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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노래 / 내 맘의 강물 (1):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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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노래 / 내 맘의 강물 (1)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6/01/21 [10:17]

고향의 노래 / 내 맘의 강물 (1)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6/01/21 [10:17]
▲ 이수인 선생 반주로 <내 맘의 강물>을 부르는 소프라노 이미경.

성산동 살롱 음악회

 <고향의 노래>의 작곡가 이수인 선생의 성산동 집에 제자와 가곡애호가들이 가끔 모여 작은 음악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음악회 이름은 ‘성산동 살롱 음악회’다. 2016년 1월 8일 저녁 처음으로 그 모임에 참석했다. 사전에 부인 김복임 여사께 그날 방문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화로 드렸다.

이수인 선생 내외분은 이런 저런 음악행사 때 가끔 뵈었지만, 댁에는 처음 가는 것이었다. 집은 성산동의 조금 높은 곳에 있었다. 눈이 오면 차로 올라가기 애매할 것 같은 경사진 골목길을 잠시 올라가야했다. 옛날 스타일의 아담한 이층 양옥.

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여러분이 와 계셨다. 낯익은 분들이 많았다. 6시 조금 못되어 갔는데 안방과 마루에 밥상이 차려져있었다. 음식이 풍성했다. 반찬 하나 하나에 준비한 분의 정성이 느껴졌다. 사모님이 밤새 준비하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양념게장, 미역국, 남ㄹ, 장떡 이 네가지는 40년간 변함없이 유지해 온 고정메뉴라고 하였다. 2012년에 나온 이수인 선생의 음악인생을 기록한 책 <내맘의 강물> 속에서 사모님이 자랑한 유명한 “성산동 국수”는 이날 메뉴에 없었다.

나는 그날이 선생의 생신날인지 그곳에 가서야 알았다. 1939년 1월 8일생(음력으로는 1938년 11월 18일)이니 만 77세다.

누군가 “희수(喜壽) 아니시냐?”고 물었다. 선생은 “그렇습니까?”하고 오히려 반문했다. 우리 나이로는 2015년이 77세이니 1년 전이 희수였을 것이지만 선생은 그런데에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았다.

선생의 생신인 매년 1월 8일에는 이날처럼 선생의 제자와 음악인들이 찾아와 음식을 함께한 후 작은 음악회가 열리곤 한다. 그리고 이른바 “성산동 살롱 음악회”는 연중 다섯 번째 토요일이 있는 날 저녁에 열린다고 했다. 일년에 다섯 번째 토요일이 있는 날은 4~5회 정도다. 2016년엔 1월30일 4월30일 등 다섯번이다. 2015년은 4번이었다. 여기에 선생의 생신날 한 번 더 모이는 것이다.

이 댁에는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음악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이날도 음악회를 위해 모두 저녁을 부지런히 먹었다. 오신 분이 40명쯤 됐다. 식사를 먼저 마친 사람은 나중 온 이에게 자리를 양보하였다.

피아노는 거실 안쪽 벽에 있었는데, 거실에 다 앉지 못하니 안방 문쪽에도 앉고 이충으로 올라가는 계단, 부엌 입구에도 앉았다. 주로 선생이 작곡하신 노래를 자청 타청으로 부른다. 집안 식구들 앞에서 부르는 것처럼 아무나 나와서 피아노 반주로 자유롭게 부르는 것이다. 반주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교대로 쳤고, 나중에는 이수인 선생이 직접 하셨다.

이날 10여명이 노래를 했는데, 나는 <고향의 노래>를 불렀다. 소프라노 이미경과 테너 이재욱도 <내 맘의 강물> <바람아> 등을 열창했다.

이수인 선생 댁의 아담한 거실에서 열린 따뜻하고 정겨운 ‘성상동 살롱 음악회“는 <별>과 <고향의 노래>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이수인, 드디어 담배를 끊다

이날 식사중에 선생이 몇 달 전 담배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골초로 유명했던 이수인 선생이 담배를 끊다니 놀랄만한 일이었다. 부인이 담배 끊으라고 성화하실 분이 아니니 아마 자발적으로 끊으신 것 같다.

선생의 흡연에 관해서는 수필가인 부인 김복임 여사가 <내 맘의 강물>에 담배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해 놓은 것이 있다. 그 내용이, 집 안팎에서 구박 받는 흡연가들에게 용기를 주는, 자못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이어서 내가 가끔 담배 피는 분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담배를 끊으셨으니 그 이야기를 이제는 더 하기 어렵게 되었으나 궁금해 할 분들을 위하여 여기에 인용한다. 다음은 그 책 <내 맘의 강물>에 실려있는 김복임 여사의 글이다.

 처음 입고 나간 실크 블라우스에 튄 담배 불똥 

“백화점에 세일이라고 야단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구경을 한다는 핑계로 둘러보니 내게는 과분한 분수에 넘치는 실크 블라우스가 눈에 띕니다. 동행할 일, 음악회장에 가게 될 때 입으면 좋을 것 같아 망설이고 계산하다가 용감하게 샀습니다.

