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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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망
  • 송하식 언론인·한국공공정책학회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07.30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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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에 맞는 한국경제의 재도약 기틀 돼야
송하식 언론인·한국공공정책학회 전문연구위원.
송하식 언론인·한국공공정책학회 전문연구위원.

2008년 국제 금융 회사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파산으로 야기된 세계 경기침체 이후 한국경제의 성과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해외에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빨리 경제를 회복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 데 반해 국내의 평가는 그다지 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밖에서 한국경제를 평가할 때는 경제성장률, 무역수지, 일자리 창출 등 소위 거시경제지표를 보고 판단하는 데 비해 개개인의 관심사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내 가게의 매출액은 지난해에 비해 어떤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내 아이는 취직이 될까, 전세금은 얼마나 오를까 등등.

우리 경제의 빠른 회복은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 덕분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현상은 음지(陰地)가 있으면 양지(陽地)가 있고,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수출과 대기업이 경제 회복을 주도했다면 그 반대편인 내수 기업과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어려웠을 것임은 쉽게 짐작이 된다.

최근 경기회복의 효과가 모든 계층에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양극화, 쏠림현상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여야 정치권은 유권자의 표(票)를 얻기 위한 선거구호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약속 등을 내놓았다.

경제민주화는 2012년 당시 정치권은 물론 학계, 경제계, 언론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제19대 총선용 아젠다(agenda)로 등장했던 경제민주화는 당시 제18대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경쟁 속에서 그 강도를 더해가면서 몸집이 더 커지고 국민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었다.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규제,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 제한, 일감몰아주기 금지, 금산분리 강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기업인의 경제범죄 형벌 강화와 같은 정책들이 쏟아졌다.

■ 정부·여당, 경제민주화 입법에 다시 속도 내

최근 정부와 여당이 경제민주화 법안 추진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6월 10일 제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각각 입법예고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조만간 정부와 별도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지난 국회에서 야당의 반대로 좌초된 경제민주화 법안을 ‘거대 여당’ 체제에서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이 주요 내용인 상법 개정안은 새로운 게 아니다.

소액주주 권한 강화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논의됐으나 재계와 야당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인 전속고발제 폐지와 법 위반 과징금 2배 상향도 2018년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안과 사실상 동일하다. ‘공정 경제’의 최우선 과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점을 감안하면 임기 초반 추진됐어야 할 것들이라는 정책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사에서 “보다 평등한 경제가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과 학계 및 재계에 널리 회자해온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 대신 ‘경제 민주주의’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소득과 부(富)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 위기가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하며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목표로 소득 불평등 해소와 일자리 문제 해결을 꼽았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언급한 ‘소득주도형 성장’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경제민주주의를 떠받칠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 셈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문 대통령을 비롯해 그간 정치권에서 논의된 경제민주화와는 큰 차이가 없다. 헌법 119조 2항도 경제민주화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안정’이나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 같은 표현으로 정의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문 대통령은 경제 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과 그 수단에 더욱 방점을 찍었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렵다. 우리 사회가 함께 경제 민주주의를 위해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새 원칙으로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방법론으로 “조금씩 양보하고 격차를 줄여가는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대타협의 주체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를 열거하면서 “진정한 노사정 대타협을 위해 모든 경제주체의 참여를 당부드린다. 정치권에서도 함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는 재계와 양대 노총, 중재자 역할의 정부가 참여하는 3자 대화 구도에서 벗어나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를 두루 참여시키겠다는 구상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경제민주주의가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구현되고, 정치권의 입법(立法) 협조로 완수될 수밖에 없다는 함의도 함께 담은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총선 당시 문 대통령이 영입한 인사로, 더불어민주당의 총선정책공약 부단장을 지낸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많은 사람은 경제민주화를 얘기할 때 ‘어떻게’를 소홀히 해왔다”고 지적했다.

주 전 사장은 “그 ‘어떻게’가 바로 양보와 타협, 연대와 배려”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주의’가 경제민주화의 ‘대부’라 불리는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차별화를 두려고 한 것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주 전 사장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지도자의 의지라고 했다”고 밝혀서 ‘경제민주주의’와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의 차이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지나치게 ‘김종인’이라는 특정인과 연관된 것처럼 들려서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중 되도록 그 말을 쓰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최근 삼성 불법 경영 승계 의혹 사건에서 보듯 한국의 후진적 지배구조는 대기업 스스로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수 지분을 보유한 총수 일가가 지분보다 큰 권리를 남용해 기업과 소액주주에 피해를 끼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취약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경영진의 독단을 막자는 게 관련법 개정안의 취지다.

하지만 재계와 야당은 ‘경영권 침해’라는 모호한 명분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의 주역인 대기업을 너무 압박하면 경기 침체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 경제민주화는 정치경제학적 개념

우리 경제가 저(低)성장의 깊은 늪을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려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대기업 개혁은 필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 이후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증시 하락 충격을 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경제민주화는 경제학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정치)민주화 이후 개정된 9차 개정 헌법의 경제 관련 조항으로 새롭게 들어간 개념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국가는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란 용어가 경제학에서 쓰이는 개념이 아닌 만큼 정치경제학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된다. 먼저, 분배 측면에서 보면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기 위한 맞춤형 고용복지 같은 분배정책을 들 수 있겠다. 다음으로 생산 측면에서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규제와 조정을 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 대기업과 중기의 ‘균형점’ 찾아야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국내 시장뿐 아니라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무대에서도 싸워야 하는 우리 대표선수라는 점이다. 국내에서 정부는 대기업이 불공정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와 조정을 해야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경쟁하는 대표선수의 발목을 지나치게 붙잡아서도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차세대 먹거리와 신규 일자리 창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납품가격 후려치기 등과 같은 횡포를 근절하지 않고서는 중소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딘가에서 가장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일, 이것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당면 과제가 아닐까?

경제민주화는 ‘경제’와 ‘민주화’란 용어의 조합만으로도 독재, 권위주의를 경험한 우리에게 치명적으로 매력적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30여 년간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노정된 소득격차와 피로의 틈을 경제민주화는 강력하게 파고든다. 민주, 인권, 약자보호, 상생과 같이 ‘아름다운 말’들은 경제민주화를 더욱 공고하게 뒷받침한다.

이런 프레임 하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문제 제기는 반(反)민주, 반(反)인권, 승자독식으로 낙인찍힐 우려가 크다. 그러나 이제 유행을 넘어 시대정신에 오르려 하는 경제민주화를 앞에 두고 차가운 이성으로 냉철하게 경제민주화를 바라봐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어려운 대내외 경제여건, 저성장과 고령화의 길에 접어든 한국경제의 문제들을 일거에 해소할 마법의 언어로 포장하는 것은 자칫 우리 국민 전체를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다.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지향, 역사적 맥락과 철학적 토대를 면밀히 검토하고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행해지는 개별 정책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것이 한국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방안인지를 신중하게 살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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