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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과 <고향의 노래> / <내 맘의 강물> (2):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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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과 <고향의 노래> / <내 맘의 강물> (2)

이정식 언론인 | 기사입력 2015/06/23 [16:27]

이수인과 <고향의 노래> / <내 맘의 강물> (2)

이정식 언론인 | 입력 : 2015/06/23 [16:27]
▲ <내 맘의 강물>출판기념음악회에서 인사말하는 이수인 선생(2012)

노래를 잘 불렀던 학생시절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작곡가 이수인(1939 ~ )은 6.25가 발발한 해인 1950년 여름 마산 회원국민학교(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마산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가야금 연주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당신이 늘 바라시던 마산생활을 2년도 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수인은 그후 마산에서 마산중학교와 마산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학교에서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가고파> <내 마음은 호수여> 등을 불러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이수인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스로 돈을 벌어 대학에 다니거나 아니면 직업을 찾아 사회로 나가야 하는 두 가지 길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수인은 5남4녀 중 일곱째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으므로 집안의 경제적 상황이 매우 곤궁했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인생이 낭만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라고 상심하며 홀로 밤이 깊도록 무학산 중턱에서 항구를 내려다 보곤 했다. 때마다 가야금을 연주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던 중 내 가슴속에 음악을 하지 않는 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날 밤으로 책가방과 옷가지를 챙겨들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무작정 상경 후 서라별예대에 입학

어머님은 몇 푼의 노자를 손에 쥐어 주시며 “배고프면 그냥 내려오너라”고만 하셨다. 서울에 사는 친구 집에 기거하며 이런저런 궁리 끝에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그리고 수석으로 입학해 전 학기 전액을 면제 받는 장학생으로 평소에 흠모해 오던 김동진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작곡일로 바쁘셨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충무로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음악을 거의 도맡아하고 계실 때여서 나는 입학 초부터 잠만 따로 잤지 거의 날마다 선생님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일을 도왔다.“ (내 맘의 강물 53~54쪽, 교육과학사, 2012)

이수인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 마산 성지여자 중·고등학교 음악선생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이듬해 마산 제일여자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마산 제일여고는 교사가 1백여 명에 이르는 큰 학교였다. 교사중에는 후일 서울대 교수가 된 여류 시인 유안진, 문학평론가 조병무, 소설가 김지연, 시인 김재호 같은 분이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 ‘별’에 곡을 붙인 것은 이 시절이었다.

 

“하루는 밤이 늦도록 음악실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고 운동장을 걸어 나오는데 달이 없어서인지 그날따라 유난히 별이 밝았다. 초등학교 시절 지리산 그림자와 함께 보았던 그 별떨기들이 그곳에 있었다. 운동장 가운데서 한참 동안 별구경을 하다가 문득 애송하던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시가 떠 올랐다.

-(중략)-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마루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

나는 그 길로 음악실로 달려가 피아노에 손을 얹었다. 내 입에서 어느새 가람 선생님의 <별>이 노래가 되어 나오고 있었다. 단숨에 악보가 그려졌다. 내 가슴은 여전히 뛰고 있었다. 다시 손볼 필요가 없이 노래가 만들어졌다.“ (내 맘의 강물, 56쪽)

 

            별

이병기 작시 이수인 작곡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를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이수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곡 중의 하나인 별(1962년 작)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후 이수인은 한 선배의 중매로 음악을 사랑하던 김복임을 만나 결혼 했다.

아들이 태어나 “생명의 신비로움에 경탄하고 있을 때”(본인 표현) 서울 중앙방송국(KBS 전신)에서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로 와 달라는 요청이 왔다.

갓 백일을 넘긴 아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 온 내외는 서강 굴다리 아래 방 한칸 부엌 하나인 셋방을 얻어 서울 살림을 시작했다. 1968년 10월이다. 당시 서울 중앙방송국은 남산에 있었는데 서강 굴다리에서 남산까지 늘 걸어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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