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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초원만 있다면 몽골인은 생존할 수 있다":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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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초원만 있다면 몽골인은 생존할 수 있다"

[세종경제신문 연재②]조창완편집장의 '칭기즈칸을 통해 읽는 노마디즘'

조창완 (차이나리뷰 편집장) | 기사입력 2016/12/22 [07:04]

“단지 초원만 있다면 몽골인은 생존할 수 있다"

[세종경제신문 연재②]조창완편집장의 '칭기즈칸을 통해 읽는 노마디즘'

조창완 (차이나리뷰 편집장) | 입력 : 2016/12/22 [07:04]
초원은 몽골인들에게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자 전쟁터였다. 눈덮인 초원을 달리는 몽골인들 사진=조창완제공

2. 칭기즈칸의 삶, 전반부

 “단지 초원만 있다면 몽골인은 생존할 수 있다(只要有草原在,蒙古人就能生存).”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일이었다.”

 많은 영웅이 그러하듯 어린 날의 칭기즈칸을 상징하는 말은 고난이다. ‘영원히 이글거리는 불꽃’이라는 불꽃이라는 뜻의 ‘몽올蒙兀’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몽골족에게도 신화가 있다. 몽골의 시조는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의 후손으로 태어난 도분 메르겐에서 시작된다. 도분 메르겐은 초원에서 만난 알랑고아와 혼인을 해 두 아들을 낳고 일찍 세상을 뜬다. 그런데 알랑고아는 이후에도 세 아들을 낳는다. 다른 남자와 자서 낳은 것이 아니라 영롱한 기운이 자신의 텐트에 들어와서 임신한 것임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중에 낳은 세 아들은 몽골의 왕이 될 수 있는 ‘황금부족’으로 불리게 된다.

칭기즈칸 역시 이 가운데 가장 총명했던 막내아들 보돈차르의 10대손이다. 알랑고아는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을 불러 5개의 화살을 준다. 힘으로 화살을 꺾어보라 하지만 아무도 꺾지 못한다. 그런데 한 사람에게 한 대의 화살을 주고 꺾으라 하자 자연스럽게 꺾는다. 이런 비유를 통해 형제간의 우애와 화합을 부탁하고 알랑고아는 죽는다. 이후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서 몽골족은 큰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타타르, 금나라 등 주변 민족의 대결 속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당시 몽골고원에선 몽골, 타타르, 메르키트, 옹고트, 케레이트, 나이만 등 여섯 집단의 세력이 컸다. 그중 몽골은 암바카이칸과 쿠툴라칸을 거치면서 힘을 길렀다. 쿠툴라칸은 아들 대신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예수게이에게 후계 자리를 물려줬다. 부족을 통해 이끌던 예수게이는 우연히 만난 메르키트 부락 결혼 행렬을 습격해 옹기라트 부락 출신의 미녀 후엘룬을 빼앗는다.

그 후엘룬이 1162년에 바로 테무진, 즉 후에 칭기즈칸을 낳는다. 테무진을 낳기 전 소치겔 사이에서 벡테르라는 이복형이 있었지만 부인의 성격상 테무진이 장자의 역할을 했다. 후엘룬에게는 테무진 외에도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등 아들과 딸 테무룬이 있었고, 소치겔에도 벨구테이라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칭기즈칸은 어릴 적에 체격이나 무예 등에서 발군의 실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개를 무서워하는 소심한 아이에 가까웠다. 예수게이는 테무진이 9살이 되자, 아이를 데리고, 며느릿감을 찾기 위해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옹기라트로 향한다. 다행히 데이세친을 만나 그의 딸 부르테를 며느리 삼기로 하고, 테무진을 그 집에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당시에 이런 혼사를 위한 길에선 한두 명의 시종만 데리고 다니는데, 예수게이는 돌아오는 길에 오랜 적대감을 가진 타타르 부족의 잔치를 만난다. 지나는 객을 대접하는 관습에 따라 타타르 부족이 건넨 마유주를 마시는데, 그 안에는 치명적인 독이 들어있었다.

부락으로 돌아온 예수게이는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하인 몽닉을 시켜서 테무진을 데려오게 한다. 예수게이는 안타깝게 숨을 거둔다. 예수게이의 죽음은 칭기즈칸의 보르지긴족과 타이치우드족의 분열을 곧바로 불러온다. 1년 후 있는 부족 제사에서 타리후타이가 이끄는 타이치우드족은 후엘룬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예수게이 가족을 배제한다. 이 갈등으로 씨족 연합은 무너지고, 테무진의 가족은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후엘룬은 현명했다.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들쥐인 타르박이나 물고기를 잡아먹으면서 가족을 이끈다. 그러던 중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이복형 벡테르를 테무진이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거친 초원에서 테무진 가족이 살아남자 일부 씨족민들은 다시 그들에게 돌아와 테무진 가족은 세력을 갖추어 간다. 그러자 성장하는 테무진에 위협을 느낀 타리후타이가 테무진 마을을 공격해 그를 포로로 끌고 간다. 처형에 직면했지만 그를 아끼는 소르칸 시라 집안의 도움으로 살아나 어머니가 숨어 지내는 곳으로 돌아온다.

