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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칼럼] 지성이 풍미하는 시민사회로
송장길 / 언론인 , 수필가  |  webmaster@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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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8  22: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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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학식이나 신분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올바른 의식과 행위가 수반돼야 진정한 지성인이다. 지성이 중심을 잡는 사회는 건전하고, 지성인이 이끄는 나라는 평안하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위기를 맞은 사회일수록 지성의 역할이 절실하다.

한국의 지성은 세 가지 뿌리, 즉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규범과 서구의 가치체계, 그리고 오늘날 현실의 바른 인식과 판단에서 자라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지성은 도덕과 윤리, 공정성과 박애, 새 시대의 대응력을 두루 품고 있다.

지금 한국의 현실은 누란의 위기이다. 정부 거버넌스의 추락이자 정치의 혼돈이고, 시민사회의 요동이며, 경제와 민생의 곤경이다. 분노와 균열의 계절이고, 불안이 퍼져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광범하고 훈련된 정부와 여권의 공조직을 멀리하고 최순실 등 한심한 측근에 그 엄중한 국가경영을 의존했음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탄핵을 받을 정도인지는 헌재의 판단에 맡겨졌지만, 지도력의 상실과 지지세력의 위축은 물론, 국민의 실망과 관료사회의 허탈도 치유될 조짐이 없다.

난국을 바로잡고 새 길을 열어야 할 정치권은 덩달아 스스로 혼란에 휩싸였다. 여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홍과 분당으로 치달았고, 야권은 민심의 폭발인 시위를 올라타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에 열을 올렸다. 비판의 칼날만 휘둘러졌지, 어디에도 뛰어난 경세의 지도력이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 재목으로 기대되던 이들도 집권욕에만 눈이 먼 듯 경쟁적으로 계투(鷄鬪)만을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의 궐기는 초기에는 많은 공감을 자아냈고, 시위정치를 리드해서 온 사회에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탄핵정국을 주도했다. 그러나 일부 세력에 휘둘려 과격한 구호와 언어폭력을 쏟아내면서 탄핵소추 이후까지도 흥행성 시위를 그칠 줄 몰라 정치성을 의심받고 있다. 위법의 지탄은 대통령을 당장 끌어내리려는 또다른 초법(超法)을 외쳐대고, 은근히 시민혁명까지도 부추긴다. 분개한 보수의 집회도 자극해 이념대결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최순실 사태의 회오리에 접근해 실황을 세세하게 밝힌 언론도 사회감시자로서의 기능은 평가받았지만, 정제되지 않은 보도와 신중하지 않은 평론의 남발로 신뢰에 티를 안겼다. 경위야 어떻든 수사의 증거물과 증언에 언론이 휘말린 일도 언론 본연의 모습은 아니며, 확인되지 않은 풍설의 보도 등 언론매체가 지나치게 흥분한다는 소리가 들린다면 반성할 여지가 크다. 소소한 일을 전체로 매도한다든지, 편파보도로 매체의 성향을 들어냈다는 비판이 적지 않음은 객관성을 잃지 말아야 하는 언론의 기본에 상처가 될 것이다. 더 아쉬운 점은 위기의 사회를 전향적으로 이끌어갈 역할에 미진했다는 지적이다.

탄핵정국으로 10조원 이상의 사회적 손실이 이미 발생했다는 분석과, 내년에는 GDP가 2.8%의 성장률도 난망이라는 어두운 전망은 나라를 슬프게 한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 등 강성의 지도자들이 주변에 포진하는 국제환경은 으스스함마저 감돈다.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의 진로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의 지성은 전통사회의 인의예지(仁義禮智)는 물론, 서구문화의 합리성과 존중, 포용(tolerance), 그리고 시대를 호홉하는 민첩함을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정치는 비지성적이고 저급하며 함량미달이다. 상대를 폄하하고 끌어내리는 공격이 한국정치가 몰두한 정치행위의 주력이었으며, 가장 두드러진 이미지였다. 그런 도전적인 정치환경 속에서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방어에 급급하면서 야권과 반기를 드는 일부 여권의 공세를 극복하지도, 품지도 못하고 고립과 측근정치에 매달렸다. 최고지도자의 정치력 부족과 함께 지성이 결여된 정치환경을 아프게 반성하는 이유이다.

광장의 시위도 이제는 진로를 스스로의 지성에 물어야 한다. 위법과 비정상에 실망하고 분노해서 고발한 저항은 시민사회의 자연스런 의사표시였고, 성숙함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이 시위에 야합하고 집단이기주의에 찌든 불순한 요인들이 군중심리를 틈타 혼란을 부추기면 민의는 오염되고 부작용을 부른다. 대중 속에서도 건전한 지성의 의연한 발로가 절실한 것이다. 지성은 고고한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고, 계층을 불문하고 일반시민 각자의 마음속에서도 건재하면서 건전한 향기를 뿜을 수 있다.

경제적인 위기는 경제관료들에게만 맡겨둘 일이 아니다. 경제를 전공하는 학자들과 연구소, 업계가 모두 나서서 타개책을 활발히 토론하고, 발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언론 뿐 아니라 정당과 의회, 세미나 등의 각종 채널을 능동적으로 활용해서 의견을 개진하고 보고해서 정책에 반영되도록 갖은 방법을 찾으면 될 것이다. 이해타산을 접고 순수하게 벌이는 그런 활동이 살아있는 경제계의 지성이다.

나라가 전반적으로 위기라면 구성원 모두 지성의 내공을을 주저없이 발동해야 성숙한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다. 조직과 기관은 그들대로, 전문가들은 전문가대로, 일반시민들도 나름대로 스스로 지성을 일깨워 사회를 위해 할 일이 많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소리없는 요구이다. 온 시민의 지성이 함께 나라를 재건축하라는 것이다.

20세기 조선의 젊은 지성 이육사는 암담한 조국에 값진 희망을 심기 위해 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이렇게 읊고, 외쳤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말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나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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