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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의식의 밭이 쓰라릴 때
송장길 / 수필가, 언론인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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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0  18: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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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속의 백로 2017.5. (이호 작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나는 나의 의식과 바로 만난다. 의식은 어디엔가에 머물다가 나의 기상에 맞춰 어김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소소하거나 가볍지만, 크거나 무거울 때도 많다. 처음에는 형체가 몽롱하다가도 차츰 맑아져 시골풍경처럼 청량하고, 낯설지 않아 편안하다. 사물에 섞이지도 않고, 오염되지도 않아서 순박하다. 기분이 내키면 잠시라도 자리에 누운 채 함께 교감하며 어울린다. 나만의 고유한 시간이다.

그러나 나와 내 의식의 달콤한 밀월은 내가 상대할 대상들과 만나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가족과 집기, 음식, 그리고 그밖에 많은 관계와 일, 물질들에 반응하는 화학작용은 무시로 내 의식을 벗어나서 산발적이다. 착한 방향도 있고, 고약한 쪽도 없지 않다. 집을 나서면 만나는 이웃들과 도심 속의 수백만 가지 사물, 뭇사람들이 발산하는 파장, 그리고 일터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일처리에 대응하는 생각들이 그렇다. 줏대의 사고(思考)체계를 빼고는 내 의식세계의 영역을 벗어나 기계적이거나 즉흥적으로 다른 대상들과 투합(投合)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내 의식의 밭은 뒤안으로 밀려 존재감이 희미하다.

그렇다고 무수한 생각과 그에 좌우되는 행위가 의식체계와 아주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생각들은 의식의 밭에 뿌리를 두고 파생하므로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는 없다. 끊임없는 교신을 통해 통제되고 되먹임된다. 항공모함과 항공기 간의 원리같다고 할까.

내 의식의 밭은 나의 오랜 사회화와 배움, 경험이 버무려져 형성된 내 문화의 총체이며, 내 정신세계의 원형질이다. 그런 내 의식의 밭은 자주 쓰리고 아프다. 밭에서 자란 의식의 가지들이 외부로 나가 벌이는 행태는 때때로 본거지의 성향과 달라져서 타협하거나 좌절되기 때문이다. 의식의 본질이 훼손되거나 변질되면 본부는 고통스럽고 상처를 입는다. 물론 사안이 중요하면 그만큼 정도가 깊기 마련이다.

***얼마 전 한 이웃이 별채를 요식업자에 세를 놓고 상업용 모터설비를 내 집 코앞 지붕 위에 설치해 놓았다. 소음이 심하고 미관도 꼴불견이었다. 당국에 신고하면 소음허용치가 넘고, 불법시공이므로 강제로 처리되겠지만, 이웃이라 배려한다고 스스로의 시정을 완곡하게 요청했다. 어이없게도 상대는 비용 등을 들어 반발하면서, 오히려 앞으로 내쪽의 문제는 없겠느냐고 협박하고 나섰다. 언쟁이 심하게 이어졌고, 가까스로 이전설치로 결론이 났지만, 나의 불편한 심기는 긴 그림자를 남겼다. 이웃의 무뢰에도 불구하고 더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나는 꽤 오래 씁쓸했다.

***지난 해까지 내가 주간을 맡았던 한 교양잡지의 출판과정에서는 더 황당했다. 어렵사리 중진정치인들과 유력한 필진들의 집필을 얻어서 충실한 내용으로 출판준비가 마무리됐는데, 경영주가 준비과정을 소상히 알면서도 뒤늦게 궤도에 오른 잡지의 성격을 재정립한다면서 좋은 원고들을 대량 제외시킬 것을 요구했다. 양서를 내놓겠다고 몰입한 편집권의 무시이자 침해였고, 회사는 물론, 업계에도 오점을 남기는 실족이었다. 필진에 대한 예의와 회사의 신용도 추락을 들어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 재정상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미디어의 특성과 제작을 몰이해한 무리였다. 사회에 적은 양식이라도 제공하자던 소박한 내 의식의 밭은 많이 괴로웠다.

