이 말아준 시원한 타슈켄트 국수 한 그릇에 힘을 내어 우리는 랠리를 이어갔다. 다시 카자흐스탄을 거쳐 모레면 알타이산맥과 대면한다는 생각에 설레는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