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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하운드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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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하운드 유감(有感)
  • 송장길 / 수필가,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7.20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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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의 이동수단으로 전락한 미국의 그레이 하운드 버스 노선
▲ 그레이 하운드 버스

그레이 하운드 버스는 미국 장거리 여행의 상징이었다. 철도가 주로 방대한 대륙을 산업기지로 개척한 운수의 통로였다면 버스는 구석구석의 대중을 나른 혈관이었다. 럭키 산맥 기슭 선머슴을 태워다 일약 헐리욷 스타로 띄우거나 미시시피 강변의 가난한 흑인을 팝뮤직의 총아로  실어나르기도 했다. 1913년 미네소타에서 뻗기 시작한 그레이 하운드 버스 노선은 그 대표 주자로서 미국의 번영을 따라 무려 3,100개 노선에 2,400개 터미날을 갖추고 북미 대륙을 실로 실핏줄처럼 연결해 달려온 것이다.

그런데 장거리 버스 노선은 오는날 크게 번성한 항공과 승용차 산업의 그림자에 그늘지거나 외면당한 신세가 되었다. 속도에 뒤지고 편리함에 치여 인기도 떨어지고, 관심도 잃었다. 빈곤층의 피할 수 없는 한낱 이동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나는 지난 달 샌 프랜시스코 아들네에 두었던 SUV를 가져오려고 불편함과 안전을 걱정하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모처럼 그레이 하운드 버스의 낭만에 몸을 실었다. 좀 후지면 어떻고, 설마 범죄가 그리도 심할까라면서 오히려 여행의 설렘까지 돋우며 이른 아침 LA다운타운 전용 터미날을 찾았다. 어차피 타고난 서민이 아니었던가도 싶었다.

실망은 대기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질서감과 쾌적함은 바닥 수준이었다. 종업원들은 거친 언어로 승객들을 원칙없이 나누어 즉흥적으로 줄을 세웠고, 칙칙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직,간접으로 자주 부딪혔으며, 인간이 상품쯤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배낭차림의 단신 휴가 여행길의 한 한국인 30대 여성도 범죄가 노릴지 모를 무질서 속에서 엉성한 운영이 정해놓은 자리를 찾아내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고 다녔다.

버스 내부는 더욱 한심했다. 우중충한 차내부는 아주 낡아서 유서 깊은 굴지의 기업에 대한 기대를 구겨버렸고, 의자의 귀퉁이와 팔걸이는 여기저기 헤져 속이 들어나 있었다. 나와 한국 여성은 무슨 이유인지 마지막 줄로 승차해야 했고, 그나마 약삭빠르지 못해 차의 맨 후미에 자리를 잡고 실소를 나누었다. 문제는 그 후미에 화장실이 위치하고 있어 구식 변기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7시간 남짓한 여행 내내 참기 힘든 고통을 안기는 것이었다.

낡은 커튼 밖으로 5번 고속도로 주변의 광활한 사막과 과수원을 내다보는 표정들은 한결같이 수심에 차 있었다. 아마도 고달픈 삶에 대한 걱정이지 싶었다. 어린 자식들을 주렁주렁 동반한 라틴계 가족과 넘치는 짐보따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흑인 가족들은 남루한 옷차림새를 들썩이며 일거리를 찾아 이동하는 듯한 애처로운 대화를 간간히 주고 받았다. 값 싼 스넼을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들의 눈동자에 마주치자 나는 머리통을  둔기로 맞는 아픔을 느꼈다. 일등국가에서 저이들의 사회적인 대접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일어서였다. 저 아이들도 미래에는 항공편으로 고급 시설의 편리함 속에서 친절하고 정교한 서비스를 받게 될까하는 의문도 이어졌다. 1등석의 대우까지는 아니라도 세상의 변화에 낙오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종점에서 하차하자 한국 여성이 공손히 인사를 하고 인파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말하는 듯했다. “세계를 이끄는 미국의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송잘길 / 수필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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