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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궨당 문화속에서 핀 제주토착민들의 신앙의 꽃"[오롯이 걷는 제주 순례길 3편]
민경중 대표기자  |  nocut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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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22  16: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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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순례길안에 있는 순례자의 교회

# 제주 순례길이 열리다

 2010년 12월 CBS 제주본부장으로 발령을 받고 제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궨당문화의 위력과, 반대로 기독교의 존재감이 생각보다 미미하다는 사실이었다. 육지에서 본 제주도는 지극히 일부분일 뿐, 여러 가지 문화충격이 뒤따랐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자 나는 로드인터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직접 출연하였다. 제주에서 목회하는 분들과 자동차를 타고 제주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출연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때 수많은 목회자들과 만나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고, 비로소 제주도를 보는 눈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놀란 것은 제주도 출신 목회자들은 대부분 그들이 처음 복음을 받아들일 때 단지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친구와 부모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제주도에서 살면서 제사라는 공동체문화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제주도 토착민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채 5000명도 안 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희생이 전제된 일인 동시에 대부분 부모님으로부터 유산을 받을 수 없는 등 경제적인 단절로까지 이어진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목회자가 된 경우 이런 핍박이 뒤따랐던 것이다. 육지의 문화와 다른 제주도만의 특징이었다.

제주 기독교순례길을 만들게 된 계기도 이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향토사학자의 제안 때문이었다. 조수교회 김정기 목사는 나에게 제주도에 교회가 처음 생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김 목사를 통해 이도종 목사를 만났고, 조봉호 조사와 조남수 목사를 만났다. 그들은 100년 전 제주도에 첫 복음의 씨를 뿌린 제주도 출신의 개척자들이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데다 여러 방면으로 기득권이 보장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복음을 받으면서 그들은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신앙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을 밟으며 순례길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나는 여러 교회와 목회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순례길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1코스만이라도 긋고 나면 그 다음 코스는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1코스 출발지..애월읍 금성교회

1코스의 출발은 애월읍 금성리 금성교회로 잡았다. 제주에 선교사가 파송되기 전 이미 기도모임을 가진 교회였다. 금성리에서 귀덕리로 이어지는 길에 이도종 목사와 조봉호 조사의 생가가 있고, 처음 기도모임을 가진 장소도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며 우리는 독립운동을 하다 옥사한 애국지사 조봉호 선생의 신앙과 정신을 느낄 수 있고, 4‧3사건의 비극 속에서 순교한 이도종 목사를 만나는 감동에 빠져들 수 있다. 1코스는 한림해안길을 따라 걸어서 한림교회와 협재교회까지 이어진다. 전체 14.2킬로미터의 이 길을 ‘순종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2코스는 협재리에서 한경면 용수리와 조수리를 거쳐 이도종 목사의 순교 장소까지 이어지며, 이 길을 ‘순교의 길’로 불렀다.

3코스는 조수교회-용수저수지-순례자교회-용수교회-용수포구-당산봉-고산교회-노을해안도로-조남수목사 공덕비까지 21.4km를 걷게 된다. ‘사명의 길’이라 이름 붙인 이 길도 걷기에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용수저수지와 용수포구, 당산봉을 올라 석양과 함께 차귀도를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3코스에서 만나는 고산교회는 이도종 목사가 시무하면서 부흥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애월읍 금성리에 살고 있던 아버지를 편히 모시지 못해 괴로워하던 이 목사가 고산교회에 시무하면서 아버지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종착지점인 ‘조남수 목사 공덕비’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기독교 정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조남수 목사는 1948년 4.3사건으로 모슬포 지역 주민들이 산사람으로 몰리면서 어려움을 당하자 자수 권유 계몽활동을 펼쳐 3천명 이상의 지역 주민을 살린다. 모슬포 지역주민들은 조남수 목사의 이 같은 활동에 감사해 1996년 진개동산에 공덕비를 세웠다. 조 목사의 이 같은 활동은 가장 기독교적인 행동이며, 사랑의 실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한국전쟁 당시 세워진 강병대교회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한 농어촌교회의 눈물겨운 사연도 접할 수 있다.

4코스는 이도종 목사 순교터에서 대정교회-추사유배지입구-모슬봉-강병대교회-모슬포교회-조남수 목사 공덕비로 이어지는 약 11.3km 구간으로 ‘화해의 길’이라 이름을 붙였다. 강병대교회는 모슬포 지역 첫 유치원인 샛별유치원이 시작된 곳이고, 지역주민을 위해 야간중학교가 운영되기도 했다. 대정교회는 이도종 목사의 순교성지이다.

이 가운데 2, 3, 4코스는 모두 올레길을 통과하거나 올레길 일부와 겹친다. 나는 기독교순례길이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육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찾는 길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자면 제주도가 적극적으로 이 길을 만드는 데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자연환경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길은 영성을 담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습니다. 올레길이 아닌 순례길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도지사를 만나고 도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였다. 제주도 공무원들에게도 기독교순례길이 제주도를 알리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고 결과적으로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함께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보라색 물고기가 가르쳐주는 방향을 지시해주는데 처음에 이것을 설치할 때는 아무래도 성황당이나 마을 길목의 큰 나무 아래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다행스럽게 지금까지는 그런 분들이 없었다. 오히려 가게의 주인 할머니는 가게 옆에 세운 물고기 표지판을 잘 닦아주고 넘어지면 세워주기도 했다. 금성리 옛 금성교회당 앞에는 큰 공용주차장까지 생겼다. 조수교회 김정기 목사는 순례객들과 만나는 일이 새로운 일과가 되었다며 기뻐한다.

SCL이라는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를 경영하며 상록장학재단의 회장이기도 한 이상춘 집사는 순례길을 걸은 뒤 그 감동을 혼자 갖고 있기가 아쉽다면서 자신이 직접 비용을 들여 젊은이들 40명을 초청해 순례길을 걸었다. 그는 또 제주 교회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 건립의 꿈까지 꾸게 될 만큼 ‘제주앓이’를 하게 되었다.

기독교순례길이 생기자 천주교순례길과 불교순례길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면서 제주는 종교 순례길을 가진 섬이 되었다. 우리는 다종교 국가이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사례를 자랑하는 국가이다. 그 상징이 바로 제주도의 종교 순례길인 셈이다. 제주도는 이제 관광의 섬에서 힐링의 섬으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게 된 셈이다.

길은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공공의 영역이다. 한 사람이 가고, 다음 사람이 감으로써 길은 만들어진다. 그렇게 길을 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또 녹아 있다.

제주 순례길을 걸으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창조의 섭리를 묵상하고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도 있다.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동안 성장에만 급급했던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이 걸어 온 길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기를 기대한다. 이 길은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또 꾸준히 믿음의 씨앗을 뿌린 신앙의 선진들을 만나는 길이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의 포도가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뿌리가 땅속 깊이 스며서 포도의 맛을 더 깊게 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제주의 신앙도 그럴 것이다.

이제 떠나보자. 제주의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내 신앙의 첫 사랑을 되살려보자. 순례자의 노래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용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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