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청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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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청년 이야기
  • 이정식 작가
  • 승인 2020.05.31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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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속에는 길고 짧은 많은 예화들이 소설 속에 자주 나온다. 어떤 것은 꽤 길어서 그런 것들은 소설 속의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짧은 예화들도 많은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23세의 스위스 청년 리샤르의 이야기는 그 중 하나다.

리샤르는 누군가의 사생아로, 부모들은 여섯 살 밖에 안 된 그 아이를 스위스 산악 지방의 목동들에게 선물로 주어버렸다. 목동들은 일이나 부려먹을 심산으로 그 아이를 키웠다.

목동들의 손에서 야생 동물처럼 자라던 그 아이는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고, 일곱 살 때부터 비가 오는 날이든 혹한이 심한 날이든 거의 헐벗고 굶주린 채 양치기로 내몰렸다. 목동들은 그 아이를 무슨 물건처럼 선물 받은 것으로 생각할 뿐 아무도 그 아이의 처지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리샤르는 종종 시장에 내다 팔려고 사육하는 돼지의 사료라도 실컷 먹어보고 싶어서 훔쳐 먹었는데, 그들은 사료를 빼앗고 두들겨 패기만 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몸에 힘이 붙을 만큼 성장하자 도둑질을 하러 길을 떠나게 되었다. 리샤르는 제네바에서 날품팔이로 생계를 꾸려가기 시작했는데, 그나마 번 돈을 건달처럼 술 마시는데 탕진하다가 결국은 어느 노인에게 살인 강도짓을 하게 됐다. 그는 곧 체포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자 감옥에는 목사들, 각종 기독교 사회단체들, 자선사업을 하는 귀부인 등이 줄을 섰다.

그들은 감옥에서 리샤르에게 글을 가르치고, 성서를 가르치고, 훈계하고, 설교하고, 위협을 가하기도 하고, 잔소리를 해대는 등 온갖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리샤르는 마침내 진지하게 자기 죄를 자인하게 되었다.

그는 직접 편지를 써서 법정에 보냈다. 자신은 천하의 악당이지만 그리스도의 광명을 받고 은총을 입었노라는 내용이었다.

제네바 사람들은 모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지체 높고 고상하다는 사람들은 모두 리샤르를 찾아 감옥으로 달려가서는 그를 얼싸안고 입맞추면서, “자넨 우리의 형제야, 자네에게 은총이 내린 거야라고 떠들어댔다.

리샤르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습니다. 제게 은총이 내린 겁니다!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에는 돼지죽을 먹는 것만으로도 제겐 기쁨이었는데 지금은 은총이 내렸으니 주님의 품에서 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리샤르는 눈물을 흘리면서, “오늘은 제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주님께 가거든요!”

그러자 목사들, 판사들, 자선사업하는 귀부인들은 소리쳤다. “그래, 너한테는 가장 행복한 날이야, 주님께 가기 때문이지!”라고.

사람들은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리샤르를 실은 죄수 마차를 따라 처형장까지 뒤쫓아 갔다. 그리고는 처형장에 도착하자, “어서 죽게 우리 형제여, 주님의 품안에서 죽으라고, 자넨 은총을 받았으니까!”라고 리샤르를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리샤르는 형제들의 입맞춤을 받으며 단두대로 끌려가 목이 잘리고 말았다. 소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리샤르가 처형대로 끌려가 기요틴 아래 놓이자, 그에게 은총이 내렸다는 이유 때문에 박애적으로 목이 잘리고 말았지라고 되어 있다.

이 일화는 도스토엡스키가 소설 속에서 무신론자인 카라마조프 씨네 둘째 아들 이반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것이다.

이반은, 리샤르 사건은 스위스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러시아에서는 그 사람이 우리 형제가 되고 은총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제의 머리를 내리친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한다.

19세기 당시 유럽에서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때부터 시작된 단두대 처형이 유행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사형수라 할지라도 대개는 감형조치로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1825년 데카브리스트 혁명 때 주동자 5명을 교수형에 처하고, 1881년 알렉산드르 2세 암살사건 가담자 5명에 대한 교수형, 이후 1887년 알렉산드르 3세 암살미수사건 때 가담자 5명을 교수형에 처형한 사례가 있지만, 단두대는 사용되지 않았고, 사형 자체가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소설에서 러시아에서라면 리샤르를 처형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정치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이 사형장에서 극적으로 시베리아 유형으로 감형된 경험을 한 사람이다. 총살형 직전에 목숨을 건진 후, 그는 생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이후의 삶을 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생에 애착을 갖고 유형생활을 견뎌낸 이후 대문호의 길을 걸었다. 그는 만 59세 때 2~3일 병상에 있다가 임종을 맞았는데, 그가 죽을 때까지 생은 선물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예화의 젊은 주인공 리샤르의 경우 과연 생은 선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에서라면 그를 그렇게 잔혹하게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했으나 더 이상 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생이 선물이라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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