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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의 주도자로 떠오른 중국: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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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계의 주도자로 떠오른 중국

한준부 경제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4/02 [15:58]

[칼럼] 세계의 주도자로 떠오른 중국

한준부 경제칼럼니스트 | 입력 : 2015/04/02 [15:58]

 1405년 7월 11일 중국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 류지아항(刘家港)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선단이 집결했다.

선단은 보물선 62척, 승무원 2만7천800명의 주력 함대와 지원함을 포함해 모두 217척으로 구성돼 있었다.

항구를 가득 메운 선단이 힘차게 닻을 올리는 순간 세계사는 새로운 장을 열고 있었다.

선단을 이끈 인물은 명나라 내관감 장관 정화(鄭和,1371~1433)이다.

정화는 바닷길을 통한 무역을 장려하라는 영락제의 명을 받들어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대 항해의 위업을 달성했다.

1407년까지 3년간의 1차 항해는 베트남 참파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자바, 수마트라, 말레이시아 말라카, 스리랑카 실론을 거쳐 인도의 캘커타까지 도달했다.

이후 7번의 항해는 페르시아의 호르무즈, 아라비아의 아덴에 이어 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케냐의 몸바사까지 이르렀다.

정화의 대 항해는 시기적으로나 규모면으로 볼 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한 ‘지리상의 대 발견’에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시기적으로는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1492),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양 도달(1497)보다 90년이나 앞섰다.

선단의 주력선인 보물선은 길이 152m, 너비 60m, 배수량 2,700톤으로 250톤 3척, 승무원 88명이었던 콜롬부스의 함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였다.

정화의 대 항해가 유럽의 신대륙 발견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유럽 열강들이 식민지의 정복자로 군림한데 반해 명나라는 단지 위용을 과시하고 형식적인 지배권을 갖는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은 원주민들을 약탈하고 잔인한 수법으로 식민지를 지배했으나 중국은 원주민들을 착취하거나 땅을 빼앗지도 노예로 잡아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지 세력들의 갈등을 중재하고 선물을 주는 등 유화 노선을 견지했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에 형성된 방대한 화교경제문화권은 정화의 대 항해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1424년 영락제의 사망과 함께 정화의 대 항해도 막을 내린다.

영락제에 이어 즉위한 홍희제는 보물선단 원정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원정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외국과의 접촉을 통제하고 외국배의 중국 항구 출입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정책을 취했다.

홍희제의 뒤를 이은 선덕제는 애써 이룩한 해군력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6년 만에 원정을 재개했으나 육순을 넘긴 정화는 호르무즈 인근에서 병을 얻어 사망하고 쑤저우로 귀항한 함대는 두 번 다시 출항하지 못했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명나라가 ‘바다의 실크로드’를 계속해서 개척해 나갔다면 아마도 오늘날 서양 중심의 세계사는 다르게 씌어졌을 것이다.

중국 주도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이런 관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AIIB는 지난해 10월 중국, 인도, 파키스탄, 몽골, 그리고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아세안 10개국 등 21개국이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자본금 500억달러로 공식 출범할 때 까지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실제 돈을 대줄 선진국들의 호응 없이 자금을 빌려 쓸 나라만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월 31일 참여국 신청을 마감한 결과 영국을 필두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주요국들이 앞 다투어 참여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47개 참여국들은 북미를 제외한 전 대륙에 골고루 분포됐다

이로써 AIIB는 단숨에 IMF(국제통화기금), WB(세계은행)에 필적하는 국제기구로서 위상을 갖추게 됐다.

AIIB의 흥행이 대 성공을 거둠에 따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구상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해상과 육상의 실크로드) 구축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중국은 나아가 경제규모 세계 2위, 무역량 1위,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3조8400억달러) 등 축적된 경제력을 내세워 영향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려 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의 AIIB 참여는 실리적으로는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건설을 침체된 유럽경제의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 정치경제 역학 구도의 변화가 깔려있다.

미국은 서방주요국들의 참여를 끝까지 반대했으나 결국은 막지 못하고 중국과의 파워게임에서 완패했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국제금융질서에서 미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순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경제무대에서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오는 10월로 예정된 IMF 회원국회의에서 위안화의 IMF 특별인출권(SDR) 편입이 결정될 가능성이 컸으나 미국은 AIIB 회원국 신청 마감 직후 “위안화가 SDR에 편입되기 전에 금융규제 완화 등 필수적인 개혁조치를 단행해야한다”며 노골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중국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위안화의 기축통화 위상 확보를 두고도 양국은 첨예하게 대립할 전망이다.

미국은 위안화의 기축통화에 앞서 자본계정 자유화, 유연한 환율제도, 금리 자유화, 금융규제 및 감독 강화 등 보다 근본적인 중국의 개혁조치가 선행돼야한다는 기존의 주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이에 따라 두 나라간의 경제 패권 경쟁은 격화될 것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IB 출범은 2차세계 대전 이후 브래튼우즈 체제 아래 시작된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금융 질서가 새 판짜기의 신호탄을 올렸다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의 수퍼 파워가 단 시일 내에 미국을 압도하진 않겠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이 누려왔던 절대 패자의 지위는 더 이상 독점할 수 없게 됐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 질서의 주도자로서 전면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급부상이 600여 년 전 정화의 대 항해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때와 같이 쇄국정책으로 돌아서 역사의 은둔자로 숨어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세계사를 주도한 국가들의 생존주기를 되돌아보면 중국의 패권은 짧게는 100년, 길게는 수백 년 간 지속될 수 있으며 지금은 그 초입 단계에 불과하다.

이러한 대외 여건은 지리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으로 볼 때 우리에게는 국가 발전에 호기이다.

우리는 작금의 세계사적 변화를 잘 인식하고 그 흐름에 잘 올라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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