테무진이 16살인 1178년에는 부르테를 데려와 정식으로 혼인도 하고 안정을 찾는다. 당시 몽골은 여섯 세력이 지배했다. 중앙에 보르지킨족과 타이치우드족이 속한 몽골 부족이 있었다. 몽골은 동쪽의 타타르, 북쪽의 메르키트, 남쪽의 옹고트, 서쪽의 케레이트와 나이만에 둘러싸인 상태였다.

이 가운데 테무진의 보르지킨족과 인연이 깊은 인물은 케레이트의 족장인 토릴칸(후에 옹칸)이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그를 구해 주고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은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엘룬은 그것을 기억하고, 아들 테무진에게 며느리가 가져온 귀한 흑표범 가죽옷을 주며 토릴칸과의 연합을 권했다.

테무진이 21살이던 1183년, 행복한 신혼 생활을 즐기던 테무진의 마을에 갑자기 메르키트족의 군대가 쳐들어와 부르테를 납치해간다. 예수게이가 후엘룬을 납치한 것을 그대로 되갚은 것이다. 단독으로 전쟁이 어려운 테무진은 안다(의형제)를 맺은 안다란 부락의 수장 자무카, 토릴칸과 연합해 메르키트를 공격해 부르테를 되찾고, 그의 인생 첫 승전을 맛본다. 그리고 의형제인 자무카 부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지낸다.

이 싸움에서 돌아온 부르테는 아이를 낳았다. 아들 주치가 테무진의 아들인지 혹은 납치한 부르테를 범한 칠게르의 아들인지 많은 논란이 있었다. 훗날 주치는 이 상황을 계기로 서방 정벌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채 그곳에 정착한다.

어릴 적 의형제를 맺었던 자무카는 초원을 대표하는 위대한 전사가 됐다. 상대적으로 테무진은 아직 세력이나 능력에서 자무카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테무진에게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다. 결국 참모들은 둘이 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각성시켜 결국 23살인 1185년에 둘은 갈라선다.

이후 둘은 몇 차례의 싸움을 벌인다. 처음에는 테무진이 패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테무진의 힘이 더 강해졌다. 한때 아저씨로 모셨던 토릴칸과도 사이가 나빠졌다. 토릴칸이 테무진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토릴칸은 오히려 자무카와 힘을 합쳐 테무진을 공격했다. 케레이트와 자무카의 연합군을 막기에 테무진의 힘은 너무 약했다. 테무진은 주일체데르와 쿠일다르를 소집해 막으려 했지만 전세는 패전 직전이었다. 그때 옹칸의 아들 셍굼의 볼에 화살이 날아와 맞았다. 옹칸은 일단 퇴각을 결정했다. 테무진도 처가와 같은 옹기라트에서 힘을 회복했다.

1196년에는 옹칸과 함께 타타르 원정에 나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을 통해 테무진은 금나라가 타타르, 케레이트, 몽골 등 여러 부족들을 서로 싸우게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1197년 테무진은 주르킨 부족을 공격해 무너뜨리고 케룰렌 강과 쳉게르 강이 만나는 곳 근처에 새로운 근거지를 만들었다.

1201년, 새롭게 떠오르는 테무진 세력에 반감을 지닌 씨족들이 자무카를 구르칸으로 추대해 옹칸과 테무진에 도전했다. 옹칸은 자무카와 맞서고 테무진은 타이치우드족과 맞서 승리했으나 자무카는 달아났다. 1202년, 옹칸은 메르키트를 공격하고 테무진은 타타르를 공격했다. 타타르를 정복한 테무진은 수레바퀴 비녀장보다 키가 큰 타타르 남성들은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자기 부족의 구성원으로 융합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몽골 군대와 부족을 아르반(10호), 자군(100호), 밍간(1000호), 투멘(10000 호) 체제로 재편했다.

 ★“찬란한 별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혼란이 존재해야 한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필자: 조창완

고려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미디어오늘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9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글, 방송, 저술 등으로 중국을 전했으며, 2004년에는 중국 전문 여행과 방송코디네이션회사인 알자여행(www.aljatour.com)을 창업, 운영하고 있다. 2008년 귀국 후 한신대 외래교수, 인민일보 특임기자 등으로 일하다가 2010년 중국 전문 공무원으로 채용되어 5년을 일했다. 현재는 알자여행 대표로 일하며, 중국 전문 잡지 ‘차이나리뷰’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그밖에도 중국 전문 컨설턴트로 중국 투자 유치, 관광객 유치, 방송 등 콘텐츠 교류를 하며 전문 강사 등으로 뛰고 있다.

 대표작: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 『중국도시기행』, 『차이나 소프트』, 『베이징을 알면 중국어가 보인다』, 『오감만족 상하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중국여행지 50』, 『달콤한 중국』 등 13권

페이스북: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changwa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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