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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고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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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고통인가?
  • 김영회 언론인
  • 승인 2015.06.24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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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은 칠수 있어도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며
의병까지 일으켜 저항했던
120년 전의 단발령.
그것은 역사의 코미디"

국민의 정부’를 표방하며 김대중정부가 출범하던 1998년 국내 사정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습니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앞에 국가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주부들이 장롱속의 결혼반지, 돌반지까지 들고 나와 힘을 모을 만큼 누란(累卵)의 형국이 되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5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마치 죄인이 된 심정으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위기를 미처 예측하지 못 한것이 큰 실책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5년 전인 1993년 취임할 때만 해도 기세는 하늘을 찔렀고 국민들의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어 박수를 받았습니다.

우선 군내 암 덩어리였던 ‘하나회’를 전격 해체시키는 결단을 보였고 검은돈의 암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금융실명제를 단행한 것입니다. 귀를 의심케 하는 폭탄 같은 뉴스에 국민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현역시절인 1963년 경상도 출신 육사생도를 중심으로 만든 군내 비밀사조직입니다.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비호속에 해마다 기별로 회원수를 불려가며 승진과 요직을 독점하면서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 시해사건 뒤 전, 노 두 사람이 군사정변을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회 조직을 통해 키운 힘이 바탕이 됐던 것입니다.

또한 금융실명제는 실명거래를 통해 원천적으로 검은 돈의 거래를 막고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융실명제는 전에도 여러 번 시도는 했었지만 정치, 경제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시행을 미뤄 오던 것을 김대통령이 칼을 빼들고 단행을 했으니 대단한 용단이었던 것입니다. 김대통령은 또 취임직후 “나는 이 시간부터 단 돈 10원도 부정한 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서 또 한번 놀라게 합니다.

국민들은 김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쳤고 “이제야말로 뭔가 개혁이 되나보다”하고 환호를 보냈습니다.

조선에 단발령(斷髮令)이 내려 진 것은 1895년 음력 11월 15일입니다. 이날 고종황제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해 짐이 먼저 머리를 잘라 신민(臣民)에게 모범을 보이니 백성들은 짐의 뜻을 따르도록 하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고종은 또 뒤에 순종이 된 세자의 머리를 자르게 하고 또한 그 때까지 써 오던 음력을 양력으로 고쳐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하는 새 역법(曆法)을 시행토록 합니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틀어 올린 상투에 담뱃대를 물고 지내던 백성들에게 느닷없이 서양식으로 머리를 자르라니, 이거야 말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온 나라가 혼란에 휩싸였습니다.

도성의 거리와 성문마다 가위와 창칼을 든 관리들이 나가 강제로 행인들의 상투를 잘랐고 백성들 중에는 땅에 떨어진 상투를 주워들고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골서 올라 온 선비들은 소문을 듣고 한밤중에 몰래 고향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유학(儒學)의 거두 최익현은 “내 목은 자를 수 있어도 내 머리는 못 자른다(吾頭可斷此髮不可斷)”고 상소문을 올리고 극렬히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백성들은 이구동성 “나라 망한다”고 탄식을 했습니다.

수천 년을 조상 대대로 이어 온 상투를 자르다니, 아무리 임금님의 특명이라도 도대체 받아 들일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 사회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요,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라는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때였던지라 부모로부터 받은 몸은 터럭하나도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고정관념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전국팔도 곳곳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저항했고 이를 막느라 관군이 출병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단발령이 도화선이 되어 내각은 붕괴됐고 개혁파였던 총리대신 김홍집은 광화문에 끌려 나가 백성들에게 몰매를 맞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단발령에 대한 끈질긴 저항은 그 뒤 30 여 년 동안 이어져 1930년대까지도 상투를 자르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올 해는 그로부터 120년이 되는 해 입니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상황이 빛바랜 그림이 되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비위생적이기 짝이 없는 상투를 자른다고 의병을 일으켜 투쟁을 하고 차라리 내 목을 치라던 사대부들이었습니다.

불과 석 달 전 국모(國母)인 명성황후가 일본인 부랑배들에 의해 불에 타 죽임을 당할 때는 말 한마디도 안하다가 머리를 자르란다하여 의병까지 일으킨 소동은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사랑한다 해도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개혁은 어렵습니다. 기존의 길들여진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는 속성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 기득권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세력이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건 선구자는 있고 진보주의자도 있지만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까닭입니다. 그것은 고금(古今)이 다르지 않고 양(洋)의 동서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제 이야기이지만 그 때 김영삼대통령이 마구 폭탄선언을 할 때 나는 지근거리에서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 ‘하나회’나 경제계나 막강한 힘을 가진 집단들이라서 행여 ‘못된 짓’을 하지는 않을까, 적이 걱정이 됐었습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고 그 결단은 역사에 큰 족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습니다. 변화는 그래 중요합니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변화를 추구하는 나라는 발전을 거듭해 일류국가가 되지만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국민은 삼류국가를 면치 못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도를 넘는 갈등현상은 모두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의 다툼인 것입니다. 그럼 지금 이 사회에 120년 전의 우(愚)는 없는 것일까.

‘진화론’의 찰스다윈은 “지구상의 수백만 종 생물가운데 멸종되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남은 종은 힘이 월등히 세거나 두뇌가 좋은 종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한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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