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처럼 봄 기운이 만연했던 지난 2007년 3월, 당시 미국 2위권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추리 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 Corporation)은 바클레이 캐피탈(Barclay Captial)로부터 약 9억 원의 채무상환을 면제 받는 대신 바클레이의 신용을 통해 대출한 대출 보증 자산을 매각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뉴센추리 파이낸셜은 공식 파산신청을 하였고,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차가운 신호가 되었다. ○ 2008년의 차디찬 봄이 찾아온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1929년 발발한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가장 광범위한 수준의 경제적 혼란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의 민간의 소비지출과 기업의 총고정자본형성의 급격한 감소를 야기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는 장기간 지속되었고 경제적 혼란은 가중되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폭발적이고 연쇄적인 경제 붕괴 현상이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그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하다. 2008년 금융 위기는 2000년대 이후 지속적인 저금리 기조가 나타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미국은 저금리의 흐름 속에서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주택 가격은 빠르게 상승했고 은행들은 주택을 담보로 한 자금대출을 대대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주택 가격 상승을 맹목적으로 신뢰한 은행들은 고도로 복잡화되고 파편화된 높은 수익성의 채권까지 발행하여 자금을 마련해 서브프라임(Subprime) 계층으로 알려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도 대출을 확대했다. 그러나 점차 국가적인 차원에서 금리가 상승하게 되고 채무자들은 너도 나도 부동산 판매에 열을 올리지만 부동산은 팔리지 않고 그 가격은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계층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채 파산하게 되고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은행들도 줄줄이 파산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미국의 금융시장은 순식간에 붕괴하고 연쇄적으로 전세계의 금융시장이 얼어붙게 된 것이다. ○ 경제의 위기 이면에 숨은 사회의 위기 표면적 혹은 경제적 현상으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바라볼 때, 사건의 원인은 미국의 당시 경제∙사회적 제반 조건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바라보면 긍정주의에 대한 지나친 신봉이 자리잡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은 저금리의 흐름과 주택 시장의 활성화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시 말해, 당시에 바람직하고 긍정적으로 여겨졌던 상황과 현실이 계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그릇된 사회적 분위기와 신념이 금융 위기를 초래한 비중 있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여성작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1941 ~ )는 그녀의 저서 『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Bright-Sided)』(부키, 2014)에서 긍정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봉이 우리 사회 도처에,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해있다고 지적한다. 긍정주의의 기저에는 성과주의 사회가 존재하고 있다. 오늘날 자유와 권리가 신장된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무엇이든 이루어낼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성과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냈고 과도한 긍정성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긍정주의의 팽배는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혹은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와 이론적으로 맞아떨어져 더욱 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긍정주의가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더 잘 해낼 수 있고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맹목적인 신념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바꿔 말하면, 성과를 내고 있는 긍정적인 현실 조건에 집착한 나머지 그 조건이 부정적인 판도로 흐름에도 불구하고 판단력을 상실한 채 위기의 징조에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금리와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긍정성으로 포장하고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사회∙문화의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세계 경제의 유래 없는 위기를 자초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이다. ○ 긍정주의와 불안 프랑스의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 ~) 또한 그의 저서 『불안(Status Anxiety)』(이레, 2005)에서 성과주의 사회에 대해 꼬집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위대한 정치 혁명과 소비자 혁명은 인류의 물질적 운명을 크게 개선시키는 동시에 심리적 고뇌도 안겨주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특별하고 새로운 이상, 즉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며 누구나 무엇을 이룰 수 있는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중략)∙∙∙∙∙∙ 발전한 사회는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알랭 드 보통의 우려와 지적은 에런라이크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불안은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음에도, 성공과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음에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사회는 분명히 과거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성공을 이루어낼 기회도 더 많이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꽃씨 속에 숨은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야 하듯이, 눈앞의 성과에 집착한 근시안적인 태도는 2008년 이맘때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와 같은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금융 위기의 늪에서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현 시점이 바로 또 다른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진정한 긍정의 의미를 되새겨볼 때이다. <저작권자 ⓒ 세종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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