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은 오묘한 울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이 모여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리듬으로 크게 울려퍼지면 신비스런 음악이 되어 깊은 감흥을 안기게 마련이다. 음악팬들은 콘서트 홀에서, 기독교인들은 교회와 성당에서, 운동 애호가들은 운동장에서, 그리고 대중들은 열띤 행사장에서 장내를 메우는 합창과 함성에 감동하고 열광한다. 감동하고 열광한다는 것은 속 깊은 만족감이며, 강한 충동이다.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고, 하나로 뭉치게 한다. 당연히 집합 에너지의 분출로 나타난다. 베토벤의 ‘신의 영광’과 구노의 ‘병사의 합창’은 청소년기부터 얼마나 감성을 뒤흔드는 합창이었고, 월드 컵 축구 4강 신화의 응원은 어떻게 잊을 수 있는 함성인가. 3.1운동과 4.19혁명, 5.18운동의 함성은 민족이 함께 외친 값지고 소중한 악보없는 합창이었다. 산업의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땀흘리며 부른 근면가와 새마을 운동가도 역사에 기리 남을 음원이다. 그렇게 질곡과 폐허 속에서 국민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열창한 합창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불협화음도 있었고, 난조도 있었다. 해방 후의 혼란과 한국전쟁, 장기집권과 권위주의적인 통치 등은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그러나 그 신음소리까지도 버무려 부른 민족의 합창은 때로는 슬픈 곡조로, 때로는 힘찬 행진곡으로 강산을 울리며 국가를 전진케 한 것이다. 그런데 저문 2015년은 불행하게도 합창이 없었던 해였고, 합창이 절실한 해였다. 온 나라가 오열했던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에도 총체적인 개혁의 행진곡은 불려지지 않았고, 메르스의 악령이 덥쳐 온 사회가 꽁꽁 얼어버렸어도 아우성만 들렸지 근본적으로 탈바꿈하려는 힘찬 화음은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피하면서 자기 이익과 주장을 큰 소리로 외쳐댔지 공동이익과 사회를 위해 함께 걱정하면서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추격과 아베노믹스의 상승세, 미국의 금리인상 현실화가 위협해도 정치권은 서로 삿대질만 해댔다. 노령화와 저출산이 불어닥쳐 경제가 일본식 침체로 들어가도 여.야는 개혁과 대책의 당위성을 무시하고 싸움질만 일삼았다. 새해에는 경제의 성장률이 2.6%로 내려간다는 우울한 전망(KDI)이 나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야당은 분열을 계속했고, 여당은 세 싸움으로 박치기 중이다. 거리에서는 시시때때로 이익단체들의 확성기 소리로 귀가 따갑고, 국회는 여야 대치로 사상 최다의 법안을 파기시켜야 했다. 야권은 합법적으로 출범한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처음부터 사사건건 발목만 잡다가 국민의 외면을 당했고, 여권은 타협과 협상력의 부족으로 큰 정치를 보이지 못했다. 양쪽이 모두 교착된 상황을 돌파하는 정치력에 미진했던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과 국가를 위한 정치보다는 일종의 이익단체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자기들의 프레임 안에서 이해타산만을 따졌으며, 상대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헐뜯기만 했다. 그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91.3%(뉴스 웨이 조사)에 이를 지경이었다. 새해도 정치계절의 연속이다. 오는 4월 13일에 실시될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정계는 앞으로 더욱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국회의 기능은 분명히 소흘해질 것이고, 원의 구성 뒤에도 연말까지는 정계개편 등으로 극도로 어수선할 것이다. 현재의 야당에 대한 지지도와 분열로는 야권의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치지형의 지각변동도 예상된다. 정부의 추진력은 강화되겠지만 여.야가 머리를 맞대는 정책의 생산과 견제-균형의 기능은 약해질 것이다. 지역주의도 개선은 커녕 더욱 악화될 조짐이 보인다. 정치에 신뢰가 가지 않고, 대의정치가 제구실을 못할 때는 건전하고 상식적인 시민의식이 더욱 요구된다. 심판도 준엄하게 해야 하고, 나라의 살림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한다. 양식 있는 지성이 모두 나서서 사욕을 떨치고 순수하게 국가를 걱정하고, 목소리를 높일 때 역사가 응답할 것이다. 나라의 분열을 획책하는 세력에게는 철퇴를 내려야 하고, 융합의 기운에는 사기를 북돋아 주어야 사회가 제대로 서고, 성숙해진다. 국민들이 선택해야 할 기준은 분명하다. 정치인들의 구호에 쏠리지 말고, 냉철하게 나라의 안정과 성장, 그리고 복지가 균형있게 추진돼야 한다는 데에 관점을 두어야 한다. 무엇이 나라를 위해 옳은 길인가 만을 고심해야 하는 것이다. 새해 내내, 그리고 다음의 대선 때까지도 한국이 움켜잡고 고심해야 할 화두이고 오선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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