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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미꾸라지' 김기춘이 쓴 책으로 김기춘을 고발한다"84년 김기춘 전 실장 박사학위 논문과 '형법개정시론'을 통해 본 그의 법에 대한 지론과 이중적 행태의 종말,"국가는 수단이지 목적일 수 없다던 주장은 정권과 통치자 보호자로 전락시켜'
민경중 대표기자(한국외대 초빙교수)  |  news@sejongeconom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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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26  08: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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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대통령으로부터 임기제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후 가진 경향신문 기자회견(1988.12월)

[세종경제신문=민경중대표기자(한국외대 초빙교수)]

“국가는 절대적 정의의 집행자라기보다는 국민적 행복의 옹호자이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호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이지 국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이론이 있을 수 없는 없는 명문(名文)입니다.

 국가가 정의라는 이름아래 절대적 권한만을 휘두른다면 국민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국가란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지 국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극히 당연한 말입니다. 절대왕정이나 1당 독재체제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논리죠.

 한 문장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기 위한 기초로서의 형법은 ‘형벌’이라는 이름의 강렬한 국가공권력의 행사로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약탈하는 제재수단을 동반하는 까닭에 그것은 인생의 공동생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의 범위 안에서 최소한의 사용으로 제한되어야 할 필요악 일뿐 결코 다다익선의 복지일 수가 없는 것이다.”

 국가적 형벌은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인권주의에 기반을 둔 대단한 주장입니다.

 ‘공권력’으로 무장한 국가가 ‘형법’이라는 강력한 수단으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제재하는 수단인 까닭에 법은 공동 질서를 유지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사용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기춘이 직접 기술한 책과 그의 다른 이중적 현실

 혹시 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엄청난(?) 주장들은 모두 국회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며 최순실 게이트에서 ‘법률미꾸라지’ 별명이 붙은 김기춘 청와대 전 비서실장이 직접 기록한 글들입니다.

   
1984년 김기춘씨가 박사학위논문을 보충펴낸책

 지난 1984년 자신의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형법개정에 관한 연구’를 가필, 보완하여 ‘형법개정시론’을 출판했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말입니다.

 중정파견검사 전력때문에 신군부의 보안사에 찍혀 80년대, 법무연수원 연구부장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나 시간이 많을 때 만들었던 논문과 책입니다.

 그가 쓴 ‘형법개정시론’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는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교본과 같은 책이었다고 합니다. 또 형법개정 때마다 기본서가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지 그는 언론인, 후배 법조인들을 만날 때면 자필서명을 적어 한 권씩 꼭 선물했다고 합니다.

 1960년 서울대 법대 3학년 재학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검사로 임관한 뒤, 1971년 법무부 검사로 헌법 초안 작성에 관여하며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역임한 그의 엘리트 코스 이력은 예비 법조인들의 성공롤 모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영구집권을 꿈꾸게 했던 ‘유신헌법’을 기초한 사실과 대공수사국장 시절 재일동포 유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무고한 청년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실은 최근에 와서야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들입니다.

도플갱어 김기춘, 우병우의 평행이론

 ‘불사조 기춘대군’ 김기춘을 ‘아직도 존경한다.’고 청문회에서 언급했던 ‘리틀 미꾸라지’ 우병우 전 민정수석, 이 두 사람의 인생은 ‘평행이론’처럼 삶 자체가 도플갱어입니다.

 서울법대 동문으로 재학시절 사법고시에 합격한 ‘소년급제’의 주인공들입니다. 검사시절 엘리트코스를 달리며 대형사건 수사 지휘를 했습니다. 또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것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김기춘·우병우는 지금 함께 김기춘이 박사학위 논문과 책에 기술했던 내용과는 정반대로 ‘국가를 사유화’하고 ‘권력을 남용’하며 ‘국민적 행복의 옹호자’가 아니라 ‘대통령의 옹호자’이자 ‘비선실세의 옹호자’ 중심인물로 특검수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제 상상으로는 우병우도 최소한 김기춘씨가 쓴 이 책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괴물’이 또 다른 ‘괴물’을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고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서 드러난 김기춘의 민낯

   
고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

 김기춘 전 실장의 전횡에 사실상 스트레스를 받아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폭음 때문에 올해 8월 급성간암으로 사망한 故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 일지에는 ‘김기춘이 국가, 정권의 개념을 얼마나 자신과 주군을 위해 왜곡했는지 사초수준으로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6.14(土)

長(*김기춘 비서실장지칭) *이념대결 속에서 生活(생활)-갈등 속에서 전사적 자세 지니도록

*회의 내용 발설, 누설치 않도록

헌법가치 수호, 선진국가 건설-진리, 양심. 분기 必要(필요)

가치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

시장 vs. 사회 (중략)-회색지대 無(무)

 7/4(금)

長 ·정권·대통령 도전, 두려움 갖도록 사정활동 강화, 소방청장 서명, 통제 시점 검토/악수거부 중앙 형1부 수사중. 공직자들은 위엄. 독버섯처럼 자란 (DJ, 노무현 정부) 人士(인사) 공직·민간·언론 불문.

KBS 이사 右派(우파) 이사-성향 확인 要(요)

중요 부처 실국장 동향 파악-충성심 확인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함께 걸어가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기춘이 젊은 시절 강조했던 ‘국가는 절대적 정의의 집행자라기보다는 국민적 행복의 옹호자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정권과 대통령의 보위를 위해 사라지고 국민은 통치의 대상으로 격하되어 있었습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그가 걸어온 길에서 세 번의 큰 위기 때마다 그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아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제는 ‘국정농단의 조력자’라는 혐의로 4번째 위기 앞에 섰습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특별검사팀이 김기춘 전 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는 뉴스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검찰도 하지 못했던 일을 국민의 이름으로 임명된 특별검사팀이 해내고 있습니다.

김기춘이 가장 존경했다는 법학계의 프로메테우스 폰 예링이 말한 '정의'

 과연 그가 이 위기를 또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만 그가 책의 맨 첫 장에 기록한 루돌프 폰 예링 (Rudolf von Jhering) 글을 대신 남기는 걸로 마칠까 합니다.

 '인류에게 법학의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는 칭호를 받은 루돌프 폰 예링(1818~1892)은 독일의 법학자로 《권리를 위한 투쟁》(독일어: Der Kampf ums Recht)의 저자로 알려져 있으며, 근대사회학적인 법학의 기초를 쌓은 역사학파의 학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예링은 생전에 ‘아무 노력 없이 획득한 법은 황새가 데려온 자식과 같다. 황새가 데려온 것은 여우나 또는 독수리가 다시 채어갈 수 도 있다. 그러나 자식을 낳은 어머니는 그 자식을 채어 가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 민족은 피나는 노력으로써 쟁취할 수 있었던 법이나 제도를 빼앗기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기춘 전 실장이 무슨 의도로 책 맨 앞에 이글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김기춘의 책으로 김기춘을 심판할 날이 올 줄을 짐작이나 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것에 이르는 수단은 투쟁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의 그 자신에 대한 의무이며 권리의 주장은 동시에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이다....권리는 결코 단순한 관념이 아니고 오히려 살아있는 힘이다. 따라서 정의란 한손으로는 저울을 들고 바른 것을 재며,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들고 바른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저울 없는 칼은 노골적인 폭력이요. 칼 없는 저울은 법의 무력함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관련되어 있으므로 완전한 법 상태는, 정의가 칼을 쓰는 힘과 저울을 다루는 기량이 균형을 이루는 경우에만 비로소 지배하는 것이다”.

-루돌프 폰 예링 (Rudolf von Jhering)

   
▲ 198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 날 부인 박화자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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