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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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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소설 <유정>의 무대 '바이칼' (10)

이정식 | 기사입력 2013/12/29 [18:01]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소설 <유정>의 무대 '바이칼' (10)

이정식 | 입력 : 2013/12/29 [18:01]

겨울에도 얼지 않는 앙가라 강

▲ 앙가라 강. 강 가운데 낚시꾼 보트가 보인다.

소설 <유정>에 자주 등장하는 바이칼 호수 인근 도시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고풍스런 아름다움을 지닌 도시이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서 제정 러시아 시절, 알래스카가 미국에 팔리기 전에는 알래스카도 이르쿠츠크 주지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도시가 세워진지 350년쯤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도시답게 무미건조한 소비에트 식 건물들로 차 있는 시베리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유럽식 스타일의 옛 건물이 많다.

모스크바를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이르쿠츠크에 처음 도착한 것은 1898년이었다. 물론 단선이다.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연결하자면 바이칼 호수를 남쪽으로 ‘삥’ 돌아야 했는데 수많은 터널을 뚫고 교량을 세워야 하는 등 선로 건설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횡단열차의 연결을 위해 열차를 배에 싣고 바이칼 호를 건너는 ‘열차페리’를 운영했던 것이다.

‘열차 페리’는 1900년 4월부터 1905년 10월까지 5년 넘게 운행되었다. 이르쿠츠크 쪽인 포트 바이칼 역에서부터 건너편인 미소바야 역까지를 오갔다. 세 시간 반 정도 걸렸다고 한다. 그 사이에 1902년 초부터 포트 바이칼에서 부터 바이칼 호수를 남쪽으로 돌아 미소바야까지 연결하는 길이 약 230km의 환바이칼 구간에 대한 선로건설이 시작되었다. 러일전쟁은 이 구간의 건설이 진행중이던 1904년 2월에 터졌고 선로 완공 한달전인 1905년 9월에 끝났다. 횡단열차의 단선구조와 겨울에 운영할 수 없는 바이칼 호의 ‘열차 페리’가 러일전쟁 패전의 주요한 원인의 하나였다는 것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시베리아횡단열차로는 동쪽 출발지인 블리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정확하게 75시간 걸린다. 3일 밤낮을 꼬박 가고도 3시간을 더 가야한다. 그러나 비행기로는 인천공항에서 네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서울과 이르쿠츠크는 시차가 없다. 그러나 이르쿠츠크와 모스크바는 5시간, 블리디보스톡과는 3시간의 시차가 있다.

이르크츠크는 바이칼 호수의 물이 빠져나오는 유일한 강인 앙가라 강을 따라 형성된 도시다. 이르쿠츠크 주 인구 250만명 가운데 70만명이 이 도시에 살고 있다.

바이칼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강이 330여개인데 호수의 물이 빠져나오는 강이 앙가라 강 하나 뿐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바이칼 호수는 겨울에 대형트럭이 오갈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지만 호수에서 앙가라 강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입구쪽과 이루크츠크 댐 아래 쪽 등은 물살이 워낙 세어서 기온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이르쿠츠크 시를 지나는 강폭도 무척 넓다. 세찬 물결을 거스르며 낚시꾼들이 소형 모터보트를 탄 채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교회당

▲ 이르쿠츠크 시내의 까잔스키정교회

도시에는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교회당들이 많이 서있다. 겉과 속이 모두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교회 내부는 가톨릭 성당과 비슷하며 성화와 이콘 등으로 장식되어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는 성당과 달리 의자가 없었다. 모두가 선채로 의식에 참여한다고 했다.

까진스키 정교회에 갔을 때였다. 내부의 입구 가까운 벽쪽으로 긴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노약자나 젖먹이를 가진 이들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자리에 한 여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두건과 깨끗한 옷차림이 매우 청순해보였다. 문득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상을 연상케 하였는데, 함께 간 사진가들은 이미 촬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까잔스키정교회 안)

이 까잔스키 정교회는 러시아의 소수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체첸이나,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그루지아인 등이 주로 모이는 교회라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이들을 ‘얼굴이 검은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왜 무섭다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가이드에게 “왜 무섭다고 하느냐?”고 물어보니, 이들이 문제를 자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압박받는 민족일수록 저항의식이 강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러고보니 정교회 안에서 보았던 그 여인도 얼굴이 조금 검은 편이었다. 그러나 순박해 보일 뿐 무서워 보이는 면은 전혀 없었다.

데카브리스트 이야기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도시 중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인근의 바이칼 호수 때문이다. 그러나 이르쿠츠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비록 실패하기는 했으나 러시아에서 최초로 혁명을 일으킨 ‘데카브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시베리아는 100명이 넘는 귀족 출신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지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90년 전, 그들은 양발이 무거운 족쇄에 채워진 채 이르쿠츠크 인근의 황량한 유형지로 던져졌다. (이후 ‘시베리아의 데카브리스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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