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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광산 깊은 곳에서... 푸쉬킨: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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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광산 깊은 곳에서... 푸쉬킨

시베리아의 데카브리스트 (3)

이정식 | 기사입력 2014/01/07 [21:49]

시베리아 광산 깊은 곳에서... 푸쉬킨

시베리아의 데카브리스트 (3)

이정식 | 입력 : 2014/01/07 [21:49]
▲ 푸쉬킨 (1799-1837)

데카브리스트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1837)이다. 우리에게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로 시작되는 시로 너무나 유명한 러시아의 시인이다. 그는 많은 데키브리스트들과 친척 또는 친구관계였다. 25명이 친척, 56명이 친구였으며 이들과 비밀리에 활동을 같이 했다고 한다.

모스크바의 유서깊은 귀족집안 출신인 푸쉬킨은 이미 10대 때부터 시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귀족 자제들을 위한 왕립학교인 리베이를 졸업한 뒤 18세때인 1817년부터 외무부에서 번역관으로 일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진보적 문학모임에 참여하고 혁명적 인사들과 교류하며 짜르체제하의 러시아의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풍자하는 <자유>(1817), <농촌>(1819) 등 저항시들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짜르의 미움을 산 그는 1820년 러시아 남부 흑해연안의 오데싸로 추방된다. 그곳은 몇 년 뒤 발콘스키의 아내가 되는 마리아 집안의 영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 있을 때인 1823년 시(詩)뿐만 아니라 그의 최고의 소설인 <예브게니 오네긴>의 집필을 시작했다. 이 소설은 <벨킨 이야기>와 더불어 1830년에 완성되었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그 후 차이코프스키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졌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도 푸쉬킨의 작품이 원작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한 세기도 더 지난 후 극작가 피터 셰퍼의 작품 <아마데우스>(1979)에 영감을 주었다. <아마데우스>는 1984년 영화로 만들어져 한층 유명세를 탔다.

오데싸에서 그는 1824년 국외 망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해 집안의 영지인 미하일로프스코에 유폐되었다. 그후데카브리스트의 난이 진압된 다음해인 1826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사면으로 수도 뻬쩨르부르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그는 늘 당국의 감시를 받았으며 작품들도 검열을 피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일찌기 남 러시아로 추방되지 않고 수도 뻬쩨르부르크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었다면 그의 성향상 데카브리스트의 난 때 연류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났을 가능성이 높다.

▲ 이르쿠츠크 거리

푸쉬킨은 뻬쩨르부르크로 돌아온 후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하고 있는 데카브리스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시베리아 광산 깊은 곳에서


시베리아 광산 깊은 곳에서도
명예로운 인내심 높이 지켜라
그대들의 고통어린 노동과
마음의 분투는 헛되지 않으리니

 

불운의 충직한 자매, 희망은
지하감옥의 어둠속에 잠재되어 있으니
그녀는 깨어날 것이고, 그대는 기쁨에 뛰겠지
기다리던 그 날은 오리라

사랑과 우정이 어두운 속박의 문을 넘어
그대들에게 넘칠 것이오
내 자유의 목소리가 지금 그대들의 감방
그 굴속까지 다다르듯이

무거운 사슬이 바닥에 떨어지고
감옥은 무너지리니
자유가 문에서 그대를 맞을 때
형제들이 그대에게 검을 건네주리라
(정리 : 이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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