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 진 저늙은이 10월 2일은 국가가 정한 ‘노인의 날’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ˑˑˑ등등 이런 저런 날도 많은데다 노인 자신들도 그 존재여부를 잘 모르고 “아, 그런 날도 있었구나”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내에서 노인의 날을 처음 제정한 것은 1997년입니다. ‘경로효친사상을 앙양하고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 시켜 온 노인들의 지난 날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한지 올해로 열 아홉 번째 되는 날입니다. 유엔이 ‘노인의 날’을 정한 것이 1990년이고 일본이 1950년대 부터 ‘경로의 날’을 기념했던 것을 감안하면 소위 동방예의지국이라 자처해오는 나라치고는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노인이라함은 법적으로 만 65세 이상을 가리킵니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는 2014년 현재 654만명이라고 합니다. 총인구 5147만명의 12.7%입니다. 인구 100명 중 13명이 노인인 셈이니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유엔의 분류기준에 따르면 전체 인구중 65세이상 인구비율이 7%이상 14%미만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 14%이상 20% 미만을 ‘고령사회’, 20%이상인 사회를 ‘초 고령사회’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사회’를 지나 ‘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1930년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얼마였을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놀랍게도 당시 우리 국민들의 평균수명은 남자32, 여자35세로 평균33.5세였다고 합니다. 지난 해 평균수명이 여자 84세, 남자78세로 평균81세인 점을 감안하면 80여 년 만에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무려 47년이나 대폭 늘어났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발전입니다. 1300년전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사람이 칠십을 살기가 드믈다’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유명한 시구(詩句)를 남긴 것을 보면 오늘 우리 국민들의 장수(長壽)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따름입니다. 수명이 그처럼 크게 연장된 것은 경제발전에 따른 식생활과 주거환경개선, 의학의 발달에 따른 질병의 예방과 치료로 볼 수 있겠지만 80여년 사이에 수명이 두 배 나 넘게 연장 된 것은 아닌 게 아니라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2천여 년 전 진시황이 불로초(不老草)를 얻기 위해 5백 동자를 미지의 섬으로 보낸 것도, 어제오늘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는 것도 불로장수를 위한 인류공통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옛날 중국 고대의 ‘상서(尙書)’에 보면 사람이 누릴 수있는 오복(五福), 즉 수(壽・오래사는것), 부(富・부자되는것) 강녕(康寧・건강하게 사는것), 유호덕(攸好德・덕을 베푸는것), 고종명(考終命・편안히 죽는것)가운데 그 첫 번째가 ‘수’ 일 정도로 장수를 으뜸으로 꼽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국민들은 그토록 간절했던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실현했으니 아무리 기뻐한들 탓할 일은 아니겠습니다. 시쳇말로 경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노후(老後)의 삶이 질도 그 만큼 좋아 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젊은 날 피땀을 흘리며 일하던 현장을 떠나면 외곽으로 밀려 난 정신적 소외감에 맞닥뜨려야 하고 피할수 없는 노화현상과 질병이 뒤 따르기 마련일 뿐 아니라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적라라(赤裸裸)한 모습인 것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완벽하게 갖추어져있는 서구 선진국의 노인들은 국가의 보호속에 여생을 큰 불편 없이 편안하게 보내고 있지만 복지라는 말 자체가 부끄러운 우리 현실에서 오래 산다는 그것만으로 축복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야 그나마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경로효친의 유교사상이 존재했기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았지만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그것이 옛이야기가 된 지금, 노인들은 설 자리 조차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전국의 노인은 662만 명. 그 중 절반이 극빈층이요, 그 나마 137만 9천명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이라고 합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자화자찬하는 그 이면에는 덮어서 감출수도 없는 이런 딱한 모습이 바로 2015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허리 띠 졸라매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피땀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사회에 기여한 결과 몸은 늙고 병들어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자식들에게조차 짐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이니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시위를 하고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각종단체들도 집단으로 요구사항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힘없는 노인들은 소리 지를 힘도, 하소연 할 곳 조차도 없습니다. 일부 힘이 넘치는 노인들 가운데는 피켓을 들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이들도 있기는 합디다만. 공약을 믿고 기대를 걸고 표를 찍어 줬지만 선거가 끝나고 약속이 달라져도 “그런가보다” 속고 마는 게 대부분 이 땅의 힘없는 노인들입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이 겪는 고통을 잘 모릅니다, 나이가 들면 필시 건강에 이상이 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질병을 만납니다. 평균 10년을 병고(病苦)로 시달려야 한다는 게 통계입니다. 병원에 가 보면 노인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요양병원은 어디고 만실(滿室)이 되어 있습니다. “아흔 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앓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술좌석의 우스갯소리, ‘9988234’는 노인들이 얼마나 병고에 시달리며 겁을 먹는가를 보여주는 재치 있는 개그입니다. 우리에게는 지난 시절 부모가 늙으면 지게에 지고 산에 갔다 버린 고려장(高麗葬)이라는 비인도적이고 부끄러운 역사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 늙기도 설 워라 커늘 짐을 조차지실까’ 라는 정송강(鄭松江)의 시도 사실은 노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우회적으로 역설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 걸 보면 오늘 날 부모를 학대하는 절반이 친자식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늙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잘못도 아닙니다. 젊음이 무엇을 잘해서 받은 상(賞)이 아니듯이 늙음도 무엇을 잘못해서 받는 벌(罰)이 아닙니다. 어제의 젊은이가 오늘 늙은이가 되어있을 뿐입니다. 풍상(風霜)속에 연륜을 쌓은 늙음은 아름다움이지 혐오의 대상은 아닙니다. 채근담에는 노년을 황혼 빛으로, 귤 향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루해가 저물매 노을빛이 아름답고(日旣暮而猶烟霞絢爛), 한해가 저물려 함에 귤 향기가 더욱 그윽하다(歲將晩而更橙橘芳馨)’고요. ‘노인의 날’이랍시고 몇몇 사람 표창장이나 주고 양로원가서 사진이나 찍는 그 따위 쇼는 집어 치우세요. 노인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습니다. ㄱ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폐지 리어카를 끌고 힘겹게 뒷 골목을 헤매는 그런 모습이 사라 질 때 ‘대한민국’이고 ‘때~한민국’이고 외칠 자격이 있습니다. 노인,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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