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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바라셨나요?: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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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바라셨나요?

김형배 주간 | 기사입력 2014/09/19 [16:48]

[칼럼]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바라셨나요?

김형배 주간 | 입력 : 2014/09/19 [16:48]
▲ 가디언지

아름다운 나라 스코틀랜드에 가보셨습니까? 이 나라는 중세풍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에딘버러 캐슬을 중심으로 중세 도시의 고풍스런 멋진 모습을 연출하는 에딘버러를 수도로 하고 있습니다. 국토는 척박한 땅으로 이뤄져 있고 도시 규모 또한 작지만,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나라입니다.

우선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는 해리 포터로 유명합니다. 이 연작소설을 쓴 작가 조앤 롤링을 일약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시킨 곳이기도 합니다. 무명작가였던 조앤 롤링은 에딘버러의 작은 식당 엘리펀트 하우스에서 싸구려 음식을 시켜먹고 주인 눈치를 보면서 소설을 써내려 갔다고 해서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매년 열리는 에딘버러문화예술축제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예술 축제입니다. 올해로 벌써 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축제에 한국에선 노름마치 김주홍 감독과 사물놀이패의 김덕수 선생이 참가해 자신들의 재능을 맘껏 뽐내고 또 이를 인정받아 이름을 널리 알렸다고 합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해리 포터의 고향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스코틀랜드가 산업발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나라라는 점입니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스코틀랜드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원래 머리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근대 산업혁명에서 가장 혁명적인 것은 유통 물류혁명입니다. 그 교통수단의 총아인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제임스 와트가 이곳 출신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국부론의 아담 스미스, 공리주의자 데이비드 흄도 이 나라가 배출한 인물들입니다.

이밖에 세계 최고의 양주인 스카치 위스키, 최근에는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켜 생명공학의 선두주자로서의 지위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에서 출발해 지금은 생명공학의 태동지로 자리매김돼 있습니다.

인구 530만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지적 수준은 세계최고 수준입니다.

영연방은, 영어로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 Ireland입니다. 그런데 대영제국에 속한 4개 국가중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공식명칭에 표기돼 있지 않습니다.

북아일랜드는 나중에 1921년 독립전쟁 끝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전체 32개 카운티 가운데 6개가 분리 독립에 반대해 영연방으로 남아 있게 됐습니다. 나머지 지역이 단결해 아일랜드 공화국을 탄생시킨 된 것입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연방의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와 함께 현재의 영연방을 구성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나라는 참 독특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독립의 열망이 아주 높은 나라입니다. 영국의 한 주가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앵글로 색슨의 잉글랜드와는 달리 켈트족 

그 까닭을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이들은 앵글로-노르만족이 아닙니다. 프랑스, 아일랜드와 같은 켈트족입니다. 그 기원은 이렇습니다. 연방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리튼 섬의 북쪽 스코틀랜드 지방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500년 전후입니다. 기원전 43년 카물로두눔(지금의 콜체스터 지방)에서 남부 브리튼의 11개 부족이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에 항복했을 때도 이들은 로마에 대한 복종을 거부했습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이 '거친 종족'은 '골칫덩어리'였습니다. 서기 122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동쪽 뉴캐슬서부터 서로는 솔웨이만에 이르는 113km의 긴 장벽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북쪽 지역을 '칼레도니아'라고 불렀습니다. 이 칼레도니아는 위치로 볼 때 지금의 스코틀랜드와 지역이 비슷합니다.

이후 로마가 쇠퇴한 뒤 브리튼 섬 남부에 색슨족 왕조가 들어서고 노르망디 공작인 윌리엄의 군대가 쳐들어와 노르만 왕조를 열었던 것입니다. 이곳 주민 대부분은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켈트족으로 색슨이나 노르만족과는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종족입니다.

그 뒤 스코틀랜드 왕국은 잉글랜드를 지배하던 노르만 왕조와의 혼맥을 맺기 시작해 오랜 평화를 유지합니다.

독립영웅 월레스와 부르스의 전설 

그러나 이 평화와 안정은 1286년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더 3세의 돌연한 죽음과 함께 끝나 버립니다. 연회를 즐기던 왕이 어여쁜 왕비가 보고 싶어 밤길을 나섰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만 것입니다.

이어 공주가 왕위를 잇지만 이 혼란스런 틈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놓칠 리 없겠지요. 군대를 이끌고 가서 스코틀랜드를 정복해 버렸습니다.

이 국가적 위기를 만나 농민 출신의 큰 인물이 나타납니다. 그가 바로 오늘날까지 스코트랜드인들의 존경과 추앙을 한몸에 받고 있는 독립전쟁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입니다.

그는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불과 5천명의 군사로 2만5천명의 잉글랜드 대군을 격파합니다. 국내에서 개봉돼 여러분들도 보셨을 멜 깁슨 주연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존인물이 바로 윌리엄 월레스입니다.

나중에 폴커크 전투에서 패한 그는 같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 프랑스로 가 원조를 요청하지만 나중에 잉글랜드에 매수된 스코틀랜드 기사에 붙잡혀 런던으로 압송돼 사지가 잘리고 내장이 불태워지는 참형을 당하고 맙니다.

물론 그의 죽음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인의 저항은 계속됐습니다. 그를 이어 등장한 인물이 바로 로커트 더 부르스였습니다. 월레스와 달리 귀족 출신 기사였던 그는 영화 브레이크 하트에서 다소 비열한 인물로 잘못 그려진 것과 딴 판으로 대단한 위엄과 용맹을 겸비한 장수였습니다.

6차례의 전투에서 졌지만 "작은 거미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튼튼한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심기일전해 '6전7기'의 멋진 주인공이 되었습니다.1314년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군의 대격전에서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가 이끄는 1만4천여 대군을 절반의 병력으로 기발한 전술을 써서 거꾸러 뜨리고 맙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 을 연상시킬 정도의 지략가였던 그는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의 지혜와 익숙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잉글랜드군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전투에서 대패한 에드워드2세는 목숨만 부지한 채 패주하고 맙니다. 월레스 처형 9년 만의 쾌거였고 이로써 스코틀랜드는 1328년 독립에 성공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열망은 식지 않는다 

종족이 다른 점을 너무 장황하게 설명했군요. 그러나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화합할 수 없는 불화의 국가임을 보여주는 역사를 알아야 하기에 말씀드렸습니다.

종족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이들은 프랑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인들은 자기나라축구대표팀이 잉글랜드와 A 매치 경기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프랑스를 응원하곤 합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카탈루냐 지방이나 바스크 사람들이 스페인국가대표팀의 승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 까닭과 비슷합니다.

이제 이들의 뜨거운 독립심과 남다른 민족 정서를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 독립을 바라는 스코틀랜드인들이 분리 독립 주민투표에서 패배했다고 합니다. 55대 45, 10%포인트의 큰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니 그들에게는 큰 충격일 것입니다. 만약 스코틀랜드의 두 독립 영웅 월레스와 부르스가 살아 있었다면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아마 목놓아 통곡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1603년 스코틀랜드왕이 잉글랜드 국왕에 즉위하고 1707년 연방통합법 통과로  양국이 어물쩍 통합된 지 307년 만에 영 연방과 결별하고 새로운 독립국가로 자립하려던 스코틀랜드인들의 도전이 이번에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독립에의 꿈이 영원히 식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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