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땅 라다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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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땅 라다크 (1)
  • 이정식 / 언론인
  • 승인 2014.09.0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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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계와 라다크를 연결하는 아찔한 고갯길들

스리나가르에서 카르길까지

▲ 도로 건설로 허리가 잘린 빙하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 속의 오지 라다크. 라다크로 가는 길은 매우 험하다. 해발 3천, 4천, 혹은 5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야 중심 레에 닿을 수 있다. 레의 평균 높이는 해발 3천5백 미터다.
8월 2일(2014년) 저녁, 인천공항을 떠난 우리 일행은 이튿날 델리에서 다시 비행기로 잠무카슈미르 주의 스리나가르까지 간 후 이곳에서 지프를 이용해 레까지 가는 경로를 택했다.
스리나가르는 인도와 영토 분쟁이 있는 파키스탄 국경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공항 주변부터 군인들의 경계가 삼엄했다.
스리나가르는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도시다. 좁은 도로에 신호등도 별로 없고, 차선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가난하고 뒤떨어진 도시의 풍경이다.

달 호수와 하우스 보트

▲ 달 호수의 수상택시인 시카라
▲ 하우스 보트촌 앞을 지나는 시카라
그래도 3일 저녁 우리가 묵은 하우스 보트(House Boat, 선박 형태의 수상 여관) 주변의 풍광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커다란 달(Dal) 호수 안에 있다.
오래전 하우스 보트가 처음 생길 때는 배를 숙소로 개조해 만들었다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배를 개조했다기 보다는 애당초부터 숙소를 배처럼 만든 것 같았다. 자기들은 수상 호텔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보기엔 그저 웬만한 여관 수준일 뿐이다.
3일 저녁 하우스 보트 숙소로 가기 전, 시카라라고 부르는 지붕이 있는 작은 배를 타고 달 호수의 일몰을 찍으러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호수는 잔잔했으나 구름이 끼어 제대로 된 일몰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호수 중간에 아치형 구조물이 있었는데, 호수의 풍광을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시카라는 그 아치를 지나 다녔다. 시카라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라처럼 달 호수의 수상 택시다.

새벽을 깨우는 수상채소시장

▲ 새벽에 열리는 달 호수의 수상야채시장
4일 새벽, 해가 뜨기도 전에 숙소에서 나왔다. 어둠 속에서 시카라를 타고 새벽에 여는 수상채소시장을 보러갔다.
토마토, 무, 오이, 가지, 상추처럼 생긴 야채 등 각종 채소를 실은 작은 배들이 모여들었다. 꽃을 싣고 온 배도 있었다. 대부분 집에서 키운 것들을 싣고 나온 것이라고 했다. 각자의 배를 타고 온 달 호수 사람들이 서로의 채소를 사고파는 동네장터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일상이겠지만 우리에겐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하우스 보트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호수에는 발이 노란 쇠백로가 많이 눈에 띄었다. 쇠백로는 다른 백로보다는 몸집이 조금 작은데 발이 노란색이어서 쉽게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봄에 남쪽나라에서 왔다가 번식을 하고 가을이 오기 전에 떠나는 여름 철새인데, 한국에서 가끔 보던 새여서인지 반가왔다. 여기 있는 쇠백로가 우리나라까지 오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나라에 오는 백로는 겨울을 동남아 등지에서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수상야채시장을 본 후 하우스 보트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시카라를 타고 호수밖으로 나와 드디어 레를 향해 출발했다. 오전 8시 10분이었다.

레를 향해 출발

처음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듯 하더니 차츰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로 한쪽은 천길 낭떠러지다. 이 험하디 험한 길을 지프는 서두르듯 빠른 속도로 달렸다. 은근히 걱정이 되어 슬며시 계기판을 보니 시속 80킬로다. 이런 길에서 시속 80킬로라니...
선진국 같으면 시속 30킬로나 20킬로 이하로 속도를 엄격히 제한했을 만한 도로상황이다.
가드레일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아차’ 하면 그만이다.
중간에 잠시 차가 멈췄을 때 차에서 내리는 일행의 얼굴을 보니 모두들 십년감수했다는 표정들이었다.

스리나가르에서 레까지는 4백 몇십km다. (스리나가르에서 레까지의 공식적인 거리는 모르겠다.) 하우스 보트 숙소가 있던 달 호수를 떠난지 1시간반 만에 본 이정표에는 소나마르그 59km, 드라스 112km, 카르길 169km, 레 395km로 쓰여져 있었다.
출발 후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는 비교적 평탄했으므로 50km를 더 왔다고 해도 스리나가르에서 레까지의 거리는 5백km가 채 되지 않는다.