직장의 일이 복잡하고 널리 퍼져있거나, 모임이 잦거나, 활동의 오지랖이 넓을수록 상대할 이질성과의 긴장이 잦을 것이다. 어떤 이는 부드러운 성격을 다져 충돌과 상처의 가능성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그의 내면에 반감이 전혀 없기야 하겠는가. 혹은 가까운 이들의 괴팍함 때문에, 혹은 조직 속 구성원의 튀는 행태 때문에, 혹은 거대한 조직체의 지향성이나 내부 성원 간의 이견 때문에, 혹은 정치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입장의 차이 때문에 정신적, 또는 물리적 갈등이 빚어지고, 번뇌한다. 갈등은 의식의 손상과 좌절을 낳고, 승패에 관계없이 서로에게 앙금을 남기며, 번뇌는 의식의 밭에 쓰라림을 준다.

갈등과 번뇌로 시달릴 때 의식은 길게 우리하고 부대낀다. 참을 수 없는 경우에 종종 폭발하기도 하지만, 자기 삶의 신조나 목표와의 마찰이므로 대개는 속앓이를 한다. 현대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집단을 이루면서, 그 집단논리에 기대거나 통제되는 만큼, 자기의사를 위주로 살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게 현실 아닌가. 그리하여 현대인들의 의식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누구나 아프다. 즐거움을 찾아 다니거나, 즐거움을 누리는 듯 싶은 경우에도 알거나 모르게 부분적으로는 부어있을 것이다. 현대의 한 귀퉁이를 살고 있는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며, 지금도 그런 통증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산 속이나 강변, 바닷가에 나서면 내 의식의 미양은 놀랍게 치유된다. 도시를 떠나 마을을 지나고 녹음이 우거진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나의 의식은 철 만난 듯 생기가 넘친다. 검붉은 번뇌는 말끔히 날아가고, 흑갈색 죽음의 빛깔도 멀어진다. 그럴 때 나와 나의 의식은 시리도록 맑은 건강소의 창공을 훨훨 나는 나비를 닮는다.

비탈진 땅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낙엽과 옹기종기 모여 다소곳한 잡초들, 짧달막하되 야무진 활엽수들, 그리고 쭉쭉 뻗어올라간 교목들은 그 생긴대로 꾸밈없이 우리를 맞는다. 이따끔 다람쥐와 새들도 부스럭거리고, 짹짹대며 낯선 길손이 그들의 세상에 들었음을 경계하면서도 놀리는 눈치다. 우리를 간섭하지 않는 대자연, 우리와 경쟁하지 않는 그 자연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자유의 품에서는 여유를 얻고, 여유는 사유를 부르며, 사유는 의식의 품격을 살찌우고 높여준다.

푸르던 산등성이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할 무렵 강변으로 내려오면 또다른 정취에 나의 의식은 여지없이 함몰된다. 강물에 청동오리떼 목놓아 울며 떠내려가고, 운 좋게는 큰 고니들이 순백의 빼어난 자태로 고혹적인 춤사위를 펼치면 나는 나의 의식을 껴안고 열락의 지경에 빠진다. 혼연일체가 되어 백조의 예술을 쫓는 것이다.

강이 흘러흘러 모이는 곳 바닷가에 나가 텅빈 모래밭을 홀로 거닐면 나의 의식은 넓은 세계를 품기 위해 움츠렸던 가슴을 연다. 찬란한 빛깔의 낙조가 하늘과 바다를 현란하게 물들일 때 파도결을 따라 켜켜이 이는 감흥으로 나는 내 의식을 감싸주었다. 의식이 바친 노고를 위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한다.

나는 내 의식에게 빚을 지고 산다. 의식의 아픔은 실상 내 불찰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도 의식에게 무거운 짐을 더 지울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더구나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교직돼 유기적으로 기능하는 뇌세포처럼 그리 얽히고설킨 현대사회를 헤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립이란 더욱 무서운 질병인 세상이어서다.

나의 가련한 의식이여, 의식의 밭이여! 삶이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외진 곳이 없구나. 이따끔 치유와 재충전한 뒤라도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엉킨 덤불을 헤쳐가며 삶의 지혜를 경작하는 일이 우리의 명운이거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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