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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 (2) - 이육사의 '광야', 지리산 산수유 마을: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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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 (2) - 이육사의 '광야', 지리산 산수유 마을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5/03/06 [21:56]

봄의 전령 (2) - 이육사의 '광야', 지리산 산수유 마을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5/03/06 [21:56]

이육사의 '광야'

섬진강 쪽에서 본 매화마을

매화 마을 곳곳에는 매화와 관련한 많은 시비들이 서있다. 그중에서 웬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시비가 있다.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李陸史, 본명은 원록(源綠) 또는 원삼(源三), 1904-1944)의 <광야(曠野)> 시비가 그것이다.

'광야' 시비

광야 (曠野)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조국의 신성한 역사와 간절한 독립에의 염원을 담은 애국시이다. 여기에서 ‘눈 내리는 광야’는 일제에 강점 당한 차가운 조국 강토이며, ‘매화 향기’는 독립에 대한 희망과 기대, 또는 굴하지 않는 민족의 정기가 가져올 해방의 기운이라고 해석한다.

마지막 연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우리 민족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구원자 즉 기독교의 메시아같은 존재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육사 선생은 17번이나 옥고를 치루며 오로지 조국 광복의 염원 속에 살다가 해방 한해전인 1944년 1월, 차가운 북경의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마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시는 북경 감옥에 투옥중일 때 쓴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2월 17일 자유신문에 처음 소개되었다. 이듬해인 1946년 아우 원조(源朝)가 육사의 시를 모두 모아 <육사시집(陸史詩集)>을 간행하였다.

매화 향기에 취한 봄 나들이객들이 시비 앞을 무심코 지나간다. 그러나 간혹 진한 감동을 느끼며 이 시를 읽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리산 산수유마을의 장관

이처럼 섬진강변에 매화꽃이 한창일 때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지리산 자락 아래 구례 산동면 일대에는 산수유꽃이 온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며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지리산 산수유마을중 한 곳인 현천마을

 

현천마을 저수지 주변에도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산동면 상위마을, 하위마을, 현천마을 등에서 매해 펼쳐지는 산수유꽃 축제도 유명하다. 산수유꽃 역시 산수유축제기간을 지나고 나서 만개할 때가 종종 있다.

굳이 품위(品位)로 말한다면 키 큰 산수유에 조금 못 미치는 듯 하지만 노란 색깔만큼은 그에 못지않은 것이 개나리다. 곳곳에 노란 군락을 이루며 사는 개나리 역시 3월 하순께부터 봄의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개나리 보다 조금 늦지만 4월에 들어서면서 연분홍 진달래도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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