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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과 시인 박인환 (3):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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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과 시인 박인환 (3)

이정식 / 언론인 | 기사입력 2015/01/09 [16:57]

'세월이 가면'과 시인 박인환 (3)

이정식 / 언론인 | 입력 : 2015/01/09 [16:57]

<세월이 가면>을 쓴 일주일 후 세상 떠나 

1956년 3월 20일 밤, 31세의 젊은 시인 박인환이 돌연 사망했다.

세상 떠나기 3일 전인 3월 17일에 천재 시인 이상(李箱, 본명 김해경. 1910-1937) 추모의 밤이 있었는데, 이날부터 매일 술을 마셨다.

그 당시 박인환은 경제적으로 매우 쪼들렸다. 세탁소에 맡긴 스프링 코트를 찾을 돈이 없어서 두꺼운 겨울 외투를 봄이 된 그때까지 걸치고 다녔다고 한다.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는데, 그런 상태에서 빈 속에 계속 술을 마신 것이 화근이 됐다고 보는 것 같다. 세상 떠나던 그 날도 술을 잔뜩 마시고 밤 8시 30분쯤 집에 들어온 후에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생명수(활명수 같은 것)를 달라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9시경 숨을 거뒀다.

그의 아들 박세형은 20년 후인 1976년 아버지 박인환의 시들을 모아 ‘박인환 시집 <목마와 숙녀>’를 내면서 후기에 선친의 사인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아버지께서 타계하신지 오래 되어 사인(死因) 등에 관하여 궁금해하시는 독자가 계실 것 같아 이 기회를 빌어 말씀해 둔다. 아버지께선 평소 약주를 좋아하셨는데, 그날도 친구분들과 함께 명동에서 약주를 드신 후 귀가, 심장마비로 별안간 돌아가셨다. 1956년 3월 20일 밤 9시 경이었다.”

 

사진 : 오른쪽부터 박인환(모자 쓴 이), 이진섭, 유두연, 박태진 (1955년)

 박인환은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용모였다. 친구와 영화와 스카치 위스키인 조니 워커를 좋아했다.

“장례식날, 많은 문우들과 명동의 친구들이 왔다. 모윤숙이 시 낭독을 하고 조병화가 조시를 낭독하는 가운데 많은 추억담과 오열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망우리 묘지로 가는 그의 관 뒤에는 수많은 친구들과 선배들이 따랐고 그의 관 속에 생시에 박인환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넣어 주고 흙을 덮었다.” (박인환 평전, ‘아! 박인환’, 강계순, 문학예술사, 1983)

<세월이 가면>은 세상 떠나기 불과 며칠 전에 쓴 시이기 때문에 첫 시집엔 없고, 앞에 언급한 사후 20주기에 맞춰 나온 시집 <목마와 숙녀>에 실려있다.

 박인환의 가까운 선후배들은 박인환이 세상을 떠난 그해 추석에 그의 무덤 앞에 아담한 비석을 하나 세워주었다.

앞면에는 한자로 ‘시인 박인환지묘’라는 묘비명 아래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세월이 가면>의 일부 구절,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를 새겼으며 뒷면에는 그의 짧은 행장을 적었다. 그러나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 묘비 뒷면의 글자들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우에 깍여져 있다. 필자는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로 뒷면을 여러 각도로 찍었다. 컴퓨터로 확대하여 희미한 글자들을 겨우 읽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세월이 가면 (2)>에 적은 바와 같다.

현재 묘지 위쪽에는 망우공원묘지 순환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도로 옆에 그의 시 <목마와 숙녀>의 일부 구절(---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이 적혀있는 하얀 화강암 시비가 세워져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 시비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약력이 적혀있다.

1926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 상동리에서 출생

1945 광복후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하여 종로 낙원동에서 서점 ⌜마리서사⌟ 를 경영

1946 <국제신보>에 ‘거리’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인으로 데뷔

1948 동인지 ‘新詩論’(신시론) 제1집 발간

1949 김경림,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 창>을 발간하였으며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음

동인그룹 ‘후반기’(後半紀)를 발족시킴

1955 <박인환 선시집> 출간

1956 <세월이 가면> <죽은 아포롱> <옛날의 사람들에게> 등을 씀

박인환의 묘에 가기 위해서는 묘지 관리사무소를 지나 우측도로를 따라가다가 이 시비가 있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거리로는 도로에서 100미터도 안되어 보이지만 길도 없고 매우 가파러서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다. 길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의 묘들도 오래되어 찾는 이들이 별로 없는 듯 하였다.

 

사진 : 박인환 묘소 근처에 서 있는 시비.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의 일부 구절이 적혀있다.

 

사진 : 박인환의 약력이 새겨져 있는 시비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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