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5-22 11:45 (수)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상태바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 김영회 언론인
  • 승인 2015.07.17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제의 동지가 배신자가 되어
내동댕이쳐지는 와우각상의
막장드라마를 보고있다.
2015년 대한민국" 

중국 당(唐)나라 태종 때 위징(魏徵ˑ580~643)이라는 명신(名臣)이 있었습니다. 그는 태종을 도와 당나라가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입니다.

위징은 애당초 태종 이세민(李世民ˑ599~649)이 즉위 하기 전 형인 태자 이건성에게 동생 이세민을 없애 버려야 왕위를 이어 받을 수 있다고 진언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동생인 세민이 형 건성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왕위에 오른 이세민이 그의 인품을 알아보고 중용함으로써 당나라를 중국 역사상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나라로 꽃피우는데 크게 공헌합니다.

이세민은 위징이 형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말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과거를 묻지않고 자신의 휘하로 끌어 들여 심복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위징은 황제의 잘못을 지적해 직간(直諫)하는 간의대부(諫議大夫)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바른소리’로 잘잘못을 지적합니다. 기록에는 재임 중 위징이 황제에게 올린 간언이 매달 200회라고 적고 있습니다.

말이 간언(諫言)이지 ‘바른 말’ 이라는 것이 윗 사람에게는 듣기 거북한 것이 태반인데 태종이라고 속이 편안할 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문무백관 속에서 위징이 한창 발언을 하는데 황제가 벌떡 일어나 내실로 들어갑니다. 황제는 벽에 걸린 칼집을 움켜 잡더니 “내, 이놈, 이놈을 죽여 버려야지. 사사건건 안 된다, 안 된다하니 이놈을ˑˑˑ.” 뜻밖의 노기(怒氣)에 놀란 황후가 얼른 옆방에서 성장(盛裝)을 하고 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폐하, 감축 드립니다. 폐하께서는 위징과 같은 훌륭한 신하가 보필을 하고 있는 것이 크나 큰 축복이옵니다. 고정하소서.” 화를 삭인 태종은 궁정으로 다시 나가 “내가 생각이 모자랐소. 어이, 의견들을 나누도록 합시다.”사과하고 회의를 계속하게 합니다.

위징은 평소 태종에게 “폐하, 저를 충신(忠臣)이 아닌 양신(良臣)이 되게 해주십시오”하고 진언하곤 했습니다.

충신이라면 내 의견만을 옳다고 주장하다가 다른 신료들과 충돌을 빚고 결국 군주의 미움을 사게돼 곤궁한 처지가 되기 일쑤이지만 양신이라면 군주가 비위를 상하지 않고 직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물론 다른 신료들과도 충돌 없이 뜻을 이루는 지혜로운 신하를 일컫는 것입니다. 그처럼 군주와 신하간에 소통이 잘 되면 군주는 예로써 신하를 대하고 신하 또한 충심으로 보필하는 바람직한 군신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포용과 섬김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당태종이 중국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테평성대를 이루고 세계사에 유례가 드문 성군(聖君)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걸출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숨마저 노렸던 인물을 포용한 그 깊고 넓은 덕망을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위징은 태종의 곁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직간을 거듭했습니다. “예로부터 군주의 재난은 바깥이 아니라 군주 자신에게서 비롯되며 군주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서 안일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라고 안일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특히 “백성이 나라의 근본(以民爲本)이라는 신념하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애민(愛民)의 자세가 군주의 기본 덕목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며 “치국의 근본은 백성이고 백성을 위하는 것만이 바로 왕도정치의 길”임을 역설했습니다.

위징은 “군주는 고집스런 억측을 경계해야 하며 여러 말을 들으면 밝아지고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둡게 된다”며 겸청(兼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태종은 위징이 죽었을 때 몹시 슬퍼하며 탄식했습니다. “사람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서 의관을 바로잡고 옛 것을 거울로 삼아서 역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아서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죽음으로서 짐은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

위징은 “사람의 일생에 의기(意氣)가 있다면야 구차한 공명(功名) 따위 무슨 문제가 되랴"라는 유명한 시로 자신이 살아 온 철학을 남겼습니다.

당 태종과 위징의 관계는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군신관계의 모범으로서 후세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당 태종과 위징, 신료들과의 문답을 엮은 ‘정관정요(貞觀政要)’는 정치의 요체를 기록한 명저(名著)로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의 정치교과서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자고로 큰 뜻을 품은 자는 정관정요를 통해 제왕의 금도와 덕목을 배우는 것은 선정(善政)의 지혜가 바로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중국인들이 성산(聖山)으로 여기는 태산(泰山)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하늘아래 태산’이라고 하지만 실제 높이는 1532m로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다만 진시황 한무제 등 역대 제왕들이 그곳에서 하늘을 향해 봉선제(封禪祭)를 지내 태산에 대한 중국인들의 경외심(敬畏心)은 대단합니다.

나는 그곳 산 정상에서 동쪽 광야를 바라보았습니다. 저기, 바다 건너 보일듯 말듯 조그마한 대륙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중국의 44분의 1쯤되는 한반도, 그 나마 남북으로 갈려 96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나라 대한민국. 그런데 그곳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와우각상(蝸牛角上)의 싸우는 소리. 달팽이 뿔 위에서 이전투구를 벌여온 지난 역사를 돌아보며 솔직히 민망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끝없이 싸우는 것일까.

어제 오늘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란을 보면서 나는 비감함을 금치 못합니다. 어제의 동지가 ‘배신자’가 되어 내동댕이 쳐 지는 비정한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이 나라에 정치 같은 정치는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까 셍각을 헤 보게됩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변명을 하든 결국은 권력투쟁의 다른 표현일진대 21세기 우리의 정치 수준이 이 정도라는데 낯 뜨거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정치는 패를 갈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정관정요를 보았다면 다시 한 번 그 뜻을 음미해 보기를 바라고 읽어 보지 않았다면 늦으나마 한번 읽어 보기를 권코자 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