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빛과 그림자 - 광복 70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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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빛과 그림자 - 광복 70주년을 맞아
  • 김영회 / 언론인
  • 승인 2015.08.11 1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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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분단 70년,
올해도 우리는 노래부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그러면 얼마나 더
이 노래를 불러야 할까”

올 2015년 광복절은 여느 해와 달리 더욱 뜻이 깊은 듯 합니다. 70주년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그렇고 광복의 뜻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해 정부가 하루를 임시공휴일로 정해 더위와 생활에 지친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해 주니 그 또한 그런 생각이 듭니다.

1945년 8월 15일, 그 날의 기쁨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모두 좋아서 펄쩍펄쩍 뛴 그야말로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천지개벽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을 식민지 노예로 전락한 망국(亡國)의 백성들이 남의 힘이긴 하지만 제 나라를 도로 찾았으니 그 감동은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로도 표현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광복절 노래의 첫 구절은 빼앗겼다 다시 찾은 내 나라, 내 땅의 소중함을 상징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런데 8월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빛과 그림자’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희비(喜悲)를 안겨주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2차대전 종전이 강대국들에 의한 승리이다 보니 미국과 소련에 의한 남북분할이라는 씻을 수 없는 비극을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민족에게 8월은 감동은 감동이었으되 온전한 감동일 수 없는 ‘반쪽 감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 생각 나는 것이 독일의 통일입니다. 독일이 동서로 분단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945년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1990년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동서독 국민들의 뜨거운 통일의지가 이루어 낸 결과였습니다.

독일이라고 통일이 쉬웠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빌리브란트라는 걸출한 인물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서베를린 시장을 거쳐 1969년 수상으로 취임한 브란트는 1970년 ‘동방정책’을 선언합니다. 동독은 적이 아니라 같은 민족, 통일의 동반자라는 게 바탕에 깔려 있는게 정책의 기조였습니다.

브란트는 먼저 분단으로 굳혀진 동서독 국민의 문화적 이질감 극복을 위해 동독의 TV를 전면개방합니다. 서독국민들이 안방에서 동독 방송을 그대로 시청할 수 있게 하였고 서독국민의 동독 방문 경비 지원, 동독 주민의 서독 방문에는 체재비를 부담해주었습니다. 서독의 건설공사를 동독 업자에게 맡겨 이익을 보게 했고 심지어 서독군인들의 군복까지 동독업자에게 맡겼습니다. 동독 속의 섬이나 다름 없는 서베를린까지의 수백 Km에 달하는 고속도로도 건설해 주었습니다.

서독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정책을 폈던 것입니다. 서독은 경제적으로 뒤쳐진 동독을 얕잡아 깔보고 무시한 게 아니라 동독의 국력을 발전시켜 동서독이 균형을 이루어야 통일이 된다고 믿고 동독 도와주기 정책으로 힘을 쏟았던 것입니다.

서독이 1951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에 도와 준 돈이 4천억 마르크, 우리 돈으로 약 300조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보수정권에서 진보정권으로, 진보정권에서 다시 보수정권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전 정권의 통일정책을 뒤집지 않고 그대로 계승하여 일관되게 통일을 향해 갔던 것입니다.

물론 통일에 소극적인 일부세력의 반발이 있었지만 민족통일이라는 대명제(大命題)로 철저히 밀고 나갔습니다. 그 결과 1989년 동서를 가로막은 브란덴 브르크 문 양쪽 장벽에는 시민들이 망치와 도끼를 들고 올라가 시멘트벽을 부수는 장면이 동서독은 물론 전 세계인들을 열광 시켰습니다. 독일인들은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세기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입니다.

인구 8천만, 오늘의 통일독일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대국이 되어 유럽연합 28개국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습니다.

'뷔어 진트 아인 폴크(Wir sind ein Volk).
“우리는 한 민족이다.” 이 끈끈한 한 구절이 분단독일을 통일시켰고 오늘의 독일을 있게 했습니다.

'광복 70년'은 뜻은 다르지만 '분단 70년'과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 모순된 역사적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676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1천 300년 동안 이어져 온 하나의 민족인데 어찌하여 분단이 되어 70년을 맞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올 광복절도 우리는 태극기를 흔들며 축제를 벌이지만 분단이라는 상처가 그림자가 되어 드리워져 있다면 그 광복은 반쪽짜리 ‘미완의 광복’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1989년 베를린 시민들이 장벽에 올라가 망치로 부순 시멘트 조각 한 덩이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분단국의 국민으로 어떤 물건보다 귀한 기념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통일은 언제 쯤 이루어 질 것인가. 아니, 통일이 되기는 되는 것일까. 독일의 통일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이라는 자부심이 밑바탕이 되었듯이 우리의 통일 또한 한민족의 우월성이라는 국민적 자각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언젠가 휴전선의 철조망이 걷히고 남북이 뻥 뚫려 통일이 된다면 그 녹슨 철조망 쇳조각을 잘라 갖고 싶습니다. 내 생전 그 꿈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도 독일처럼 하나로 통일이 되어 한반도 곳곳에서 남북이 함께 광복절을 노래한다면 그 감격은 70년 전 해방되던 날, 그날보다 몇 백배 더한 감동적인 진짜 광복절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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