이튿날 입고 함께 나섰습니다. 지나가던 바람이 내게로 불더니 같이 걷던 불똥이 구멍을 냈습니다. 아까웠습니다. 구멍을 메워보려니 메운 구멍이 궁상스러워 남편의 체면을 깍을 것이 염려되어 포기했습니다. 일에 몰입이 되면 차려놓은 밥상도 재떨이가 됩니다. 이불, 베개, 입고 있는 셔츠는 물론 당신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을 전자레인지까지 담뱃불 딱지는 온 군데 예술입니다. 담뱃불의 위력은 무시 못합니다. 슬쩍 스쳤는데 살갗이 확실하게 익더라고요.

일본 강점기 대지진이 나서 화재가 났을때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이 불 질러 일어난 일이라고 누명 씌워 한국인들이 많이 희생됐다고 합니다. 한국사람 색출할 때 담뱃불로 찾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일본적인 한국 사람도 담뱃불을 살에 대면 “앗! 뜨거워”라는 한국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건강 때문에 “담배 끊으시오!”라고 못합니다. 피우고 싶은 담배 타의에 의해 못 피워 스트레스 받아 건강 해치면 그 또한 못할 일 아닐까 합니다.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숨통 막힐 것 같은 기분일 것 이라는 생각입니다.

담배 한 대가 순간의 막힘을 뚫는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바지 뒷주머니 속에 항상 준비된 오선지가 들어 있습니다. 오선지 꺼낼 틈 없이 번쩍 떠오르는 악상(차원 높은 표현하자면 영감아닐까요?) 놓치지 않으려고 담뱃갑에 그린 악보를 오선지에 정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담뱃갑 아니면 사라질 영감 아니겠습니까?

이 분은 담배 끊으면 안 돼요

어느 때 발가락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젊은 의사는 담배를 안 피우나 봅니다. 그러니 금방 담배 냄새를 알아차리고 “선생님, 담배 끊으십시오.”라고 합니다. 제가 얼른 대답했습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이 분은 담배 못 끊습니다. 담배 끊으면 안 돼요.” 의사 선생님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본인은 아무 말 없는데 마누라인 제가 맹렬히 외치니 말입니다.

의사 선생님 고개를 갸우뚱 하데요. 손발 들고 말려야 할 마누라가 적극적으로 안 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작곡하는 일이 쉬운 일입니까?

허공에 떠도는 영혼의 소리를 가슴에 담아 오선지에 옮기는 일, 아무나 할 수 없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닌···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하는일에서 유일하게 숨 고르는 역할을 하는 담배를 못 피우게 하면 작품을 못 쓸 것 같아 목숨 걸고 말리지 못합니다.

집안 온갖 물건이 한두 군데 담뱃불 자국이있습니다. 담뱃불 자국이 우리와 함께 살면서 내 남편이 함께 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라 그것들도 사랑합니다. 자려고 누워 있는 위로 담배 물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담배 불똥이 내 얼굴 위로 특히 눈에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아 얼른 안경을 썻습니다.

안경은 새로 사면 될 테니 말입니다. 담배 못 피우게 자극적인 말하는 분들 그 말 때문에 기분 나쁘고 상처받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한때 우리 집 거실 커튼에 불구멍 내기, 굴뚝에 연기 나듯 피워 대던 골초님들, 하나둘씩 담배 끊으니 벼슬이라도한 듯 아직도 담배 피우시냐고 의기양양입니다. 곳곳에 금연석도 모자라 도심 가운데 어느 곳에는 담배피우면 벌금이 과중하게 나온답니다.

원초적인 뜻은 알고 있으나 담배를 피워야하는 사람들, 불공평하게 죄인 취급이라도 하려는 듯합니다. 인권위가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 안 하나 봅니다. 담배 한 개비 주고 받으며 어색함을 달래고 사교를 하며 마음을 나누던 담배 연기 속 낭만은 어쩌시렵니까.

두 손가락에 끼워 피우는 담배연기는 한동안 허공에 머물다 사라집니다. 두 입술에 물려 삶과 죽음이 허무를 헤아리게 하고, 사랑과 미움의 갈등도 알게합니다.

 담배 피운다고 뒤떨어진 또는 의지가 부족한 따위의 생각은 안됩니다. 담배를 피워 안정을 얻고 아픈 상처를 위로받고 낭만을 느끼는 특별한 경우도 있으니 말입니다. 대중가요 가사 중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여” 이 대목은 언제나 나를 목메게 합니다.“ (<내 맘의 강물> 399쪽에서 401쪽)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선생의 음악은 담배 연기 속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담배를 끊으셔서 그런지 선생의 얼굴빛이 전보다 좋아보였다. (계속)

▲ 성산동 살롱 음악회. 이수인 선생의 반주로 <내 맘의 강물>을 부르는 소프라노 이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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