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흰 옷은 수의 다시 도스토옙스키 박물관으로 돌아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실물사진이 세워져있는 첫 번째 전시실에 이어 두 번째 전시실에 들어가니 유형수들이 입던 옷과 사형수용 가운 등이 전시되어있다. 유형수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흰 천으로 만든 여름옷에는 등에 커다란 검정색 둥근 무늬가 찍혀있고, 겨울외투의 등에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모양의 흰색천이 붙여져 있다. 투박하고 허름한 겨울 외투는 3년에 한번 새것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모두 유리 안에 들어 있어서 빛이 반사되어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았다. 도스토옙스키가 사형 직전 입었던 것과 같은 사형수용 모자 달린 흰 가운도 몇 벌 걸려 있었다. 흰 색 천이므로 죽으면 그대로 수의(*죽은 사람에게 입히는 옷)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19세기 조선 중엽 철종 때인 1854년 전함 팔라다 호를 타고 우리나라 거문도에 왔던 러시아의 소설가 곤차로프(1812~1891)는 후일 그의 여행기 『전함 팔라다』(1858)에서 조선 사람이 입고 있는 흰 옷을 수의 같다고 했다. 곤차로프는 “조선 사람들이 모두들 마치 수의를 입은 것처럼 흰옷을 입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극동에 속한 맨 마지막 민족을 보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조선 사람이 흰빛을 신성하게 여기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백의민족임을 그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일제 때 흰 옷은 항일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데카브리스트 부인 두 사람의 초상화 세 번째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두 여인의 초상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데카브리스트 부인인 폰비지나와 안넨코바의 초상화다. 눈에 익은 폰비지나의 초상화는 금방 알아봤는데, 그 옆의 안넨코바의 초상화는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안넨코바의 초상화는 내가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등에서 보아온 11명의 데카브리스트 부인들 초상화 속에서 봤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눈에 설었던 모양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토볼스크에서 폰비지나와 안넨코바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훗날 그의 『작가일기』에 실었다. 그는 『작가일기』에서 토볼스크에 있을 때 무라비요프 부인, 안넨코프 부인과 그 딸, 폰비진 부인 들을 만났다고 기록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옴스크에서 데카브리스트 부인들을 만난 것은 데카브리스트 혁명(또는 난)이 실패로 끝난지 25년 후다. 1825년 데카브리스트 혁명이 났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네 살에 불과했다. 이 부인들은 나이로 볼 때 거의 어머니 뻘이다. 세 사람의 부인 가운데 무라비요프 부인은 당초에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로 갔던 그 부인이 아닌 것 같다. 데카브리스트 부인 11명 가운데 한 사람인 무라비요프의 부인 알렉산드라 그리고리예브나 무라비요바(1804~1832)는 1827년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에 왔다가 5년 만인 1832년 치타에서 멀지 않은 공장도시 페트롭스키 자보드에서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무라비요프 부인이라면 재혼한 부인이거나 또 다른 사람일 수 있다. 그래서 박물관에 폰비지나와 안넨코바 두 사람의 사진만 걸어 놓은 것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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