▲ 공사로 인한 통행제한으로 산중도로에서 발이 묶인 차량들.
고속도로라면 반나절 거리밖에 안된다. 그런데 여행 스케줄에는 레까지 가는 중간에 카르길과 알치 두 곳에서 자고 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일행의 목적이 사진 촬영이므로 도중에 지체하는 일이 많은 탓도 있지만, 이렇게 일정을 잡은 이유는 고산증을 우려해서라고 했다. 즉 서서히 고산에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가면서 보니 단순히 고산증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로공사로 인해 대책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러니 일정을 충분하게 잡지 않을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하트래킹으로 유명한 소나마르그

▲ 소나마르크에서 보는 히말라야 산맥의 풍경. 산 가운데 흰 것이 빙하.

이날 점심은 12시쯤 도착한 소나마르그에서 먹었다. 소나마르그는 해발 2730m에 위치한 마을이다. 백두산(2750m) 높이에 있는 동네인 것이다. 마을 입구에 제법 규모가 있는 인도군 부대가 주둔해 있었다.
한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 이곳의 전통 밀크차인 ‘차이’를 사람 수 대로 시켜놓고 가지고 간 도시락(하우스 보트에서 만들어 준 빵, 바나나, 달걀 등이 들어있는 런치박스)을 먹었다.
길거리에는 구멍가게가 여럿 있었다. 진열품 중 진공포장한 과자 등 상품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포장이 모두 빵빵하게 팽창되어 있었다. 기압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우라가 가져간 쵸코파이 등도 마찬가지였다. 길 한쪽 끝에는 양고기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푸줏간도 보였다.
소나마르그는 아름다운 산악경관과 빙하트래킹으로 유명한 곳이다. 남인도의 부자들이 눈과 빙하를 구경하러 오는 곳이라고 한다.
말을 타고 빙하지대까지 다녀오는 현지 관광코스가 있었다. 2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시간상 가 볼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시 레를 향해 출발.

빙하의 단면을 보다

도로공사로 인해 차가 자주 서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하마터면 못 보고 지나갈 광경도 보게 되었다. 산중턱 계곡에 걸려있는 만년설이 만들어낸 거대한 얼음덩어리인 빙하다. 마침 차가 선 곳이 그 곳이었다.
도로가 빙하의 허리를 자르고 지나갔으므로 빙하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빙하의 단면은 지층처럼 눈이 쌓인 연대에 따른 층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흰색바탕에 검정 물감으로 벌집 무늬를 근사하게 그려 놓은 거대한 벽화처럼 보이기도 했다.

▲ 예술작품 같은 빙하의 단면. 김병규 사진가가 특유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빙하는 곡(谷)빙하와 대륙(大陸) 빙하로 나뉜다고 한다. 우리가 본 산 속 계곡의 빙하는 바로 곡빙하다. 계곡빙하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잘려진 빙하 아래로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이 물은 건조한 이 지역에 푸른 생명을 살리는 원천이다.
카르길 가는 길에 3530m의 조지라 고개를 지나 세계에서 두번째로 추운 지역이라는 해발 3249m의 드라스를 지나게 되었다.
무슨 근거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추운 지역이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행사측에서는 이곳에서 입을 오리털 점퍼를 준비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드라스를 지날 때 오리털 점퍼를 꺼내 입을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날 우리가 지나 온 다른 지역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산증

레로 출발한 첫날부터 환자가 생겼다. 여성 회원 한분이 도중에 토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카르길(2650m)에 도착해 병원신세를 졌다. 다음날 다소 회복되어 일정을 같이했는데, 두번째 날엔 남자회원이 어지럼증 등 심각한 고산증세를 보였고, 또 그 다음날엔 다른 여성 회원이 그로기 상태가 되어 병원으로 가 하룻밤을 지내며 산소를 공급받는 등 치료를 받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고산증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고산증은 근본적으로는 산소부족에서 생기는 현상인데 어지럼증, 메슥거림, 구토, 수면장애, 식욕부진 등 여러 현상을 수반한다고 한다.
천천히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 델리에서 비행기로 곧바로 레로 가지 않고 스리나가르를 거쳐 가는 우회 육로를 택한 것인데, 그럼에도 일행 중 몇몇 분은 초기에 고산증을 피하지 못했다. 며칠 후엔 모두 생기를 되찾았지만... (글/사진 : 이정식)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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