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의 영화는 흔적도 없고...
상태바
몽골제국의 영화는 흔적도 없고...
  • 이정식 / 언론인
  • 승인 2014.06.08 17: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머니의 바다' 몽골 흡스굴 호수 (2)
▲ 사막을 오르는 낙타들

쌍봉낙타

이틀째인 8월 4일, 이날 우리는 일출을 찍기 위해 새벽같이 바얀고비 캠프를 나와 인근 모래사막지대로 갔다. 모래 언덕위로 떠오르는 태양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또 이곳에서 낙타들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몰이꾼이 낙타 몇 마리를 끌고 이곳에 오도록 되어있다고 했다.
떠오르는 태양과 사막을 지나는 낙타들. 근사한 장면이 될 것 같았다.
간혹 지나는 낙타를 만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그런 요행을 얻기는 쉽지않다.

우리가 찾아간 모래사막은 좀 특이하게 생겼다. 모양이 특이하다는 것이 아니다. 사막 자체는 모래가 넓고 높이 쌓여 형성된 지역인데 대초원의 일부로서 길게 띠를 형성하고 있다. 그 끝은 고비사막으로 연결된다고 하였다. 좀 더 부연하면, 폭은 수 백미터 혹은 그 이상이고 길이는 수십킬로에 이르는 ‘초원안의 띠 같은 형태의 모래 사막’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술적으로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기다란 사구(砂丘, 모래언덕)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내 동편의 붉은 아침 노을을 배경으로 유목민 한 사람이 몇 마리의 쌍봉낙타를 몰고 언덕 끝에서 나타났다. 아침 안개 때문인지 이날 태양은 붉고 동그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떠올랐다. 태양이 맞은 편 언덕을 비추자 모래 언덕이 붉은 색으로 빛났다. 그 위를 지나는 낙타들의 갈색털도 아침 햇살에 한층 반짝거렸다.

몽골의 낙타는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사막에 사는 단봉낙타와 달리 등에 혹이 둘인 쌍봉낙타다. 쌍봉낙타는 몽골의 고비사막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에 산다. 낙타의 봉, 즉 혹에는 지방이 가득 들어있는데 사막에서 먹이가 떨어지면 이 지방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물 없이도 수 주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사막의 배’로 불리는 낙타. 누군가 낙타는 이 세상 동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평생을 사람을 태우고 짐을 운반하며 고기와 젖과 가죽, 털 등 모든 것을 인간에게 주는 낙타는 그 선한 생김새 만큼이나 넉넉히 베푸는 착한 동물이다.


흔적 없는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룸

낙타와 모래언덕을 찍은 후 일행은 캠프로 돌아와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두 번째 목적지인 테르힌차강노르를 향해 출발했다.

▲ 어워을 지나는 짚차

길가에 어워가 가끔 눈에 띄었다.
여행자의 안전과 집안의 번영, 풍요를 비는 장소다. 돌무덤을 쌓은 가운데 막대기가 꽂혀있으며 푸른 천이 감겨있다. 옛날 우리나라의 성황당 같은 곳이다.
지나는 이들은 이곳에 내려, 시계방향으로 세바퀴를 돌려 소원을 빈다. 차에서 내일 시간이 없을 때는 경적을 세번 울리기도 한단다.


에르덴조 사원, 타이하르 촐로 바위

가는 길에 13세기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몽골발음은 하르호린)에 잠깐 들렀다. 카라코룸은 몽골어로는 ‘검은 숲길’ 을 의미한다. 한음(漢音) 역어로는 합나화림(哈喇和林) 또는 생략하여 화림이라고도 한다.
칭기스칸(1167~1227) 사후 몽골제국 2대 칸이 된 세째 아들 오고타이(1185~1241)가 1235년 세운 도시였다.
오고타이는 고향인 오논 강과 케룰렌 강 지역이 몽골의 관습에 다라 막내인 톨루이의 영토가 되었으므로 서쪽에 있는 자신의 영토에 수도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오르콘 강이 가까이에 흐르는 이곳은 옛날 투르크 왕국들의 수도가 있던 자리이기도 했다.
카라코룸은 유목민의 기준에서는 좋은 곳이었고, 이곳에 도읍을 정함으로써 제국의 교통말을 완비했으나 도시의 기능을 수행하기는 매우 불편한 곳이었다. 일년 내내 식량을 먼 곳으로부터 공급해 와야했고, 넓은 초원지대 한가운데 있었으므로 매서운 겨울 바람을 피할 수도 없었다.
약 20년간 몽골제국의 수도로 번성하다가 쿠빌라이 칸이 수도를 중국 내에 있는 대도(大都: 北京)로 옮긴 후 제국내 지방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의 에르덴조 사원 북쪽에 동서 약 2,000∼2,500m 남북은 1,600m 가량의 작은 규모의 도시 안에 서쪽으로는 '만안궁(萬安宮)'이라고 불리는 중국식 궁전과 귀족의 저택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13세기의 프랑스인 선교사 뤼브뤼크 (G. Rub-ruck)의 <여행기>에는 성내에 중국인 직인구(職人區)와 사라센인 상인구(商人區), 불교사찰 12곳, 이슬람교 사원 2곳, 네스토리우스교 사원이 1곳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나라가 멸망하고 북원(北元)이 세워졌을 때 다시 수도가 되었으나, 지금은 도시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라마불교 사원인 에르덴조 사원은 몽골제국 멸망 후인 1586년에 세워진 대형 사원이다. 사원 주위를 108개의 초르텐(라마불교탑)이 둘러싸고 있다. 이 사원은 1920년대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후 크게 파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05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전성기에는 사원내에 약 100개의 절이 있었고, 10,000명의 승려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 초원에 홀로 서있는 타이하르 촐로(바위)

카라코룸을 떠나 테르힌차강노르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초원에 홀로 서있는 커다란 타이하르 촐로(바위)도 인상적이었다.
테르힌차강노르 캠프에 도착하니 밤 10시 40분. 캠프는 호수가에 있었다. 11시쯤 저녁 식사를 한 후 게르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냈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