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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겨울 여행 (2)
이호 기자  |  jsleek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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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0  21: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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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칼호 얼음위의 오찬

러일전쟁중에는 얼음위에 레일 깔아 운행하기도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연결된 것은 1898년. 다음해 1899년에는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호수 입구의 포트 바이칼 역까지 철도도 완공되었다. 이 때 당시로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쇄빙선 바이칼호가 호수로 들어왔다. 열차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열차페리로 쓰기 위해서였다.

호수 반대편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 철도가 탄호이까지 연결돼 있었다. 바이칼 호수는 동쪽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서쪽의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횡단철도의 중간 연결지점이다. 그런데 호수 서북쪽 포트 바이칼역에서 건너편 탄호이까지 호수 서쪽을 돌아 철로를 연결하는 공사가 험난한 지형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비용도 다른 노선에 비해 몇 배가 들어갔다.

가파른 경사면과 돌출된 절벽, 바위 무더기, 호수로 이어지는 수많은 골짜기 등으로 철로를 놓기에는 부적합했지만 러시아의 최고 전문가와 외국의 기술자(이탈리아, 알바니아, 그리스, 터키, 오스트리아, 일본, 중국 등)들을 불러들이고 공사에 시베리아 유형수들까지 동원하여 마침내 1905년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부분 260km를 완공했다.

완공전인 1900년부터 1905년까지는 바이칼역에서부터 호수 건너편에 있는 미소바야역까지 열차페리를 운행했다. 배에 레일을 깔아 열차를 싣고 호수를 건넜던 것이다. 쇄빙선이어서 얼음 두께 70cm까지도 깰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일 때는 운행하지 못했다.

그러던중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터졌다. 일본은 러시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완공하고 나면 전쟁에 이기기 어렵다고 보고 서둘러 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다급해진 러시아측은 1904년부터 약 한달간 포트 바이칼에서 건너편 최단거리에 있는 탄호이까지 40km의 바이칼호수의 얼음위에 레일을 깔고 열차를 운행한 일도 있었다. 얼음위 레일의 기관차와 객차, 화차는 각각 분리하여 말이 끌었다. 기관차는 무게 때문에 대차를 분리하여 이동시켰다. 그러나 무게 때문에 얼음 아래로 가라앉은 기관차도 있었으며 그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그전까지는 호수가 두껍게 얼어 열차페리를 운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객차의 승객과 짐을 눈썰매에 옮겨싣고 호수를 건너 다른 기차로 옮겨탔다. 결국 일본의 예측대로 전쟁은 시베리아 횡단열차 완공(1905년 10월)전에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은 러일전쟁기간중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울릉도, 독도 등에 망루를 세웠고, 이때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일본의 독도 침탈은 바로 러일전쟁을 치르기 위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당시 바이칼호에는 기차를 실어나를 수 있는 쇄빙선 바이칼호와 일반여객화물선 앙가라호 등 두 대의 대형 선박이 호수 양쪽을 오가며 운행됐는데, 바이칼호는 내전때인 1918년 백군에 가담했던 체코군이 쏜 포에 맞아 침몰됐고, 앙가라호는 화를 면해 현재 이르쿠츠크 인근 앙가라강변에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 얼음위에 깔린 레일위의 화차를 말이 끌고 있다.
   
▲ 바이칼호 얼음에 빠진 기관차

역사적 유적지가 된 관광열차 구간

환바이칼 관광열차 구간에는 39개의 터널(당초에는 40개)을 비롯해 교량 등 4백여개의 구조물이 있다. 모든 토목 구조물들은 석재와 금속으로 건설되었는데 터널공사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터널을 뚫고, 폭파하는 과정에서 중상자들과 사망자들도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 구간을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적 구조물들로 인해 역사적 건축학적 유적지라고도 불리우고 살아있는 철도박물관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철로를 따라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철도를 놓으면서 이 구간의 강어귀, 계곡, 호숫가 등에서 21개의 고고학적 현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 바이칼호 사자바위

알혼섬과 빙상투어

바이칼호의 26개 섬 중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인 알혼섬은 면적 730㎢로 크기가 제법 크다. 우리나라 울릉도(72㎢)의 10배, 제주도(1847㎢)의 40%의 크기다.

알혼섬에 도착한 다음날에는 4륜 구동차인 우아직을 타고 신령한 바위로 알려진 부르한바위를 거쳐 사자바위 등이 있는 알혼섬 서쪽의 얼어붙은 호수 위로 섬 북단 하보이 곶까지 둘러보는 빙상투어를 하게 된다.

같은 호수 위지만 얼음이 투명한 곳도 있고, 눈에 덮힌 곳도 있으며, 깨진 유리창 또는 상어 이빨같은 커다랗고 뾰족한 얼음 조각이 삐죽삐죽 길게 늘어선 곳도 있다.

깍아지른 절벽으로 되어있는 하보이곶 아래는 겨우내 쌓이면서 조금씩 녹은 눈이 군데 군데 커다란 고드름 동굴을 만들어 놓아 장관을 이룬다.

대개 이곳의 얼음위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이때 얼음위에 장작으로 작은 불을피우고 차를 끊이는데 그렇게 끓인 차맛 또한 일품이다.

광황한 바이칼 호수위의 빙상투어는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겨울 바이칼 투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 깨진 유리처럼 솟아 오른 얼음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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