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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뱅의 충성심' 오늘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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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뱅의 충성심' 오늘을 생각하며
  • 김영회 / 언론인
  • 승인 2015.06.05 0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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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국민은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지도자를 눈멀게 하고
비뚤어진 애국심이
나라를 망친다" 

18세기 프랑스 나폴레옹시대 니콜라 쇼뱅(Nicolas Chauvin)이라는 군인이 있었습니다. 일개 병사였던 그는 남달리 충성심이 강해 나폴레옹 보나파르드를 마치 하늘의 신(神)처럼 떠 받들었습니다.

쇼뱅은 18세에 군대에 들어가 성실한 군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얼마나 용감했던지 17번이나 부상을 당했고 불구가 되어 군복을 벗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의 헌신과 충성심을 높이 사 특별상으로 ‘명예의 칼’과 상당액의 연금을 하사했습니다.

쇼뱅은 부상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나폴레옹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으며 그가 실각한 뒤에도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충성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제비꽃’을 옷깃에 꽂고 다니며 자랑했습니다.

쇼뱅의 그러한 충성심은 널리 소문이 퍼졌고 희곡작가에 의해 ‘삼색모표’라는 연극의 소재로 채택되어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를 계기로 쇼뱅은 ‘맹목적인 애국주의’의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 비뚤어진 애국심을 뜻하는 쇼비니즘(Chauvinism)의 어원(語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쇼뱅의 이 일화는 당대의 역사적 기록이 없어 작가들의 펜에서 탄생한 가상인물이란 설도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사실이 어떻든 이때부터 쇼뱅은 맹목적 애국심, 즉 국수주의, 극우주의, 배타적 애국주의를 가리키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유신시절이던 1972년 6월 2일 서울 동대문 서울운동장에서는 브라질의 축구명문 산투스 팀과 한국대표팀의 친선경기가 열렸습니다. 산투스 팀에는 ‘축구황제’라 불리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펠레가 소속돼 있었기에 이날 경기장은 물론 전국이 펠레열풍으로 뜨거웠습니다.

당시 한국축구는 국제교류가 거의 없다 시피 했던 데다 펠레라는 초특급선수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 되자마자 펠레는 제대로 뛸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팀이 체력이 좋은 선수들을 3중, 4중 겹겹으로 에워싸고 거친 플레이를 일삼는데다 ‘애국심’에 넘치는 주심이 일방적으로 경기를 진행해 펠레는 묘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플레이를 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펠레에게 공이 가기만 하면 발을 쳐들고 마구 달려들었고 브라질 선수들은 잇달아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심은 펠레가 공을 잡으면 어이없는 반칙휘슬을 불어댔고 한국팀의 노골적인 육탄공세에 브라질선수들은 몸을 사리며 경기를 포기하는 듯 했습니다.

상황이 그쯤 되자 브라질 선수들은 “이런 축구가 어디있느냐”며 경기를 포기할 태세로 주심교체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주최자인 대한축구협회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습니다. 그것이 축구협회의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선진축구를 보고 배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무슨 수를 쓰던 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목표였던 것입니다.

결국 3대1, 경기는 브라질의 승리로 끝이 났고 모처럼 프로축구의 진수를 보려고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 왔던 관중들은 축구협회의 엉뚱한 애국심에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질 언론들은 “한국이라는 나라는 웃기는 나라”라는 비웃음을 쏟아냈습니다. 43년 전 한국의 축구수준은 그랬습니다.

그로부터 ‘스포츠 쇼비니즘’이란 말이 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에 오는 팀은 어느 종목이든 불공정한 심판의 희생양이 돼야 했고 국민들 역시 덩달아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특히 한·일전은 말할 것도 없고 프로복싱 같은 경기는 졸전을 벌여도 열이면 열 번 당연히 우리 선수가 이기는것이 공식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창피하기 짝이 없는 비뚤어진 애국심의 산물이었습니다.

쇼비니즘은 나폴레옹시절의 전설이지만 오늘 날에도 세계에는 우매한 국민들에게 그런 애국심을 부추겨 나라를 끌고 가는 지도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분히 배타적(排他的)이고 극우적(極右的)인 이 애국심이야 말로 정치가들의 전유물이라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나치 히틀러가 민족적 쇼비니즘 세력을 등에 업고 수백만의 유태인 학살을 자행했고 2차대전 때 일본 군국주의 또한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아베 일본수상이 때를 만난듯 거침없이 세계를 누비고 있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우익극단주의자들의 쇼비니즘을 마음 껏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나라는 어떨까. 그와 무관할까. 아닙니다. 우리 사회라고 한국판 쇼뱅이 없을 리 없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이건 쇼뱅은 있기 마련입니다. 더 더욱 일제식민지를 경험하고 독재, 군사정권의 위장된 민주주의를 겪어 온 우리이기에 쇼뱅은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특정 정치인과 국가는 전혀 다른 개념이지만 이성적인 사리판단보다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정치지도자 개인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기에 말입니다. 그들이 바로 쇼뱅입니다.

남의 의견에는 귀를 막고 강경일변도로 자기생각만을 옳다고 하는 막무가내, 벽창호들이 큰 목소리로 사회를 지배 할 때 나라는 비뚤게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조용한 날이 없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것도 실은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수이든 진보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극과 극을 달리는 극단론자들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입니다.

열린 의식을 가진 온건한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나라를 이끌어 갈 때 국민은 평안하고 나라는 제대로 돌아갑니다. 그러지 않고 정치 지도자가 일부 쇼뱅들의 등에 업혀 맹목적인 충성심에 취해 입맛대로 통치를 한다면 그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3천여 년 전 중국 은나라 때 강태공이 치세(治世)를 묻는 주(周) 문왕(文王)에게 말했습니다. 천하비일인지천하 내천하지천하야(天下非一人之天下 乃天下之天下也)라고. 천하는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천하 만 백성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 줄여 말하면 ‘나라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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